美육군, 100만 병력 작전 수행에 ‘고담’ 이용
기업 금융사기·내부비리 방지용 ‘파운드리’ 서비스 판매
올해 상반기 매출 4억8120만 달러(5529억 원), 전년 대비 49%↑
9월 30일 상장, 시가총액 220억 달러(25조 원)
본사 콜로라도 이전, 창업자 피터 틸의 정치 성향 탓?
피터 틸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Gettyimage]
팔란티어는 2003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일대의 남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팔란티어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준비하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등록서류(Form S-1)에는 자사 사업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팔란티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일을 하는 대규모 기관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든다. 그런 기관들은 사회가 불안하고 위기일 때뿐만 아니라, 안정적 상황에서도 반드시 제 기능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국가 안보에 이바지하기 위해 창업했다는 팔란티어. 기업 활동의 상당 부분이 기밀이다. 팔란티어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가. 또 누가 창업했는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기업 중에서도 독특하고 흥미로운 팔란티어를 분석한다.
일단 무엇을 파는지 살펴보자. 팔란티어는 두 가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첫째로 미국 정보기관을 주된 고객으로 삼는 ‘팔란티어 고담(Palantir Gotham)’ 서비스가 있다.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을 기반으로 테러, 돈세탁, 밀수, 마약거래 등 범죄 움직임을 감지하는 서비스다.
앤디 그린버그 와이어드(Wired·미국의 IT 전문 잡지) 기자는 2013년 8월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팔란티어 고담이 사용된 몇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그린버그는 국가 안보와 정보기술 부문, 특히 사이버 해킹 분야 전문 기자다. 포브스 재직 시절인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고담’으로 빈 라덴 은신처 확인에 한몫
이 기사에 따르면 고담은 2011년 5월 1일 미국이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서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 활용됐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확인할 때 고담의 분석이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가 적의 공격을 사전에 감지할 때, 미국 정부가 자국 세관 요원을 살해한 멕시코 마약 조직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활용됐다.팔란티어가 판매하는 또 다른 서비스는 ‘팔란티어 파운드리(Palantir Foundry)’다. 금융사기 피해 방지, 기업 내부 비리 포착, 제품 생산관리 분석 등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다각도로 높이는 기술이다. 고담과 파운드리 두 서비스 모두 팔란티어와 고객 간 계약 기간에 한정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팔란티어 직원을 고객인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일정 기간 파견해 소프트웨어 설치 및 활용을 지원하는 식이다. 2020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세계 125개 기관 및 기업이 팔란티어의 서비스를 이용했다. 팔란티어의 고객인 기관·기업이 활동하는 국가는 150개 나라, 산업 분야는 35개에 달한다.
팔란티어 측은 SEC에 제출한 ‘Form S-1’에서 두 가지 고객 사례를 꼽았다. 대표적 기관 고객은 바로 미국 육군이다. 미 육군이 100만 명(정규군 48만 명, 주 방위군 33만6000명, 예비군 18만9500명)이 넘는 병력의 작전 수행을 위해 팔란티어의 고담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 여러 공장을 둔 익명의 업계 선두 기업이 생산 공정 품질관리를 위해 팔란티어 파운드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팔란티어의 SEC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매출은 7억4260만 달러(8532억 원)로 1년 전보다 25% 늘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9% 증가한 4억8120만 달러(5529억 원)였다.
다만 팔란티어는 아직 흑자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순손실(Net loss·총수익을 상회하는 총비용 액수)은 5억7960만 달러(6658억 원)였다. 순손실 규모는 올해 상반기 1억6470만 달러(1892억 원)로 크게 줄어들긴 했다. 임직원에게 보너스 명목으로 회사 주식을 지급한 비용을 제외하면 순손실 금액은 이보다 30~40% 더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 ‘반지의 제왕’ 속 천리안 수정구슬 ‘팔란티어’
이제 누가 팔란티어를 창업했는지 살펴보자. 회사의 공동창업자는 모두 5명이다. 그중 핵심은 현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알렉스 카프(Alex Karp)와 디렉터(Director) 피터 틸(Peter Thiel). 두 사람은 1967년생 동갑으로 스탠퍼드 법학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다.이 중 피터 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미국의 온라인 전자 결제 시스템 업체 ‘페이팔’(2019년 기준 매출 규모 21조 원, 자산총계 59조 원)을 공동 창업했다. 페이스북 창업 초기 50만 달러(5억7000억 원)를 투자해 수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 피터 틸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 달러(1조7000억 원) 가격으로 매각했다. 그때 번 돈으로 창업한 회사 중 하나가 팔란티어다. 회사 이름인 팔란티어도 직접 지었다. 영국 소설가 J.R.R.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천리안 수정구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친구 알렉스 카프가 합류했다.
앤디 그린버그의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피터 틸은 팔란티어 창업 전부터 국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하고 싶어 했다. 2001년 9·11 테러가 계기였다고 한다. 이미 페이팔에서 금융사기를 감지하는 기술을 활용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막는 방법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피터 틸이 어떤 인물인지 좀 더 살펴보자. 그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기업이 국가 안보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지지 성향이 상당히 강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례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이후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의 민주당 지지세가 지나치게 강한 것이 불편하다며 오랫동안 살던 실리콘밸리를 떠났다. 실리콘밸리 중심도시 팰로앨토에서 창업한 팔란티어는 본사를 올해 상장 직전 콜로라도주 덴버로 옮겼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였다. 직원 대부분이 재택 근무하는 상황에서 임대료 등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콜로라도로 사무실을 옮긴다는 설명이었다. 팔란티어 본사 이전에 피터 틸 개인의 정치 성향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팔란티어 성장세에 투자자·정보기관 이목 집중
애국과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창업한 회사. 정보기관의 범죄 예방, 테러리스트 검거, 마약조직 소탕 작전을 돕는 회사. 민간기업의 생산성 향상, 내부 비리 포착, 금융사기 피해 예방을 지원하는 회사. 이는 팔란티어의 다양한 모습이다.9월 29일 상장 당일 1주당 9달러(1만339원)대에서 시작한 팔란티어의 주가는 10월 8일 현재 10달러(1만1488원)대다. 시가총액 220억 달러(25조 원) 규모의 이 비밀스러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투자자뿐 아니라 각국 정보기관, 기업이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