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종근당고촌재단 국제적 위상 높이다

이종근 창업주 ‘약업보국’ 정신 계승한 ‘고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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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3-10-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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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본부서 고위급 회담 부속 행사로 주목받은 시상식

    • 한국 제약사상 최초 국제적인 상

    • 기업 이윤 사회 환원 실천하는 종근당고촌재단

    • 항결핵제 리팜피신 국산화로 결핵 퇴치 앞장선 이종근 창업주

    • 이장한 회장 제안,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과 2005년 공동 제정

    평생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한 종근당 창업주 이종근 회장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고촌상. [종근당]

    평생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한 종근당 창업주 이종근 회장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고촌상. [종근당]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 [종근당]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 [종근당]

    9월 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제17회를 맞은 고촌상(Kochon Prize) 시상식이 바로 그것. 고촌상은 종근당고촌재단과 유엔연구사업소(UNOPS·United Nations Office for Project Services) 산하기구인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Stop TB Partnership)이 범세계적으로 결핵 및 에이즈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후원하고자 2005년 공동 제정했다. 한국 제약사상 최초로 국제적으로 시상하는 상이다.

    이번 시상식은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서 생중계됐다. 특히 올해는 유엔 고위급 회담의 주제가 ‘결핵 퇴치’여서 고촌상 시상식이 그 부속 행사로 진행됐다. 지영미 한국 질병관리청장이 축사자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두프로프 보건부 수석 차관과 동아프리카 국가인 말라위의 모니카 채크웨라 영부인이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는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과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9월 20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고촌상 시상식이 열렸다. 루치아 디티우 Stop TB Partnership 사무국장, 티무르 압둘라에브 고촌상 선정위원,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 폐결핵 의료센터의 뱌체슬라프 무사트 박사,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왼쪽부터). [종근당]

    9월 20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고촌상 시상식이 열렸다. 루치아 디티우 Stop TB Partnership 사무국장, 티무르 압둘라에브 고촌상 선정위원,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 폐결핵 의료센터의 뱌체슬라프 무사트 박사,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왼쪽부터). [종근당]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오른쪽)이 잔나 카르펜코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지역의료센터장에게 시상하고 있다. [종근당]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오른쪽)이 잔나 카르펜코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지역의료센터장에게 시상하고 있다. [종근당]

    제약업의 윤리성과 사회성 중시한 창업주

    고촌상에는 종근당 창업주인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이 생전에 사명으로 여긴 ‘약업보국(藥業報國)’ 정신이 깔려 있다. 고(故) 이종근 회장은 1941년 종근당을 창업해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들고 더 나아가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제약업계의 귀감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 학교법인 고촌학원을 설립하고 대동세무고등학교를 통해 젊은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이종근 회장은 기업에서 얻은 많은 이익을 사회와 국가를 위해 유익하게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한국 제약산업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장학산업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평소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는 신념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약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전문성을 강조하는 생활 철학을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실천했다. 다음의 말에서 이 회장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 독립에 공이 있는 애국자도 아니요,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 경제 신장에 크게 이바지해 기간산업을 여러 개 거느린 재벌 그룹 총수도 아니다. 나에겐 다만 제약업 하나에 매달려 한평생 살아가고자 하는 신념이 있을 뿐이다. 제약업은 다른 업종보다 윤리성과 사회성을 더 중시하고 강조해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과학으로서, 한 알의 약이 한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그 엄청난 사명 앞에 어찌 한 치라도 경건치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회장은 1919년 충남 당진군(현 당진시)에서 3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31년 가난한 농촌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이 회장은 1934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철공소 견습공과 정미소 쌀 배달원을 거쳐 1939년부터 약품 행상에 나섰다. 그러면서 정직과 신용, ‘하면 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1941년에는 약관 23세에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종근당의 모태인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설립한다. 6·25전쟁 당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부산 피난 시절 가공장을 짓고 이곳에서 염산에페드린정, 산토닌정 등의 약품을 생산·공급해 재기의 기틀을 마련한다. 1956년 이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종근당제약사로 회사명을 바꾸고 해외 유수의 제약사로 눈을 돌려 한국 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했다. 단순히 수입한 약을 그대로 파는 행위에서 과감히 벗어나 당시의 열악한 의약 환경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약을 만들기 위해 종근당을 창업한 것이다.

    1965년 종근당은 국내 최초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했다. 이에 힘입어 1968년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는다. 이는 이종근 회장의 제약 인생에서 가장 독보적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그때는 FDA 승인을 얻은 제약회사가 미국 외에 100곳 정도였고, FDA 승인을 얻으려면 미국의 상위 제약회사에 견줄 만한 기술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선행 조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종근당은 항생제를 해외에 수출해 900만 달러의 수입 대체효과를 거뒀다. 국내 전 산업계 매출 규모에서 78위에 랭크돼 일류 회사 반열에 오르는 성과도 뒤따랐다.

    결핵 퇴치에 헌신한 ‘高村’의 선한 영향력

    이 회장은 “우리가 만든 약이 필요한 사람 곁에 항상 있게 하는 사명을 지녀야 한다”면서 “건전한 기업활동과 우수의약품 개발로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 약업보국의 사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종근당이 1972년 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74년 국내 최대 규모의 의약품 원료 발효공장을 완성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당시 이 발효공장은 항생제 170t을 만들 수 있는 국제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선진 제약 기술과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외국 선진 제약기업들과 합작을 성사시켜 국내 제약산업이 국제적 인프라를 확층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 한국롱프랑제약 주식회사, 1983년 한국로슈, 1986년 주식회사 한국그락소 등을 설립해 국제적 면모를 갖춘 것이다.

    이 회장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만 급급하지 않지 않고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우리 사회의 인재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는 불공평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73년 사재를 털어 종근당고촌재단을 설립한 것이 좋은 예다. 종근당고촌재단은 장학급 지급, 무상 기숙사와 학술연구 지원, 해외동포 국내외 연수 등 다양한 장학사업을 지원하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회장은 평생 결핵 퇴치에 헌신한 제약인으로도 유명하다.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돼 발병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다. 난치병은 아니지만 1년 이상 오랜 치료 기간이 소요되고, 전염성이 강해 확산이 빠른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결핵환자가 매년 80만 명 수준으로 유지됐다. 높은 발병률에도 불구하고 1980년 이전까지 국내에 공급되던 결핵치료제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제조됐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판매돼 결핵환자들은 신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삼중고를 겪었다.

    이 회장은 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치료제 때문에 결핵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원료를 생산하지 않으면 제약회사가 아니다”라는 신념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 회장의 결단에 힘입어 종근당은 생산설비를 갖추고 자체 기술로 항결핵제 ‘리팜피신’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리팜피신을 개발한 회사가 된 것이다. 수입 치료제보다 3분의 1 저렴한 치료제를 국내시장에 보급해 결핵 퇴치에 기여한 종근당은 198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리팜피신 품질 승인을 신청해 결격 사유가 없음을 통보받고 미주 지역과 인도 등에 수출하기 시작, 전 세계로 판로를 넓혔다.

    이장한 회장, 고촌상 제정에 앞장

    이처럼 평생 결핵 퇴치에 헌신한 이종근 회장의 약업보국 정신을 계승하고자 제정한 것이 바로 고촌상이다. 고촌상 제정은 이종근 회장의 뜻을 이어받은 이장한 현재 종근당 회장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가 도전과 노력을 부단히 거듭한 끝에 얻은 결실이다. 1993년 이종근 회장이 영면한 뒤 1994년 그의 아들인 이장한 당시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했다. 이장한 회장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혁신을 기업 경영의 핵심으로 삼아 변화를 꾀하면서도, 창업주로부터 계승한 약업보국 정신과 생명 존중의 가치를 지속해서 실천해 나갔다.

    2003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6차 WHO 총회에 한국제약협회(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 회장은 총회 기간에 국내 보건의료 단체장들과 함께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이 회장과 이 사무총장은 한국 제약산업이 WHO 사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한 끝에 ‘결핵 퇴치 유공자를 위한 시상’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장한 회장은 이를 통해 평생을 결핵 퇴치에 헌신한 이종근 회장의 업적을 기리고, 결핵 발병률이 높은 개발도상국가의 결핵 치료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2003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6차 WHO 총회에서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 이장한(오른쪽) 종근당 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종근당]

    2003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6차 WHO 총회에서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 이장한(오른쪽) 종근당 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종근당]

    당시 WHO는 시상 제도에 매우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시상 제도를 만들면 종근당이라는 기업에 상업적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큰 이유였다. 과거 미국 제약기업이 WHO에 연구비 지원을 제안한 적이 있으나 같은 이유로 거절된 전례도 있었다. 한국 국적인 이종욱 사무총장의 업적 중 한국 관련 사안에 대한 대응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견제하는 시선이 많은 것도 걸림돌이었다.

    이장한 회장은 시상 제도에 대해 “이종근 회장의 사재로 설립된 비영리재단인 종근당고촌재단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종근당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고 적극 해명했으나 WHO의 입장은 강경했다.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이종욱 사무총장은 WHO가 어렵다면 WHO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에서 주관하는 방식으로 시상식을 진행하자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은 이종욱 총장이 WHO 결핵국장으로 재임하던 2001년 출범한, 결핵 퇴치를 위한 범세계적 국가 간 협력 차원의 기구다. 현재 1700여 개의 결핵 퇴치 관련 단체, 연구기관, 정부기관, 개인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국제 조직이다. 2015년 WHO에서 유엔연구사업소(UNOPS) 산하기관으로 바뀌었다.

    총 10만 달러 지원, 글로벌 연구 역량 향상에 기여

    이장한 회장과 이종욱 총장이 2년여에 걸쳐 제안을 거듭한 끝에 결실이 이뤄졌다. 2005년 5월 3일 에티오피아에서 개최된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 이사회에서 ‘고촌상 신설’이 승인된 것이다. 2006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1회 고촌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때부터 올해까지 13명의 개인과 16개 단체가 고촌상을 받았다. 해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고촌상 선정위원회가 심사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고촌상은 상금을 포함해 총 10만 달러를 지원하며 글로벌 보건의료 연구 역량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종근당고촌재단 설립 50주년이자 이종근 회장 영면 3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에 열린 이번 제17회 고촌상 시상식은 종근당고촌재단이 제약사 출연재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재단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올해 고촌상은 ‘분쟁 지역에서도 결핵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의료인에 대한 열정’을 주제로 수상자를 선정했다. 전시 상황 속에서도 결핵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자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 우크라이나 ‘보건부 공공 의료센터’와 ‘남부 헤르손 폐결핵 의료센터’ ‘잔나 카르펜코(Ms. Zhanna Karpenko) 체르니히우 지역의료센터장’이 공동 수상했다.

    수상의 영광을 안은 ‘보건부 공공 의료센터’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설립된 공공단체로 국가 결핵관리사업(NTP)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 상황 속에서도 응급 시스템을 구축해 1만2000명이 넘는 결핵환자를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남부 헤르손 폐결핵 의료센터’ 역시 전쟁 초기부터 e메일로 진단서를 접수하고 발급하는 등 비대면 원격진료 방식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결핵환자 400여 명과 후천성면역결핍증(HIV) 감염자 약 3500명의 치료를 지원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2006년 치러진 제1회 고촌상 상장. [종근당]

    2006년 치러진 제1회 고촌상 상장. [종근당]

    고촌상은 희망이자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지역의 ‘잔나 카르펜코’ 의료센터장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입원 중인 결핵환자 54명을 대피시켜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도왔다. 피난민에게 식량과 연료,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보건의료를 위해 헌신한 점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뽑혔다.

    우크라이나 보건부 공공 의료센터와 야나 테를리바(Yana Terleeva) 박사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영웅이며 통합의 심벌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노고를 인정해 준 국제사회와 고촌상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고촌상은 우리에게 단순한 상의 의미를 넘어 희망이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김두현 종근당고촌재단 이사장은 “올해 수상자들은 전쟁으로 인해 의료체계가 파괴된 열악한 상황에서도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은 진정한 의료인”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들의 노고를 치하한 고촌상이 앞으로 여러 단체와 개인이 펼쳐나갈 다양한 의료 및 구호 활동에 큰 응원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장한 회장은 “종근당 창업주인 고촌 이종근 회장은 1980년 세계 네 번째로 항결핵제 리팜피신의 발효에 성공해 결핵치료제의 국산화에 기여했다”면서 “결핵 퇴치에 평생을 헌신한 창업주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고촌상이 고촌 영면 30주기가 되는 올해 국제적 상으로 거듭나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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