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은 파이 키워 기업이 독식한 탓
- 사내유보금은 비업무용 부동산 같은 것…과세 당연
- 노무현 前대통령, 재벌과 경제관료에 휘둘려
-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
- 右에선 ‘빨갱이’, 左에선 ‘자본가 앞잡이’…
장하성(61)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9월 중순 펴낸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刊)에서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그는 책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국민총소득 중 노동소득 분배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해소하려면 재분배 이전에 임금과 고용 같은 1차적인 분배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월 2일 오후 고려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부 유보 적정선 넘었다”
▼ 출간 이후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 등으로 많이 바빠 보인다.
“보람을 느낀다. 다만 한국 사회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출간한 이 책보다, 우연히도 출판 시기가 겹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번역본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 같아 안타깝다. 피케티의 책은 역작이긴 하지만 한국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에 찬성했는데.
“적정 내부 유보를 넘어선 초과 유보에 대한 과세는 2002년 폐지됐다. 당시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할 테니 없애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다. 이후 제조업 기업의 총자산 대비 이익잉여금 비율이 2001년 2.8%에서 2002년 11.1%로 급증했고, 지금은 34%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는 기업이 사업과 관련 없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 전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과 내부유보세를 도입하면 내부유보금이 줄어들고 임금이나 배당으로 배분되는 몫이 늘어날 수 있다.”
▼ 재분배보다 1차적 분배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금 피케티의 자본세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피케티 자신도 이게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한국은 지금 분배 자체가 원천적으로 제대로 안 돼 있다. 그러니 지난 10여 년간 왜 분배가 점점 악화됐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한다. 경제는 성장했고 기업도 많은 돈을 벌었는데 왜 분배가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99.99%가 노동으로 먹고사는 상황에 가계로 분배되는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 최경환 부총리가 맥을 제대로 짚은 셈인가.
“그렇다. 다른 정책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은 잘하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걸 반대하는데 내가 보기에 김 대표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 비(非)박근혜계의 대표주자인 김 대표가 친박계 기대주인 최 부총리를 견제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부양책, 부메랑 될 수도”
▼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최 부총리가 동원 가능한 부양책을 다 쏟아 붓는 상황이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가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성장률이 좀 낮아지긴 했으나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해해선 안 되고,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결국 비용을 치러야 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지금의 부동산 부양 정책은 단기적으로 분명히 효과가 있지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건설업이 극도로 어려웠지만 구조조정을 안 했다. 오히려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기까지 했다. 돈은 풀렸지만 부동산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건설업 구조조정이 늦어졌고 지금 잘하는 건설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하나는 증세 문제인데, 우리가 조세부담 능력에서 아직 여력이 있다. 우리나라 재정적자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지 않아 재정 확대 여력도 있다. 그러나 물가안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결국 증세를 해야 한다는 얘긴데, 문제는 제일 먼저 들고 나온 게 담뱃세와 주민세라는 점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세수를 확보하려고 서민과 중산층에게서 세금 거두겠다는 얘기다. 난센스다. 아니, 내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내 피를 뽑아 나한테 수혈한다는 게 말이 되나.
더 많이 낼 수 있는 대기업, 초대기업, 재벌기업, 초고소득층에게 증세를 해야 한다. 지난해 17조900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에 대한 최고 세율이 22%로, 개인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낮다. 더욱이 200억 원의 이익을 낸 중견 기업이나 삼성전자나 똑같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개인소득세도 마찬가지다. 1억5000만 원 이상 소득에 대한 세율이 일률적으로 38%인데, 평생 일해서 은퇴할 때쯤 임원 승진해 1억5000만 원을 받는 사람이나 1년에 100억 원 가까이 받는 사람이나 똑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누진 구조를 바꿔 조세 형평성을 확보한 다음 국민에게 ‘이걸로 부족하니 세금을 조금 더 내자’고 설득해야 한다.”
▼ 소득불평등이나 양극화가 심화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라는 비판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를 청산했다고 높은 평가를 받지만, 경제적으로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서 특별히 한 게 없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 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해 처음으로 국민에게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줬다.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복지예산을 늘렸다고 하지만, 경제 전체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 대통령 때 급증했다. 처음에는 재벌 개혁을 내세웠지만 당선되자마자 안정으로 기조가 바뀌었고, 다시 성장으로 갈아탔다. 경제 문제에서는 기득권 세력, 즉 재벌과 경제관료에게 휘둘렸다.
노 전 대통령만큼 경제 관료를 중용한 분이 없는데, 문제는 대체로 그들에게 영혼이 없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떴을 때 노 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사람 가운데 문상을 하지 않은 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때 장례비가 모자라 노 전 대통령 당시 고위 관료들에게서 비용을 갹출했는데 안 낸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등용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 아닐까. 그처럼 영혼과 철학이 없는 분들과 경제를 끌고 갔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나.”
“안철수든, 김철수든…”
▼ 안철수 신당에 참여했는데….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두 정당의 대립적 정치구도가 한국 정치를 병들게 하는 상황에, 안철수 당시 후보가 집권하진 못하더라도 제3의 대안 정당은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참여했다. 다만 현실정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시 주변에서 안 후보 캠프행(行)을 모두 반대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젊었을 때는 무지개가 있는 줄 알고 좇았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무지개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좇아가고 싶다. 대선 끝나면 돌아온다’고.”
▼ 현상적으로 보면 안철수 신당은 실패했다.
“실패라기보다는 성공하지 못한 거다.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지만 함께 잘사는 사회에 대한 국민의 꿈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꿈을 기존 정당이 이뤄주지 못하는 한 안철수가 됐든 김철수가 됐든 또 다른 새 인물이 됐든 그 현상은 존재한다고 본다.”
▼ 안철수 후보 자신은 ‘안철수 현상’의 본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
“내가 말한 것과 똑같이 이해했다.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발표한 정책 중 안철수 후보와 토론하지 않고 발표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 바쁜 와중에도 핵심적인 정책은 안 후보가 직접 20~30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토론에 참석한 다음 최종 결정했다. 안 후보가 스펀지 같아서, 그 짧은 토론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흡수했다.
그가 대선 후에라도 신당을 창당했다면 새로운 형태의 의미 있는 정당이 됐을 것이다. 대선 이후 민주당 쪽에서 안 후보에 대해 ‘진정으로 도와주지 않았다’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결코 잘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박근혜 후보와 양자 대결 구도에서 경쟁우위에 있었던 후보가 양보한 것보다 더 큰 지원이 뭐가 있겠나.”
내부회사 혹은 ‘50%+1주’
▼ 재벌 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소유구조 개편을 들었는데.
“지도자의 의지만 있으면 쉽게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 ‘친(親)기업’을 내세우다 나중에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대기업이 이 품목은 해도 된다, 저 품목은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두부 장사만 해도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데 국가가 언제까지 품목 분류에 매달려야 하는지 한심했다. 근본적인 구조를 안 건드리고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소유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72개인데, 그중 상당수는 계열사가 안 도와주면 경쟁력이 없다. 규모가 큰 삼성SDS나 에버랜드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내부거래로 존속하는 회사들은 대개 대주주 지분이 많거나 대주주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게 배당을 하는데, 반면 대주주 지분이 높은 비상장 기업은 ‘배당 잔치’를 한다. 이게 소유구조에서 오는 문제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호텔신라 지분을 가진 이유를 ‘수익성 있는 사업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하는데,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익 17조 원 중 호텔신라에서 받은 배당수익은 0.003%밖에 안 된다. 반면 이번에 상장을 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수조 원의 상장 차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SDS는 지난 5년간 매출액의 75%가 내부거래다.
재벌 총수가 국가 경제를 위해서 경영을 하는가. 그러면 회사는 망한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 만나 ‘투자하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대통령 말을 따른다면 국민은 박수 칠지 모르지만 기업은 망한다. 물론 국가 경제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회사의 생존을 위해, 자기 이해관계에 충실한 결정에 따라 투자한다.
미국의 보잉이나 GE는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를 통해 금융사업을 한다. 이른바 내부회사다. 사업상 필요하다면 이런 식으로 내부회사 방식을 이용하든지, 그게 어렵다면 ‘50%+1주’를 소유하라는 얘기다. 그리고 총수 가족이 대주주인 비상장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회사의 사업 기회를 탈취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회사는 내부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구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성장의 한계에 왔다고 봐야 한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정보기술 기업 노키아 매출액이 한때 한국의 삼성그룹처럼 그 나라 전체 GDP의 25%나 됐다. 그러다 노키아가 삐끗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하니까 핀란드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언제까지나 덩치를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재벌 구조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을 막으려면 이를 유지해 주는 여러 수단, 예를 들면 일감 몰아주기, 사업 낚아채기, 도급구조 등을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유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고 본다. 지난 1년 반은 한 게 없다고 해도, 아직 3년 반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박 대통령도 해결을 못하면 노무현 전대통령 이후 15년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성장동력, 녹색성장, 창조경제, 혁신경제를 외치는데 그걸로는 안된다.”
▼ 삼성전자 실적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삼성전자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 말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과 같은 얘기가 돼버렸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4조1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홍콩의 증권 애널리스트들이 그런 전망을 내놨는데 그때 일부 언론이 ‘외국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죽이기’라고 했다. 답답한 일이다. 삼성전자가 언제까지나 스마트폰으로 호황을 누릴 수 없다는 것도 많은 애널리스트가 거론해왔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은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정말 잘 해주면 좋겠다.”
‘성장 마약’과 ‘총수자본주의’
▼ 한국전력 부지 입찰에서 삼성이 10조5500억 원을 베팅한 현대차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써낸 것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합리적인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시각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이 경영진에 진입한 지 꽤 됐지만 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를 듣는 게 문제다. 그래도 창업 세대는 약간의 과오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3세 경영인들이 우리 사회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 창업자 가족이라고 해서 경영에 참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세금을 제대로 내서 부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경영 능력이 있는지 검증받아야 한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 가족이 한때 회사를 경영했지만 지금은 손을 뗐다. 창업주인 헨리 포드에 이어 손자가 꽤 오랫동안 경영을 했고, 그리고 그 손자의 조카가 몇 십 년 후 내부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러나 7년 하고 밀려났다. 유럽에는 창업주 가족이 계속 경영하는 비상장 중소기업이 많다. 특히 명품 브랜드는 대부분 가족기업이다. 그러나 그건 소기업이거나 전문화한 기업들 얘기이고,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 올들어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 등이 갑작스럽게 대규모 손실을 발표했다. 무리하게 외형 성장에 매달리다 뒤늦게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 기업인들은 내실을 추구하기보다 외형 성장에 몰입한다. 주주가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는데도 그렇다. ‘성장 마약’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외형적으로 뭔가를 보여야 총수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총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옷을 벗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총수자본주의’다.”
▼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무리한 외형 성장을 추구하다 큰 후유증을 앓았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지 않는 한 5000만 명을 쪼개 먹는 구조다. 그래서 오래전 금융개혁을 할 때 대형화해주면 국제경쟁력을 갖춰 적어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여력을 찾아내지 않겠느냐고 봤다.
그러나 결국은 부동산 대출 말고는 우리나라 금융회사가 한 게 뭐 있는가. 외형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부동산 대출이다. 그게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졌고.”
수출 안 하고 달러 벌기
▼ 최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는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이 기획해체했다’고 주장했다.
“훌륭한 분이었는데 안타깝다. 한때 우리 젊은이들이 우상으로 여기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운 대상이었던 분인데,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음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김 전 회장 처지에서는 억울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어느 나라의 어느 관료, 어느 정치인이 자기 나라 기업을 ‘기획’해서 망하게 하겠나. 그리고 대우그룹은 해체됐을지 몰라도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 등 당시 대우그룹의 주력 회사들은 다 살았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우전자가 계속 유지되지 못한 것은 아깝지만.”
▼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한 장하성펀드를 2012년 말 청산했는데.
“경영학자로서 하나의 실험이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기업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외국에서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가 발행하는 주식이나 회사채는 현금으로 바꿔준다. 그러니 똑같은 이익을 내고도 이 회사들의 가치가 1만 원일 때와 2만 원일 때는 벌어들이는 달러에 많은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주식을 발행하면 다 팔린다. 물건 안 팔고 종이 한 장 찍어주면 달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그건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그래서 기업 가치를 국제적으로 제대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이걸 단순히 투기꾼들의 장난으로 치부하는 건 금융시장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현재의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으면 그 가치를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 장 교수를 보는 시각이 다양한 것 같다. 스스로는 어떤 인물로 평가받기를 원하나.
“가장 싫어하는 건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 나를 집어넣는 것이다. 일부 우파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하고 좌파 일부에서는 자본가의 앞잡이라고 한다. 내 관심은 오늘의 한국 현실을 정확히 보는 것,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다. 그런데도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장하성은 우리 편이 아니다’고 얘기한다. 극단으로 가야 환영받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