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갖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1년 내내 먹어치우는 국수의 양이 꽤 많다. 오래오래 살라고 국수를 먹는 관습을 생각하면 우리 부부의 수명은 지구를 몇 바퀴나 돌만큼 길어졌지 싶다. 가느다랗지만 탄력 있는 소면, 애매하지만 매력적인 중면, 납작하되 씹는 맛 좋은 칼국수, 통통하고 탱글탱글한 우동, 툭툭 끊어지는 메밀국수, 끈질긴 맛이 좋은 칡냉면, 불어도 맛있는 당면, 야들야들 흐르는 맛이 좋은 쌀국수, 입 안 가득 씹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파스타…. 라면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물, 소스, 양념의 맛이나 국적도 가리지 않고 즐긴다. 집에서 만들어 먹고, 나가서 사 먹고, 배달도 하고, 밀키트도 즐긴다.
문제는 집안 대대로 여성들이 살쪄 왔던 우리 가문의 피를 내가 진하게도 이어받은 것이다. 국수를 먹으면 먹을수록 몸이 사과처럼 동그랗게 변하는 걸 느낀 지 오래됐다. 반면 나이 들수록 날씬해지는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남편은 똑같이 먹어도 몸매가 변치 않는다. 게다가 코앞에 갱년기가 닥쳤으니 이쯤에서 즐겁고 건강하게 오래 먹을 수 있는 국수를 찾아야 한다.
단백질, 식이섬유 풍부… 통통·쫄깃한 면발
삶기 전의 단백질국수(왼쪽). 삶아 익히면 꽤 통통해지는 단백질국수. [김민경]
식단관리에 열을 올리는 젊은이들의 리뷰가 두둑한 국수를 찾았다. 된장, 두부 그리고 여름에는 콩국물로 즐겨 만드는 대두를 이용한 ‘단백질국수’다. 단백질국수와 잘 어울리는 국물이나 소스 등을 함께 포장해 밀키트 형태로 판매하기에 접근이 쉽다. 낯선 국수만 달랑 샀다가는 요리법을 고민하다가 묵히고 말 것이 뻔하니까 다행이다. 단백질국수는 이름처럼 단백질 함량이 평균 70% 전후이고, 탄수화물은 10% 전후로 낮췄다. 밀가루 국수에 비해 식이섬유 함량도 많이 높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몸에 좋아도 국수가 내게 주어야 할 식감과 맛을 포기할 수는 없다. 소면보다 굵고 중면보다는 가늘되 통통한 단백질국수는 꽤 쫄깃쫄깃하고 맛이 고소하다. 글루텐이 빠졌으니 밀가루 국수가 갖는 탄력과 쫀쫀함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했으나 열량과 혈당치 상승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분 좋게 먹을 만하다. 조리도 무척 간편하다. 즐겨 먹는 밀가루 소면의 경우 삶아 건진 다음에 뿌연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헹궈야 한다. 그래야 전분질이 씻겨 나가면서 뻑뻑함이 가시고, 매끈하면서도 탱탱한 면발이 된다. 단백질국수는 조금 엉성하게 헹궈도 텁텁하거나 날 냄새 같은 게 묻어나질 않는다.
삶아 헹군 단백질국수는 여느 국수처럼 마음대로 즐기면 된다. 메밀장국을 만들어 적셔 먹어도 좋고, 갖은 양념을 활용한 비빔국수도 되며, 멸치국물에 훌훌 말아 먹기에도 좋다. 다만 칼국수처럼 다소 들러붙는 느낌은 있다. 국물이나 자작한 소스를 넣어 무치듯 비벼 먹으면 간도 훨씬 골고루 배고 찐득함도 무뎌져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단백질국수를 만들어 파는 곳의 대표메뉴가 독특하게도 안동국시다. 대중적으로 즐겨 먹지 않는 메뉴인데 왜일까 싶어 당장 먹어보았다. 보통 ‘안동국시’는 국수 반죽에 콩가루를 더한다. 밀면의 쫀득함과 함께 콩가루의 구수함이 녹아든 맛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콩단백질로 만든 국수에서 안동국시의 면모가 느껴진다. 짝을 참으로 잘도 맞췄다 싶다.
두부·해초·곤약국수도 ‘저탄’
탄수화물 함량을 낮추거나 없앤 국수는 단백질국수 외에도 꽤 많다. 두부를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국수는 오래전부터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중이다. 쫄깃한 식감과 낮은 열량, 웬만한 양념과는 두루 잘 어울리는 구수함 덕이다. 미역, 톳 등으로 만드는 해초국수는 제로 칼로리에 가깝지만 묘한 향, 미끈한 식감 덕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생각한다면 어떤 국수보다 가장 도움이 되는 식품이 해초국수다. 물론 특유의 풍미를 가리기 위해 온갖 시판 소스나 짜디짠 양념을 들어붓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곤약국수는 투명에 가까운 맛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해초국수보다 더 맛있다고 여겨진다. ‘맛이 없음’이 ‘맛이 있음’으로 바뀐 셈이다. 흰 도화지처럼 깨끗한 맛이다 보니 먹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양념하면 그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