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아 추진위, 너도나도 “끼워달라” 부처 장악 가능한 ‘헤드쿼터’ “구호만 있고 실체는 없다” 7% 성장론 맞춰 창출된 ‘선거용 프로파간다’ 산업 클러스터, 금융허브론을 누르다 “동북아 경제공동체란 말, 제발 쓰지 말자” “중심국? 美·中·日이 웃는다” 골 깊은 재경부와의 갈등 “좋은 건 다 ‘동북아’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언론, 학계, 경제계는 물론 정치계, 문화계까지 온통 ‘동북아’ 타령이다. 새 정부, 새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데 이보다 더 안전하고 유용한 개념은 없는 듯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북아 프로젝트의 실현 여부는 향후 참여정부 경제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주요 잣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 때문일까. 지난 4월29일 출범한 동북아추진위는 구성과정에서부터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대통령 측근인 학자그룹과 관료그룹 간 알력이 첫 번째 이유였다. 위원으로 참여하길 원하는 이가 너무 많은 것도 부담이 됐다. 한 관계자는 “자천 타천, 온갖 곳에서 청탁이 들어왔다”고 했다. 실제로 출범 후 추진위는 대통령의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넓은 분야에 걸쳐 자문·조정 역할을 하는 ‘노른자위 조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위원회 조직이지만 사실상 관련 부처 장악이 가능한 ‘헤드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과 권한의 성찬 속에서도 정작 국민들은 ‘동북아경제중심’ 프로젝트의 개념, 비전, 구체적 내용이나 실행 방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관료, 학자, 기업인들조차 나름의 이해만 있을 뿐, 객관적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진보진영이건 관료건 주류 경제학자이건, 비판의 핵심은 “구호일 뿐 현실성이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이다. 이는 단순히 짧은 연구·학습 기간 때문인가, 아니면 프로젝트 자체에 내재한 치명적 하자 때문인가.
정책인가 프로파간다인가
동북아 프로젝트가 ‘뜨자’ “그 개념은 내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이에 청와대는 “노대통령은 이미 1997년 한 워크숍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고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중이던 2000년, 구체적 구상을 하게 됐다. 그 일부가 당시 집필한 ‘노무현의 리더쉽 이야기’에 수록돼 있다”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특히 노대통령은 물류 허브의 비전을 담고 있는 김재철 무역협회장의 저서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동북아 구상이 노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국민의정부 말기 재경부가 추진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론일 것이다. 이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 경제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5~10년 내에 한국 경제의 위상을 재정립하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는 중국과 일본 경제 사이에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동북아 물류중심지화 및 비즈니스 거점화 추진을 목표로, 수도권 서부축 개발, 경제특구(경제자유구역) 지정, 외국기업의 경영환경 및 외국인 생활 환경 개선 등을 도모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안은, 지난해 11월 경제자유구역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치 일정과 관계없이 지속성을 갖는 국정 과제로 채택되었다.
한편, 대선 후보 시절 노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 중심국가론’은 재경부의 그것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북 협력에 대한 비중을 높여 ‘북방 특수를 적극 주도한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동북아시아 경제 및 평화협력체’ 창설 추진, 동북아개발은행·동북아철도공사·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 설립 등 동북아 블럭과 관련한 그간의 연구성과를 총망라한 듯 화려한 비전 제시가 이어졌다.
“사실 당시 동북아 구상은 신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계발된 것이었다. 7% 성장론을 채택하면서 이그를 추동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다, 중국·북한·러시아 등 동북아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한 특수 창출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 남북문제와 경제문제 해결을 동시 추진한다는 장점도 있었다.”
당시 정책 계발에 참여했던 경제전문가 A씨의 설명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그림 1>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추진체계론
결국 당시의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 노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를 거치면서 성격에 큰 변화가 왔다.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새 정부의 경제정책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국정과제로 재정립된 것이다. 다시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후보 시절 동북아 중심국가론은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어젠더라기보다, 국외를 겨냥한 성장 동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활동 참가율 향상, 시장개혁, 국가 R&D 시스템 효율화 등이 동력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인수위에 오면서 이 두 가지가 한데 섞여 몽땅 국내 정책으로 탈바꿈해버린 거다.”
청와대 홈페이지(www.cwd.go.kr)에 올라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해설을 살펴보면 후보 시절과 비교해 큰 변화가 있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산업혁신 클러스터(Clusrer)’의 급부상이다. 반면 이전에 재경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물류·금융 중심지 구상은 산업 클러스터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물러앉았다.
산업 클러스터는 일종의 산업 집적 단지. 1990년대 초 마이클 포터 교수에 의해 그 중요성이 부각된 개념으로 기존의 ‘공단’과는 여러 차별점을 지닌다. 간단히 설명해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특정 지역에 모여 ▲네트워크 구축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업 전개, 기술 개발, 부품 조달, 인력·정보 교류 등에서 시너지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삼성경제연구소, ‘산업 클러스터의 국내외 사례와 발전전략’ 참조).
그렇다면 왜 갑자기 산업 클러스터가 동북아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한 것일까.
“재경부가 계획한 금융·물류 중심 프로젝트는 해외 자본 및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금융·부지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 변수는 어떤 나라라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혜택을 보장해준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한 문제의식하에, 특별한 혜택이 없어도 외국의 자본과 지식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보다 항구적이면서 지역 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만한 해법을 찾게 됐다. 그것이 바로 산업 클러스터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한 인사의 설명이다. 산업 클러스터는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전략 연구과제이기도 했다. 인수위 경제분과에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합류하게 되면서 동북아 프로젝트는 대선 공약 시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는 동북아 프로젝트의 큰 틀을 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정태인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 위원(현 동북아추진위 기획운영실장)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표>공단 vs 클러스터
추진위가 본격 가동한 지금, 프로젝트는 또 한번 변신했다. 스케일은 더욱 커졌고, 산업 클러스터 개념이 하위 전 분야에 걸쳐 골고루 뿌리내렸다. 금융 허브 개념과 경제자유구역의 위상은 더욱 축소됐다.
를 보면 새 정부가 구상중인 동북아 프로젝트가 얼마나 방대한 분야와 내용을 아우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목표도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로 더욱 웅대해졌다. 이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에 서 EU, NAFTA에 대응할 만한 경제 블럭을 주도적으로 완성하겠다는 뜻이다. 주변국의 항의에 부딪혀 프로젝트명을 ‘동북아 중심국가’에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 다시 ‘동북아경제중심’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선택이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동북아 프로젝트에 대한 가장 적극적 비판은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을 젖혀두고 우리나라가 동북아 경제중심이 될 가능성 자체가 극히 낮다는 시각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이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다. “한마디로 공허하다. 동북아 경제중심이 뭘 의미하는지도 명확치 않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안이 없질 않은가. 우리끼리 중심국이라고 하면 누가 인정해주나.”
한편 추진위가 말하는 동북아 프로젝트 추진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동북아지역이 세계 경제의 성장축으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시장 기회 및 투자처 확보 기회가 생겨났다. 둘째, 우리나라는 동북아지역의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여건뿐 아니라 다각화된 산업기반, 세계수준의 제조공정기술, 우수한 인적자원,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제도개선 등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근거’보다 더 중시되고 있는 것은 당위성과 절박성일지 모른다. “10년 후 뭘 먹고 살까”를 고민하다 보면 동북아를 향한 비전 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북아 프로젝트가 정답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경제공동체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먼 얘기이고, 미국 중국 일본 모두 부담스러워 할 일이다. EU만 해도 결성 당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견제를 받았다. 중국 일본은 코웃음을 칠 거다. 비전을 ‘지향’할 필요는 있지만 국제 역학관계를 무시한 ‘오버’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추진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경제계 인사의 우려다.
“이렇게 육박전을 치러야 하나”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유일한 카드는 남북협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1년 10월, 노대통령에게 ‘햇볕정책 계승의 근거로서의 동북아 경제협력 방안’을 건의했다는 재미 사업가 B씨는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경제 규모를 키워야 한다. 남북 경제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양쪽 합쳐 1억명에 가까운 내수시장 획득과 중국·러시아 진출로 확보 등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국내 정책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남북경협 추진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어차피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 ‘중심’ 운운하는 것부터 대단히 위험하다. 외국에서는 아주 이상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폐쇄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사실 남북 긴장완화는 발전을 위한 카드일 뿐 아니라 동북아 프로젝트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안정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해외자본 유치란 난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2>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의 기본구상
재경부와의 갈등은 또 다른 잠재적 불안 요소다. 한 재경부 관료는 “참여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프로젝트는 50년 후쯤에나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재경부가 제안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은 10년 후 뭘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절박한 고민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추진위는 우리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동북아경제공동체 건설’ 등 너무 큰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 보고서를 봐도 일정 하나 정해진 게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산업정책에 있어 정부 개입은 가능한 한 최소화한다는 것이 우리 정책 기조다. 노대통령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강조하고 있지 않나. 이는 곧 규제 완화와 불필요한 간섭의 배제를 뜻한다. 그런데 동북아추진위는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리려 하고 있다. 기업더러 이 지역으로 가라, 저 연구소와 손잡아라 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지 않나. 한시가 급한 때에 이렇게 육박전을 치르고 있어야 하다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개방 경제로 가는 것은 새벽이 오는 것과 같은데 그걸 거부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사실 재경부와의 갈등은 인수위가 경제자유구역 정책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금융 허브론에 제동을 건 시점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 두 주제에 대해서는, 그러나 재경부의 손을 들어주는 쪽보다는 추진위의 재검토 및 축소 방향에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 더 많다. 그렇더라도 주무부처인 재경부와의 해묵은 갈등은 향후 사업을 시행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위원회 구성의 적합성, 효율성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위원회에는 모두 25명의 장관급 위원이 있다. 재경·산업자원·통일·정보통신·건설교통·외교통상·해양수산·기획예산·문화관광부 장관 및 국무조정실장·정책실장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민간 위원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김수룡 미국메리디엔파트너즈그룹 회장, 김국웅 우리로광통신 회장,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양수길 김&장 고문, 유종일 KDI 국제대학원 교수,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임계순 한양대 교수, 최명주 한국IBM 부사장, 한민구 서울대 교수, 황호선 부경대 교수,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이다. 개중에는 어떤 특장점으로 인해 위원회에 합류했는지가 불분명한 이들도 있다. 직업적 특성상 정책결정에 참여하기에는 적합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위원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느냐”고 묻자 배순훈 위원장도, 다른 위원들도 모두 “아는 바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두 번 회의에 들어가봤는데 의견 교환이 잘 되질 않는다. 다 자기 방식, 자기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있다. 시각 차이가 너무 큰 데다 진도도 잘 안 나가서 그런지 회의록을 정리하던 친구가 ‘허탈하다’는 말을 하더라.”
위원으로 활동하는 C씨의 말이다.
경제부처 屋上屋 되나
추진위 밑에는 다시 5개의 전문위원회가 있고 각각 15명 정도의 전문위원과 20여 명의 자문위원이 있다. 여기에 파견 나온 공무원과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까지 합하면 상근·비상근 합쳐 220여 명에 달하는 대조직이 된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넓은 분야에 걸쳐, 딱히 선 가르기 힘든 일을 하는 조직인데 사공이 너무 많고 조직도 너무 방만하다. 이러다 국민의 정부 ‘제2건국위’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각 부처는 요즘 동북아추진위 등 3대 국정과제 위원회에 파견할 인력을 차출하느라 부산한 분위기다. 동북아추진위에만도 재경부 국장과 과장 각 1명, 통일부 국장, 산자부·기획예산처·건교부 과장 각 1명 등 10명의 공무원이 파견 나와 있다. 부처별로 각 국정과제 관련 지원단 혹은 지원팀 꾸리기도 한창이다. 실무는 부처에서 하지만 사실상의 의사 결정은 각 위원회로 넘어간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동북아추진위를 향한 ‘쏠림’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다. 관련 부처가 많은 데다 업무 범위도 대단히 넓기 때문이다.
동북아 프로젝트에는 항만 개발부터 도로 확장, 외자 유치, 금융 선진화, 관광산업 육성까지, 경제성장과 관련한 대부분의 항목들이 포함돼 있다. 정통부의 한 관료는 “동북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에도 부처별로 다 하던 일들이다. 그 중 좋은 것만 골라 한데 몰아 넣어둔 셈 아니냐. 이전에는 부처간 조정해야 할 사안이 있을 경우 사무관급, 과장급에서 해결을 보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별수없이 최소 국장급까지는 밀려 올라가게 됐다.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 그래도 비효율적이라 비판받는 공무원 조직에 또 하나의 ‘옥상옥’을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외자유치의 경우 만 해도 이미 외국인투자유치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동북아추진위에서 외자 유치를 통괄한다면 그 위원회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이에 대해 동북아추진위 이정협 수석전문위원은 “각 부처는 추진위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추진위는 각 부처가 추진하는 동북아 프로젝트 관련 사안에 대한 자문, 주체 간 이견 조정에 주력할 것이다. 권한의 규모와 한도는 아직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국무조정실이 일이 다 끝나고 난 뒤 조정에 나서는 형태였다면, 우리는 사업 구상단계부터 서로 협력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려 한다. 그를 위해 횡적으로는 그랜드 비전부터 투자 유치를 위해 다국적 기업을 만나는 일까지, 종적으로는 대통령 이하 각 부처로부터 이해 당사자, 시민단체를 만나는 일까지 매트릭스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폭넓게 움직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동북아경제중심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압축 성장의 동력 역할을 해온 대기업과 관료 조직의 역량,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의 역량이 한데 묶여져야 한다. 그런 팀워크 형성에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색깔 분명히 하라”
일각에서는 “결국 사업은 돈인데, 그러다 보면 몇몇 재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추진위가 삼성, 현대, LG, SK 등 몇몇 그룹 관계자들과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재벌이 국가-지역 혹은 대학이나 연구소를 잇는 ‘전달매체’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재벌개혁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이는 동북아 프로젝트가 시장 중심 논리가 아닌 국가주도형 산업정책으로 보여지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실제로 추진위의 산업정책 중심 접근방식에 대해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 투명성 확보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클러스터는 유럽식 사민주의의 기초 위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다듬어진 것이다. 정부가 총괄적 리더 역할을 맡고, 대기업 또는 금융기관이 오거나이저 역할을, 중소기업이 그 실질적 내용 채우기를 담당하도록 돼 있다. 실리콘밸리식도 금융기관이 독립된 의사에 따라 개별 기업에 대한 스크리닝, 모니터링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유럽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 경제주체 간에는 아직 그와 같은 이해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금융 시스템도 미비하다. 기본적인 기업회계 투명성조차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그는 아울러 “산업정책은 ‘허리’에 해당한다. 기업·금융 제도 등 매크로한 영역, 노사 문제·기업지배구조 문제·경제 윤리 등 마이크로한 영역을 함께 풀어가지 않고서는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런데 동북아 프로젝트에는 마이크로한 영역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은 선험적으로 다 설계해놓고, 그 결론에 맞춰 전제를 구축하려 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뜻은 좋으나, 보다 정교하고 색깔이 분명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지금 동북아추진위의 계획 속에는 주주중심주의적 사고와 민족경제학적 색채, 계획경제의 성격 등이 혼재해 있다. 이래서는 일관되고 효율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우선 그런 내적 충돌을 해소할 수 있어야 향후 일정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프로젝트는 이제 막 스타트라인에 섰을 뿐이다. 앞으로 이 정책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절세의 비급(秘핞)’이 될지, 비현실적 행정 낭비와 정책 실패의 표본으로 기록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비판을 쏟아내는 쪽의 이해가 아직은 부족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그 실체와 쟁점, 이론적 바탕 등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동북아 프로젝트는 참여정부 4년은 물론, 향후 우리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있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토론하고 논쟁할 것이 있으면 적극적 노력과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 민의를 모으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