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30여 개국 정상 중 유일하게 시진핑 주석과 오찬 회담을 했다. 동아일보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을 전후해 전국 각지에서 ‘항일역사’ 등을 주제로 한 전시회, 좌담회, 영웅 노병들에 대한 위문, 항일 유적지 보수 활동, 문예작품 창작 활동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이 행사의 귀빈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군 열병식에도 참석함으로써 양국 간 역대 최고 수준의 우호관계가 형성됐다.
우리의 뼈아픈 남북 분단에 직접 영향을 미친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에 우리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자칫 한미일 삼각공조 대열에서 이탈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다.
역대 최고 우호관계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는 저성장과 위안화 쇼크 같은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경제위기설 확산과 200명 이상 희생된 톈진 폭발 참사로 인한 민심 동요를 잠재우려 애쓴다. 열병식을 통해 안으로는 항일 영웅들을 내세워 체제결속을 다지고, 밖으로는 신무기를 선보여 대내외에 국력을 과시하려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경제 교류가 지속적으로 강화돼 이제는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정부의 고민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도대체 현재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얼마나 높기에 박근혜 정부는 고민 끝에 열병식 참석을 결정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공동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과거 일본제국주의 침탈에 저항해 싸운 전통을 건국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현재까지 양국 간 경제 교류 현황을 교역, 투자, 금융 협력, 기술협력, 인적 교류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살펴본 결과 양국 간 경제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측정 가능한 내용만 보더라도 한중 간 교역 규모는 1992년 63억8000만 달러에서 2014년 2353억7000만 달러로 약 37배 증가했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1992년 3.5%에서 2014년 25.3%로 확대되면서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상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투자는 어떠한가. 지난 22년간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17배, 중국의 대한(對韓) 직접투자는 1100배 증가했다.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1992년 2억2000만 달러에서 2014년 37억5000만 달러로 연평균 14.0% 증가했다. 중국의 대한 직접투자는 1992년 100만 달러에서 2014년 11억9000만 달러로 연평균 약 38%씩 증가했다.
그뿐 아니라 중국계 자금의 국내 유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한중 간 금융 협력은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됐으나, 2008년 이후 원-위안화 통화 스와프 체결,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등으로 양국 교류가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 및 채권 시장에 유입되는 전체 외국인 자금 중 중국계 자금 비중이 2009년 각각 3.7%, 9.7%에서 2014년 31.9%, 46.5%로 급증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경제 교류
한중 기술 무역 규모는 2001년 1억9000만 달러에서 2013년 36억3000만 달러로 19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중 수출 규모는 1억9000만 달러에서 34억2000만 달러로 18배 증가했다. 기술무역 흑자 규모도 1억8000만 달러에서 32억 달러로 확대됐다.
양국 간 인적 교류는 1995년 70만8000명에서 2014년 1030만9000명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방한 외국인 중 중국인 비중은 2014년 기준으로 약 50%에 달한다. 대중 관광 수지는 2012년부터 흑자로 전환돼 2014년 현재 78억2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리나라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최고 우방국이었다면, 이제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문화적 공감대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얻은 것이다. 똑같이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받고 오랜 항쟁 끝에 민족해방과 자유를 얻은 두 나라인 만큼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간절히 희망했던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무엇보다도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타격을 줬다. 또한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 중국의 인권 문제와 공격적 외교정책을 불편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우방인 한국 대통령이 참석함으로써 흥행 성공은 물론 행사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한중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에 맞춰 진행된 양국 정상회담은 동북아 판도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세에 관한 3대 원칙을 재확인하는 한편 양국 간 정치, 경제, 무역 등 여러 방면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세계 평화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政冷經熱→政熱經熱
이로써 한때 ‘정랭경열(政冷經熱)’이라 불리던 한중관계가 ‘정열경열(政熱經熱)’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중국 정부 및 고위층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여 두 나라가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또한 두 나라가 AIIB 출범을 앞두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한중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은 또 연내 FTA 발효 및 경제동반자협정(RECP) 협상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11월 1일 열린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대한 공동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두 나라 간 견고한 신뢰를 과시했다. 이제 큰 틀에서 우리의 국익과 미래 번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올해 3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보아오 포럼 기조연설에서 “대외투자를 늘리고 개혁·개방을 심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아시아 운명공동체’를 강조했다. 이는 경제적 공영 외에도 안보 등 다각적인 분야에서 지속적인 협력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경제뿐 아니라 안보 영역에서도 ‘운명공동체’로 가기 위한 한중 간 지속적인 협력과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50여 년간 중국을 겪어오면서 두 나라가 상생적 동반자가 되려면 지도자들이 상대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국민의식을 깊이 이해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래야만 상호 신뢰와 존중에 바탕을 둔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李映周
● 1942년 출생
● 중화민국 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졸업, 베이징대 박사(국제정치학)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제위원장·상임위원
● 現 베이징대 객원교수, 중국정경문화연구원 이사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이영주한중인재양성장학재단 이사장
● 저서 : ‘중국의 신외교전략과 한중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