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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는 유전자 차이 큰 정자를 원한다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㉔] 국제결혼이 한국인을 강하게 만드는 이유

  • 난임전문의 조정현

난자는 유전자 차이 큰 정자를 원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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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화상 상담, 비대면 박람회, 비대면 수업. 바야흐로 비대면의 시대다. 추석 연휴 기간이던 9월 30일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단독 콘서트도 장안의 화제였다. 무엇보다 심해(深海)와 선박, 기차, 꽃밭 등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펼쳐진 무대와 온라인 관객 시스템으로 전 세계가 연결돼 공연장이 꽉 찬 느낌이었다. 

걱정도 팔자일까. 비대면으로도 아무렇지 않게 세상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난임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스멀스멀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인간의 정(情)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에도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고 ‘집콕 연휴’를 보내고, 학교든 엘리베이터 안이든 ‘대화 자제’라는 문구도 자주 눈에 띈다. 

최근에는 친척이라고 해도 서로 얼굴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모계와 부계 4촌 이상 친척들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젊은이가 부지기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6촌 친척 간인 줄 모르고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도 되나요”라는 질문도 올라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부계든 모계든 8촌 이내면 결혼할 수 없다. 


열성 유전자 출현시키는 근친혼

유럽에서는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근친결혼이 많았다. 근친혼으로 인해 나타나는 유전병 ‘합스부르크립(주걱턱)’에 걸린 스페인 카를로스 2세. [GettyImage]

유럽에서는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근친결혼이 많았다. 근친혼으로 인해 나타나는 유전병 ‘합스부르크립(주걱턱)’에 걸린 스페인 카를로스 2세. [GettyImage]

예부터 혼처는 먼 곳에서 찾았다. 동네 처녀 총각보다는 산 넘고 강 건너 좋은 혼처를 찾고자 중매쟁이에게 부탁했다. 유전학을 잘 몰라도 선조들은 남녀가 유전자 차이가 커야 건강한 자손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청개구리를 닮았다. 공교롭게도 남녀 간의 사랑(혹은 호기심)은 유전자가 비슷할수록, 즉 염기서열이 매우 유사할수록 더 끌리는 법이다. 예전에 부모들은 대학 공부를 마친 맏아들만큼은 큰 도시에 가서 출세하길 소망했고, 동네 처녀보다는 출세한 자리에서 더 나은 혼처를 얻기를 바랐다. 자식이 결혼할 상대를 데리고 왔을 때 “좋은 혼처 자리를 두고 딱 저 같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며 버럭 화를 내는 부모의 마음은 단순히 욕심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난자(생식세포)도 정자가 빠르고 힘이 세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는다. 자기 것과 다른 유전자 특성을 보이며 강한 면역 유전자를 갖고 있는 정자라야 선택한다.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10년 전, 장수 유전자 3개가 유대인에게서 발견됐다. 평균연령 100세인 유대인 500명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 3개가 과잉 발현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고밀도 지단백(HDL)의 생산을 촉진하고 당뇨병과 치매를 막아주는 유전자였다. 이것이 100세 이상 장수의 키워드인 셈이다. 그래서 다른 민족이 1만 명당 한 명꼴로 장수한다면, 유대인의 장수 가능성은 20배가 더 높다. 

유대인은 수천 년간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온 민족이다. 시시때때로 죽음에 직면한 도망자가 돼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은 항상 정착지에서 현지인과의 이종교배(異種交配)로 혼혈 자식을 낳아야 했다. 혼혈이 순혈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근친혼이 계속되면 열성 유전자의 다량 출현을 막을 수 없다. 만약 소수 인구가 섬에 고립돼 수백 년간 족내혼(族內婚)으로 자손을 낳았다면 악성 유전병이 걸리기 십상이다.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도 순혈주의에 집착해 근친혼을 지속하다가 정신병이나 주걱턱 같은 악성 유전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왕가와 귀족들은 혈통 보전보다는 권력 유지를 위해 폐쇄적인 족내혼과 근친혼을 고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와 고려 왕족에게서 근친혼이 성행했다. 1866년 멘델이 우성과 열성 유전자의 유전 법칙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이어졌을지 모른다. 

이집트의 쇼키 박사팀은 2013년 근친혼 부부의 태아 및 자녀의 유전학적 검사를 실시했는데 염색체 미세결실, 단일 유전자 유전병, 다발성 인자의 유전질환 등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염색체 질환 빈도는 일반 여성과 같은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자녀의 염색체 이상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발생하는데, 이미 정자와 난자에 유전자 결함이 내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조사한 아이들 모두 정신지체를 보였고, 대부분 사지 기형도 나타났다. 임신부는 유산이 잦았고, 태아의 사망률도 높았다. 

필자가 시술한 환자 중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성(28세)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친자매인데 이들 손자 손녀가 결혼을 했지만 4년간 임신을 하지 못했다. 생리는 다달이 있었고 초음파상 이상 소견도 보이지 않았다. 필자를 찾아오기 전 기록을 살펴보니 다른 병원에서 수차례 시험관시술을 받았는데, 배란 유도 시 난포(난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어느 이상은 커지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었다. 필자에게 와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결국 미성숙 상태의 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성숙시켜 정자와 체외수정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난자가 체외에서 더는 성숙되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다. 그녀는 난자 성숙이 일어나지 않는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결혼을 장려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실제로 근친혼을 하게 되면 생식기능이 확연히 떨어진다. 지난 2015년 세허르 박사팀은 쿠웨이트의 근친결혼 부부의 자녀 291명을 대상으로 난소 능력을 조사했다. 이들의 호르몬 범위는 보통 같은 또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난소의 난포 숫자는 현저히 줄어 있었고 수태 능력도 떨어졌다. 또한 이들이 성장해 난임으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했다. 

난임부부 중에는 동성동본이라서 자꾸 유산이 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8촌 이내의 혈족이 아니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역사 기록을 참고하면, 조선 중기(16세기)에는 성본(姓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10%에 불과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17세기부터는 공명첩(성명을 적지 않은 임명장. 관원이 돈이나 곡식을 바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명목상의 관직을 주는 제도)에 의해 관직과 성본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고, 구한말에는 60%가 족보를 가지게 됐다. 

최근 통계에서 20대 젊은이 30%는 국제결혼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생식학적으로 봤을 때 국제결혼은 한국인을 더 강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일이다. 지난해 혼인율은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외국인과의 혼인은 4년째 증가 추세다. 멀고 먼 유전자 간의 결합으로 건강하고 머리 좋은 자손이 많아지면 한민족의 미래가 밝아진다. 단일민족, 순혈주의에 대한 고집을 버려야 산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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