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각론 없는 이민 개방, 정말 괜찮은가

[김세연의 다른 관점] 저출산에 대한 한 줄짜리 처방, 곤란하다

  • 김세연 前 국회의원

    입력2023-11-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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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촌놈들은 모르는 韓 시골 상황’

    • 다문화가정, 일종의 한국판 PC 표현

    • 과연 한국은 인종차별과 무관한가

    • 韓 이민 인구 비율, 美의 50분의 1

    • 단일민족 관념, 땅에 묻을 수 있나

    • 뒷감당 못 할 우리의 사회통합 능력

    [Gettyimage]

    [Gettyimage]

    8월 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 촌놈들은 모르는 지금 한국 시골 상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사진 6장이 곁들여진 이 글은 금세 화제가 되면서 지상파방송에까지 소개됐다. 글쓴이가 시골 본가에 내려가 동네 마트에 가보니 동남아 식재료가 가득 진열돼 있어 놀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사진마다 설명을 붙였는데, ‘이름 모를 외국 생선들과 잘 손질된 개구리 고기’가 포장돼 담겨 있었고, ‘계란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다시 보니 거위알’이었으며, ‘음료도 태국어와 베트남어 등으로 적힌 제품들’이 나열돼 있고 라면도 그렇다고 했다. 특히 한쪽에서는 뱀과 토끼 고기까지 팔고 있어 더 놀랐다고 했다.

    판매하는 물건에만 놀란 게 아니라, ‘서양 아저씨, 동남아 아주머니, 서양+한국 혼혈 아이들, 동남아+한국 혼혈 아이들 모두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 하는데 신기했고 해외여행 나온 느낌’이었으며 ‘다인종들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니 어색하면서도 한국어가 이 세계 공용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현재 이 글은 내려진 상태지만, 화제가 되다 보니 네티즌들이 다른 게시판에 퍼 나른 글이나 관련 기사 등은 남아 있다. 여기에는 “시골이 아니라 동남아 관광 간 느낌일 듯” “웬만한 농촌 지역도 마트 한쪽에 이런 코너는 꼭 있더라” “한국 저출산 문제 떠들 때 이미 예상한 현상 아닌가요”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다.

    위 글은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는 평범한 한국 국민이 시골 마트에서 겪은 경험으로 음식 문화의 차이를 깨닫고 문화충격을 받은 소감을 적은 것이다. 한반도 ‘원주민’으로서 한국 국민이 새로 유입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려면 음식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큰 차이점을 느끼게 될 텐데, 우리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얼마나 돼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극소수의 반발을 빼고는 ‘개고기 식용 금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35년 전인 88서울올림픽 당시엔 의견 분포가 지금과는 거의 정반대였다. 당시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식용을 맹비난하며 ‘한국은 야만 국가’라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문화상대주의’라는 방패를 꺼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반려동물로서 사회적으로 이미 가족의 지위에 편입된 개를 식용의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는 더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대상이 바뀌어 각국 음식 문화의 차이로 인해 뱀, 토끼, 개구리가 식재료로 손질돼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걸까.

    앞선 연재에서 저출산이 반드시 재앙이 아닐 수 있고,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문명을 선도적으로 여는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제는 ‘저출산 재앙론’을 졸업하자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즉 전면적이고 과감한 ‘자동화’ 혁명을 통해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상황을 돌파하자는 취지였다. 지난 주제와 일부 겹치는 듯 보이지만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출산 재앙론’의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현 상황을 보면 ‘단일민족국가 대한민국이 자체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여의치 않으므로, 인구 급감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이민 문호를 과감하게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자고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다.



    ‘동화형’ ‘통합형’ ‘다문화주의형’

    이주민이 많아 외국어 간판들이 눈에 띄는 경기 안산역 풍경. [동아DB]

    이주민이 많아 외국어 간판들이 눈에 띄는 경기 안산역 풍경. [동아DB]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민정책의 여러 유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이민정책은 크게 ‘이출(emigration) 정책’과 ‘이입(immigration) 정책’으로 나뉜다. 이민자 수용국 입장에서 ‘이입 정책’은 다시 ‘누구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제한할 것인가, 누구를 어떻게 유치할 것인가’를 다루는 ‘유입 정책’과 ‘유입된 이민자를 수용국 사회에 어떻게 편입시킬 것인가’를 다루는 ‘편입 정책’으로 나뉜다. 편입 정책은 구분 배제(differential exclusion), 동화(assimilation), 통합(integration),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구분 배제형’은 주거지를 교체 순환해 이주민의 정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으로 이 글의 논의와는 관련이 적어 제외하고 보겠다. 다른 세 가지 유형은 이민자를 수용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편입시킬 것인지에 따라 구분된다.

    어떤 유형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동화형, 통합형, 다문화주의형은 국가마다 이민자가 유입되는 상황과 목표가 달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창원, ‘이민정책의 세계적 흐름과 과제(2017)’ 참조)

    단일민족국가 관념이 너무도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민’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쓰기 부담스러웠던지 일찌감치 이민자가 포함된 가정을 ‘다문화가정’으로 불러왔다. 한국판 ‘정치적으로 올바른(PC) 표현’의 하나다. 이런 회피성 명명으로서의 ‘다문화’ 말고 학문적으로 정립된 ‘편입 정책’의 유형, 즉 동화형·통합형·다문화주의형 중에서 우리한테 가장 잘 맞는 유형은 무엇일까. 많은 나라에서 번성하는 중국 화교 커뮤니티가 유독 한국에서는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은 한국인의 의식 속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이민정책관(觀)이 ‘동화형’이라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2020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이민자, 동포, 난민, 유학생, 전문직, 이주노동자, 탈북민 등 이주민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및 면접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68%가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는데, 피부색(24%)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이었던 반면 한국어 능력(62%), 말투(56%), 출신국(56%)을 이유로 느끼는 차별의 비율은 높았다. 한국의 인종차별은 외견상의 생물학적 이유보다는 출신국의 경제수준이나 말투 같은 일상 속의 사회적 이유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종족 차이가 없는데도 사회·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인종화(racialization)’하는 일상 속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다수의 국민이 ‘한국은 인종차별과 무관하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에서 심각함이 더 크다.

    ‘전통적 이민국가’와 비교하면…

    한편, 지금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이주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까. 통계청과 법무부의 통계 작성 목적과 기준이 달라 전체 양상을 정밀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으나 최신 통계를 종합해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만, 2011년부터 2021년까지의 다문화가정 결혼 및 이혼 건수의 누적 합계 비율로 구한 이혼율은 약 55%인데, 위 다문화가구 통계에서 이혼 변수가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지, 이혼 이후에 다문화가구 구성원 중 결혼이민자와 혼인귀화자가 계속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지, 원래 국적을 두고 있거나 두었던 국가로 귀환하는지, 이때 자녀를 동반하는지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018년 당시 다문화가구 구성원이 101만 명이었는데 5년간 10만여 명이 늘어난 것으로, 증가세가 높은 편은 아니다. 단, 코로나19 탓에 인구 이동에 큰 제약이 있던 시기였음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

    건국 자체가 이민을 통해 이뤄진 ‘전통적 이민국가’의 인구 구성에서 ‘해외출생자’, 즉 이민 1세대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호주와 뉴질랜드 경우 약 30%, 캐나다는 약 20%, 미국은 약 15%에 이른다고 한다. 같은 기준으로 현재 국내 이민 1세대의 비율을 보면 결혼해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도 원국적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결혼이민자를 합해도 0.7%이고, 혼인귀화자만 보면 0.3%에 불과하다. 국적을 취득한 순수 이민 인구 비율로 보면 미국의 50분의 1, 호주와 뉴질랜드의 100분의 1 수준이다.

    9월 21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제15회 결혼이민자 취업박람회를 찾은 결혼이민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뉴스1]

    9월 21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제15회 결혼이민자 취업박람회를 찾은 결혼이민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뉴스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이민 관련 통계에서 가장 최근치는 2019년 기준이다. 그 이전 6~7년치를 종합하면 프랑스는 매년 20만 명대 중후반, 영국은 30만 명대 중반, 독일은 60만 명 정도의 신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은 시리아 난민 유입으로 일시적으로 100만 명을 넘긴 해도 있다. 2019년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독일은 인구의 0.7%, 영국은 0.5%, 프랑스는 0.4% 정도의 신규 이민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과연 준비돼 있나

    현재 대한민국 인구 약 5150만 명에 독일, 영국, 프랑스의 중간 수준인 인구 0.5%의 이민을 매년 받아들인다고 하면 25만 명 정도 된다. 2022년 출생아 수가 약 24만6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25만 명 수준의 이민을 받을 경우 합계출산율을 단번에 두 배 이상으로 높이는 효과를 볼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그럴 준비가 돼 있을까. 이민을 개방하자면 어떤 규모로, 어떤 속도로, 편입 정책은 어떤 기조로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각론은 없이 저출산 현상에 대한 한 줄짜리 처방으로 ‘이민 개방’을 거론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될 것이 없다.

    편입 정책의 유형 중 동화형의 미래는 주기적으로 폭동이 발생하는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된다. 이 방안이 지닌 일방성 때문에 장기적으로 사회통합에 큰 화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형이건, 다문화주의형이건 우리가 가입하고자 하는 다른 G7 국가들 수준으로 대규모 이민 개방을 추진하려면 먼저 단일민족 관념을 땅에 묻어야 한다. 필자는 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과연 이를 결단할 수 있을까. 참고로 ‘(한)민족’이 3번 등장하는 현행 헌법도 바꿔야 한다.

    현재 다문화가구 구성원 112만 명이 대한민국 인구 5150만 명 중 차지하는 비율은 2.1%다. 이와 달리 2021년 기준 출생아 중 다문화가정 자녀 비율은 6.0%다. 이를 감안하면 이들이 성장했을 때 원국적을 기준으로 한 대한민국의 인구구성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민 자녀들은 여러 이유로 학업성취도에서 원주민 자녀들과 격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교육격차, 학력격차가 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 소득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규모 이민 개방 상태에서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되는데 대규모 이민 개방을 시도하기에는 너무 섣부르다.

    지금 할 일 두 가지

    그럼,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다름’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우리의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앞서의 보고서 내용처럼 우리는 인종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종차별을 만들어낼 정도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 또는 미숙하다. 민족국가 안에서도 과거의 ‘지역’, 지금의 ‘진영’, 향후 ‘성별’의 다름으로 인한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데, 여기에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의 굵직한 단층을 추가로 얹을 때 현재 우리의 사회통합 능력으로 과연 뒷감당이 되겠나 싶다. 여기에 더해, 올지 안 올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남북통일 상황도 사회통합에서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둘째, 이미 한국에 와 있는 이주민들과 그 자녀들을 진정한 우리 이웃이자 나와 같은 존재들로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본격적인 이민 개방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할 일이다. 이주민을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주민이 일하기 꺼리는 영역에서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만 보거나 또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출산을 더 하라는 식의 사회적 목적으로만 보면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이주민 위에 군림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똑같이 존엄한 개인들을 그렇게 편의주의적으로 이등 국민으로 만들며 욕보여서는 안 된다. ‘자랑스러운 백의민족’의 정체성이 지금보다 많이 옅어진 이후라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아무리 봐도 이민 개방은 우리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어젠다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럼 인구 급감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소비 침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손이 부족해지는 영역에서 과감한 자동화를 통해 기계 노동에 맡기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자. 이 길을 택할 때 준비가 필요한 사안도 많을 텐데 추후 별도로 살펴보겠다.


    김세연
    ● 1972년 출생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 제18·19·20대 국회의원
    ● 여의도연구원 원장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 저서 : ‘리셋 대한민국’(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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