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한국 보수, ‘혁신자’로서의 정체성, 역량 보여줬는가”

['소수파 집권세력' 전락한 보수의 최후 골든타임]

  •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입력2024-07-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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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나아지려면 진보의 성숙, 보수의 혁신 필요

    • 보수는 ‘잘 지키기’ 위해 변화·혁신하는 것

    • 양보와 자기희생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어디 갔나

    • 세계화론, 공정사회론, 국민행복론…보수의 담론

    • 親尹 대 反尹 아니라 담론으로 자웅 겨뤄야

    • 경쟁자 혐오와 배제만으로 民心 회복 어려워

    [Gettyimage]

    [Gettyimage]

    정치가 좋아지려면 진보는 성숙해야 하고 보수는 혁신해야 한다. 진보의 성숙, 보수의 혁신 모두 그것의 이념·정책적 구현 주체인 정치가 앞장서 이뤄야 할 일이다. 최근 집권당이자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연이은 총선 패배로 보수 혁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상황이다. 보수의 실패를 지렛대 삼아 좋은 정치를 향한 현실적 계기가 하나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계기를 살리려면 보수 혁신의 내용과 방식을 마련하기 위한 의식적 사유가 시급하다. 보수 혁신에 대한 의식적 사유에는 좋은 정치를 구현할 다른 한편의 책임 주체인 진보 역시 관여해야 한다. 진보의 성숙, 보수의 혁신 모두 상대방의 관점과 접근 방법을 융합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 수단 갖지 못하면, 보존 수단 가질 수 없어”

    의식적 사유의 출발은 ‘문제’의 포착과 이해다. 특히 주체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즉 보수 정치세력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탓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역사와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문제의 특성을 추출해 실현 가능한 혁신의 지점과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한국 보수 정치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혁신자로서의 정체성 부재와 역량의 결핍’이다. 혹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의 미약함이다.

    보수 정치는 ‘지킴이’다.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주체다. 그런데 잘 지키기 위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역사 과정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의 내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변화의 수단을 갖지 못하면, 보존의 수단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 이유다.

    보수 정치는 근·현대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대전환기의 와중에 등장했다. 즉 소수 특권계급 지배의 정치에서 대중민주주의로, 산업혁명 이후 봉건적 토지 기반의 경제에서 상·공업 중심의 경제로, 그리고 세계대전을 거쳐 복지국가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수 정치는 전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혁신을 통해 성장하며, 통제할 수 없는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피해왔다. 바로 이것을 ‘보수 정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역사적 전형을 영국 보수당의 이념·정책적 노선, 디즈레일리의 일국민 보수주의와 볼드윈의 새로운 보수주의, 그리고 처칠의 버츠켈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사례의 공통 특성은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권익의 신장, 이를 앞장서 추구했던 진보 정책의 수용과 계승을 통한 사회적 안정과 조화의 구현이다.

    이는 도시 슬럼 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법, 노조 피케팅을 허용한 노조법, 노동시간의 단축(디즈레일리), 산업 동반자 관계의 조성, 고아와 노령자를 위한 연금법, 공영방송의 창립, 낙후지역법, 대중교통체계의 합리화, 의무교육 기간의 연장, 농공업 보조금 제도(볼드윈), 국가의료보험, 케인스 경제관리 방식의 인정과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산업 헌장’으로서의 중앙계획과 정부 개입(처칠) 등의 도입과 실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대표하는 한국의 보수 정치는 그런 역사의 전형에 비견될 성공의 경험을 쌓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 등 여러 차례 집권하면서 혁신에 필요한 물질적·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 보호·권익 신장했던가

    우선 한국의 보수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권익 신장을 위한 혁신을 수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방치·양산하고 그들의 권익의 보호와 신장을 억제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 및 소득 불안정, 산업재해이며, 파업 참여자에 대한 기업 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생명을 잃기까지 하는 노동 약자의 고통을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법·제도를 시행하는 데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저항한 점이다. 즉 기득권층의 양보와 자기희생,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유도하는 실천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진보(타자)에 대해서도 전혀 수용적이지 않다. 주로 적대감을 조성하고 공세적 태도를 취해왔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창은 종북주의로, 노동 존중에 대한 요구는 집단이기주의로, 양성평등과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차별철폐를 위한 실천은 반인륜적이고 반시민적 행위로 몰아갔다. 물론 생각과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름에 대해 적대성을 띨 수도 있다. 그래도 설득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정치는 자기와 다른 생각과 의견을 친(親)보수 주도의 매스미디어와 검찰 등 공안 권력을 동원해 배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왼쪽)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2017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동아DB]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왼쪽)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2017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동아DB]

    ‌한국의 보수 정치는 위태로운 길을 걸어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거의 주기적이라고 할 대규모의 사회운동적 도전과 저항에 직면해 왔다. 김영삼 정권 때인 1996∼199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박근혜 정권 때인 2016∼2017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등이 그것이다. 중산층·중도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 영향과 파장의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회 청원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 정치가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통제하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세력인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고유의 의제와 담론 제시 서툰 보수

    최근 들어 한국의 보수 정치는 혁신자의 색채를 띤 자신들만의 고유한 의제와 담론과 정책, 즉 노선을 만들고 제시하는 데 특히 서투르다. 진보를 비롯한 자신들의 경쟁자에 대해 혐오와 배제의 태도를 주로 취하는 이유다. 생산적 토론을 주도할 의제와 담론, 정책이 부재하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의존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편견의 동원이다. 이는 사회 안정을 해칠 반목과 갈등을 한층 더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김영삼 정권은 신한국론과 세계화론을, 이명박 정권은 공정사회론과 녹색성장론을, 박근혜 정권은 국민행복론과 통일대박론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론도 수용했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부를 떠나, 그래도 시대 변화와 정세에 조응해 세간의 기억에 남아 있는 담론들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사회적 합의 강조론, 유승민 전 의원의 공정한 고통분담론과 중부담·중복지론도 꽤 회자된 바 있다.

    한국의 보수 정치가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 혁신자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려면 이런 유의 담론을 밑천 삼을 필요가 있다. 작금의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친윤 대 반윤 시비를 넘어서서, 그런 담론들이 자웅을 겨루는 장이 될 수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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