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후 쏟아진 ‘비난의 화살’…입 닫고 있을 수밖에
私薦·돌려막기 논란…“최홍 때문에 스타일 구겼다”
나처럼 정치 오래 한 놈이 기본적인 걸 못 했다는 자책
공관위 흔드는 세력과 싸워야겠다는 생각에 위원장 던졌다
‘공천 무효’는 억지…황교안 부탁 일언지하 거절 안 했다
비례정당,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큰 실수였다
선거사령탑 이슈 주도 실패, 대권주자들 지역구 선거 급급
김무성 이언주 황보승희…부산 중·영도구 공천 ‘그날’
김종인 “뿌리 없다” 발언에 ‘태영호 전국유세단’ 출범 못해
與野 ‘평가지침서’ 만들어 의정활동 평가해 공천해야
[조영철 기자]
지난해 8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현역 의원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모두 죄가 많으니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험지 출마 꿈이 있는 사람은 죽을 길을 택하라”면서다. 지난 1월 김 전 의장이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위원장을 맡은 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거 물갈이가 이뤄졌고, 반발하는 현역들의 목소리는 여론을 들이대며 잠재웠다. 그러나 그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그가 공관위원장을 사임하고 당 최고위원회가 일부 지역 공천을 뒤집으면서 통합당 공천은 ‘호떡 공천’ ‘포스트잇 공천’이 됐다.
4·15 총선 투표함을 열었을 때, 그도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도 죽기 좋은 계절을 맞아야 했다. 총선 이틀 뒤 태영호 당선인 선거사무실을 찾은 자리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 죄인의 심정”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가 선거 6개월여 만에 ‘신동아’에 처음 심경을 밝혔다. 표정은 밝아보였지만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끊었다. 한참 말을 하다가도 “이렇게 말하면 남 탓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만하자” “내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고…”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선거 결과에 대한 자책은 여전히 진행형이었지만, 세간의 비판에 대해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10월 7일 서울 마포구 그의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총선 이후 어떻게 지냈나.
“총선이 끝나니 온 사방에서 전화나 문자메시지 ‘카톡’이 왔다.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욕먹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지만 그나마 욕설과 비난은 감정적이니까 이해가 됐다. 그보다는 (공관위가 공천한) 이 사람들이 왜 떨어졌나, 상대 후보보다 훨씬 나았는데 왜 떨어졌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잤다. 그 사람들 눈동자가 떠오르니 너무 안타까운 거야.”
-야당의 21대 총선 참패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각자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 진단은 다르겠지만, 난 공천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참 할 말이 없다. 총선 직후에는 모든 게 공천 잘못으로 귀결되니, 그 때는 뭐라고 말을 할수록 나에게 돌팔매가 더 날아올 거 같아 (입을) 닫고 있었다. 할 말도 없었고. 공천은 잘해야 하지만 공천이 곧바로 승리와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욕먹고 기분 좋을 사람 있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구조적으로 참패 원인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선거는 이슈를 주도해야 하는데 이슈 주도에 실패한 것, 그리고 총선을 주도해나갈 인물 부재였다.”
-이슈는 무엇이었나.
“선거 초반 분위기는 우리 쪽에서 주도했다. 공관위가 공천을 주도하면서 물갈이, 판갈이, 인적쇄신, 구태 청산 등 큰 어젠다를 밀고 나가다가 내가 3월 13일 통합당 공관위원장을 사직한 뒤 그 추동력이 팍 떨어졌다. 물론 당시 공관위 공천을 최고위원회가 바꾸면서 공천 논란도 있었지만, 크게 보면 집권당 쪽에서 만들어낸 ‘코로나 선거’에 모든 이슈가 흡수된 탓이 컸다. 코로나 선거를 돌파할 새로운 이슈를 만들거나 우리 나름의 이슈를 발굴했어야 했다. 그리고 재난지원금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당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다보니 민심이 쏠려버렸다. 선거는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총선은 잠재적 대권후보 없이 치른 보기 드문 선거가 됐다. 선거를 이끌 기수(旗手)가 없었던 거다.”
-선거 초반에는 황교안 통합당 대표 등 여러 대권 후보가 있었는데.
“초반에는 있었는데 갈수록 자기 지역구에 파묻혀 버렸다. 황 대표는 혼자 서울 종로에 나오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지역구(오세훈·나경원)에 나가거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홍준표)에 출마, 혹은 불출마(유승민)했다. 서울 지역구에 나선 대권후보들은 여권의 집중타를 맞았다. 이들이 모두 수도권에서 ‘으쌰으쌰’ 하면서 선거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데 집중 공격당하니 자신들 선거구에 발이 묶인 거다. 민주당은 현직 대통령과 이낙연이라는 강력한 대권후보가 부각됐다. 이런 점을 전략적으로 놓쳐버린, 그런 선거였다.”
-21대 총선은 지금까지 야당이 보이던 계파 간 지분 나누기 공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보수 통합도 이룬 만큼 참신한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렇다. 공천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정한 걸 부인하지 않는다. 공관위 출범 이후 당이 통합된 것도 처음일 거다. 공식 공천 신청만 세 차례 받았다. 한번 (공천 신청을) 받으면 600~700명이 응모하는데, 2월 17일 보수 통합으로 새로 들어온 후보들이 어느 지역으로 신청할지 모르니 또 받았다. 공식·비공식 후보 신청자가 1000명을 넘었고, 두세 차례 심사 면접을 본 후보들도 있었다. 물리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통합한 날이 4·15 선거 58일 전이었다. 선거 두 달 전이면 모든 후보가 결정돼야 하는데 그때 공천 작업을 시작한 격이다. 여기에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문제로 또 시간이 지체됐다.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통합을 이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가.
“야권이 단일대오로 뭉쳤다는 게 국민에게 파급이 안 됐다. 욕 들어가면서 현역 의원 물갈이하고 고생한 당협위원장들을 잘랐지만 정작 통합 정신을 국민이 흡입할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어떤 전략이 없었나.
“통합의 상징 인물들, 황교안 오세훈 나경원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등등이 수도권에서 힘을 모아 나왔으면 해볼 만하다는 게 당시 나의 선거 구도였다. 그게 안 됐다. 그렇다면 보수 야권이 통합해 단일대오를 이뤘다는 걸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여러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왜 못 했다고 보나.
“통합당은 자체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비례정당(미래한국당)을 만들다 보니 선거법상 신문·방송을 통해 정당 광고나 TV토론회 출연을 못 하게 됐다(비례대표 선거는 정당에 대한 투표 성격을 갖는 만큼,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하지 않은 정당은 정당 자체에 관한 홍보가 불필요하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이었다). 그러니 통합 메시지를 전달할 통로가 막힌 거다. 물론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희한한 선거법에 대항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비례정당을 만들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게 더 큰 실수였다.”
-통합에 대한 메시지 전달이 안 됐다는 건데…, 총선 당시 통합당 선대위(선거대책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비쳤고, 선거전을 공중 지원하는 ‘주포(主砲)’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유권자들은 먹고살기 바쁜데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은 선거를 하니까 당명만 바꿔 달았구먼’ 하는 정도로 인식한 거 같다. 야당의 무기는 입인데(그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그 입에 스스로 지퍼를 단 격이다. 오세훈, 나경원 등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분명한 후보들이 방송도 타고, 토론도 하고, 정당 광고도 해야 했는데…. 당 중앙사령탑은 그러한 통합 상징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실패한 거다. ‘코로나 선거’였다고 하지만 노련한 뱃사공은 파도가 치면 배를 어디로 몰아야 하는지 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 우리는 방향타를 상실한 거다. 이렇게 말하면 남 탓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만하자.”
“김형오 수양딸·아들 공천”…‘사천’ 논란
김형오 당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맞는 말이다. 내가 비난받은 건 ‘사천’과 ‘돌려막기’였다. 그런데 사천이라는 말은 감정적으로 유권자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김형오가 자기 사람 심으려고 그랬구나’ 하는 말에 적절하게 대응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 했다. 내가 ‘사천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믿겠나.”
통합당이 한창 공천 폐달을 밟던 3월 초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부산 중·영도구에 김 전 의장이 의원 시절 비서를 지낸 황보승희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가 경선에 오르자 ‘공관위가 김형오 수양딸·아들에게 공천을 주려 한다’며 비판했다. 여기서 ‘양아들’은 서울 강남을 공천 후 무효가 된 최홍 전 ING 자산운용·맥쿼리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였다.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현 국민의힘 의원)의 인천 중구·강화·옹진군 공천도 사천 논란이 일었다. 배 이사장은 김 전 의장이 국회의장 시절 국회 부대변인을 지냈다.
“사실 내가 의장 시절 대변인은 허용범이었는데, 그를 맨 처음 1차 (서울 동대문갑에) 공천할 때에는 아무도 사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단수 추천이라 사천이란 말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배 후보의 경우 경선에서 떨어진 쪽에서 사천이라는 말이 나왔다. 배 후보는 1년 남짓 내 밑에서 부대변인을 했지만 이미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받아 출마한 인물이었다. 공관위원들도 만장일치로 공천했고. 황보 의원은 내가 공관위원장 됐을 때 ‘위원장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 이번에는 꿈을 접었다. 나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신동아’에 처음 공개하는 거다.”
-부산 중·영도구는 이언주 전 의원이 희망하는 지역구였고, 본인도 강력히 희망한 걸로 알려졌는데.
“그렇다. 어려운 시기에 정권에 대항하고 제대로 싸운 의원이 이언주·전희경 (전) 의원 정도였다. 나도 영도 전략 공천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김 전 의장은 당시 부산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에서 출마한 적 없는 이언주 의원에게 경선하라고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이 의원의 전략공천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중·영도 지역구 현역이던 김무성 의원이 “곽규택·강성운·김은숙 예비후보 등이 뛰고 있는데 경선 기회를 박탈하면 정의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황보 후보가 경선을 통과한 뒤 본선에서 승리하며 배지를 달았다. 이어지는 김 전 의장의 말이다.
“현역(김무성)이 반발하고, 당협위 위원장(곽규택)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경선을 받아들이면 전국적으로 비슷한 요구가 잇따를 것이고, 전략공천을 하면 지역 언론들의 비판도 염려스러웠다. 이러다가 부산 전체 선거 구도가 흔들릴 거 같아 결국 이 의원은 부산 남구에, 곽 위원장은 서구·동구 경선에 나서는 걸로 정리한 거다. 그 뒤 황보 후보를 중·영도구 경선에 참여하라고 한 거고.”
최홍과 태영호 공천 비화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시 대표가 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된 김형오 전 의장과 회동, 그림을 선물받고 있다. [뉴시스]
“솔직히 다 말하고 싶지만 지역 언론과의 문제도 있었고, 의원들 간의 사적인 문제도 있어 다 공개할 수는 없다. 최대한 공정하게 해결했다.”
-사천 논란의 하이라이트는 최홍 전 대표였다. 황교안 대표는 3월 16일 최고위원회를 소집해 그의 공천을 전격 취소했다. 제1 야당 대표와 공관위가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
“‘김형오가 최홍 공천만 안 했으면 좋았는데 완전히 스타일 구겼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 바람에 공관위원들이 도매금으로 취급돼 미안하다. 당시 경제계 CEO(최고경영자)를 모시려고 무던히 노력했고, 공관위원들에게도 CEO 3명씩 추천하라는 ‘미션’도 내렸다. 강남이라는 특징과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失政)을 부각하기 위해 경제계 인사 영입이 절실했다. 그중 한 명이 한 달 이상 걸려 영입한 윤희숙 의원(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이었다. 최 전 대표는 처음 영입 요청을 했을 때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대학 후배인 김세연 의원을 보내 어렵게 설득했다. 최 전 대표는 흥남부두 철수 때 딸과 함께 내려온 외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적 자산운용회사 대표를 지냈다. 웰빙 정당, 부자 정당이라는 당 이미지를 쇄신해 줄 CEO를 어렵게 영입했더니 졸지에 ‘양아들’이라고 하더라. 나 때문에 형편없는 놈이 돼 나도 마음의 부담이 크다.”
-주요 기업인들은 보수정당의 인재 영입 제안에 부정적인가.
“두 가지 이유였다. 잘나가는 기업 CEO는 이쪽 들어오는 순간 망한다고 말한다. 잘 못 나가는 기업 CEO는 입당하면 완전히 망해 버린다고 한다. 정권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감시가 있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자유와 경쟁이고, 자유와 경쟁은 반드시 탈락자를 수반한다. 우리가 이 탈락자 구제에 대해 소홀했다면, 현 운동권 출신 집권층은 탈락자들만 생각한다. 그러니 가진 자를 나쁘게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 운동권 출신들이 가진 자가 됐는데도 아닌 척하는 시대가 됐다.”
-태영호 의원 지역구 공천은 눈에 띄었다.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태 의원을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공천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 황 대표도 깜짝 놀랐으니. 내가 직접 만나 말했더니 태 의원도 놀랐다. 태영호 같은 사람이 지역구 의원 됐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통일은 이렇게 오는 거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선대위원장을 맡기 전에 태 후보의 강남갑 전략 공천에 대해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유는 알고 있지만…그 바람에 태영호가 대미지(damage)를 입었다.”
-김 위원장이 따로 미는 사람이 있었나?
“아이고 그건 뭐…(그는 손사래를 쳤다). 나는 태영호 외에 한두 사람을 묶어 전국 유세단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뿌리가 있느냐’는 바람에 태 후보를 지역구 선거운동하기 급급하게 만들었다. 전략적 손해를 입은 거다. 당시 태 후보 외에도 김웅과 송한섭 전 검사, 여공(女工) 출신 김미애 변호사 등 여러 사람을 내세웠어야 했다. 백날 우리가 ‘꼰대 정당 아니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런 인사들을 적극 알렸어야 했는데 앞서 말한 대로 그걸 못 했다.”
공관위원장 사임한 진짜 이유
-‘돌려막기’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이름을 다 밝힐 수 없지만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다 만났다. 그래도 영입이 안 되니 내부 자원을 가지고 순환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식으로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그 반발을 슬기롭게 무마하고 설득하지 못했다. 이번에 보니 ‘돌려막기’ 비판을 받은 인사는 7명인데 이 때문에 공천 자체가 잘못된 걸로 알려진 측면이 있다. 나처럼 정치 오래 한 놈이 그런 기본적인 걸 못 했다는 데 대한 자책이 크다. 그래서 나라도 (공관위원장 사임하고) 밖에 나가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의장은 서울 강남병에 전략공천한 김미균 시지온 대표의 ‘친여(親與) 성향’ 논란에 책임을 지고 3월 13일 사임했다. 그러나 사임 전날 황교안 대표가 ‘일부 불공정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며 공관위가 확정한 일부 지역 재의 요구에 맞불을 놓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당시는 사실상 공천 마무리 단계였다. 그런데 왜 그만뒀느냐. 우선 강남병 공천에 대한 도덕적 책임도 져야 했지만, 여기에 당 밖의 우파 유튜버들과 공천 탈락자들이 공관위를 흔드는데 아무도 프로텍트(보호)해 주는 사람 없었다. 이들과 싸워야 했다. 내가 나가서 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관위를 흔드는 사람이 밖에 있는 줄 알았더니 정작 안에 있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최고위원회의 공천 무효 결정 말인가.
“평생 정치를 했지만 당규에 공천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조항은 생각을 못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을 꺼내 최홍의 공천을 무효화하더라.”
그가 사임한 3일 뒤 통합당 최고위원회는 3월 16일 최 후보의 공천을 무효화했다. “후보자로 확정됐더라도 불법 선거운동이나 금품수수 등 현저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을 경우에는 최고위 의결로 후보자 추천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당규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후보가 과거 투자운용사 대표를 할 때 금융감독원에서 제재를 받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은 “법리 해석상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공천위는 그 정도면 결격 사항이나 현격한 하자는 아니라고 봤다”고 반발했다.
“이때 우리 공관위가 대응을 잘 못하니 공천 무효가 잇따랐다. 당시 무효조항의 근거는 당내 경선에서 불법선거 운동이나 금품수수 등 중대한 하자가 발생한 후보가 대상이었는데, 억지로 갖다 붙인 거다. 그때 우리 공관위가 세게 나갔어야 했는데 한발 물러서는 바람에 이른바 ‘호떡 공천’이 됐고, 후보들도 영향을 받았다. 당 지지율도 이때 확 내려갔다. 하필 비레정당(미래한국당) 공천 파동까지 겹쳐 선거일까지 지지율 회복이 안 됐다.”
김 의장은 3월 25일 통합당의 최고위원회 결정에 대해서도 성토했다. 총선 후보자 등록기간(26~27일)을 불과 하루이틀 앞둔 그날 ‘황교안 지도부’는 4개 지역 공천을 ‘무효’로 의결했다. 단수 추천한 두 곳(부산 금정, 경북 경주)에는 경선을 결정하고, ‘청년 벨트’였던 두 곳(경기 의왕·과천, 화성을)은 기존의 다른 후보자로 교체했다.
의정활동으로 평가하는 공천 시스템
-황교안 대표의 ‘요청’을 거절해서 그런가.“당 대표가 나한테 부탁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았다. 내 성격상도 그렇게는 안 한다. 당 대표가 얘기하면 귀담아들었다. 다만 안 되는 것을 하거나 되는 걸 안 되게 하거나 그런 식으론 안 살아왔다. 사람이 다르니 느낌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매번 느끼지만 공천을 맡아보니 공천 개혁을 다시 절감했다. 의정활동 잘하는 국회의원이 공천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현장 답사하고 인터뷰해야 하는데, 이런 활동은 생색이 잘 안 나니 등한시한다.”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의원들의 ‘의정활동 평가 지침서’를 만들고, 각 당은 실정에 맞게 가중치를 부여해 그 평가 지침에 따라 의원을 평가하는 거다. 원외 당협위원장도 ‘당협 활동 평가 지침서’를 만들어 비슷하게 운영하면 된다. 매년 10%, 20% 안에 드는 상위 당협위원장은 공천을 보장해 주고, 하위는 재공모해 바꾸면 된다.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은 더 열심히 일하고. 당협위원장은 더 신나게 지역주민 친화적인 활동을 할 거다.”
-김형오 의장 시절에는 왜 안 했나.
“그때만 해도 미처 생각을 못했다. 이번에 절실하게 느낀 거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활약은 어떻게 보나.
“지난 8월 수해가 났을 때 3일 연속 호남을 찾아 수해 피해 복구를 도운 것, 최근 ‘노동법을 손댈 때가 됐다’고 한 것은 보수 야당의 기본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반면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당에 다 내준 것은 안타깝다. 국회 개원 협상을 할 때면 상임위원장 한 석을 더 가지려고 처절하게 싸운다. 이걸 인심 쓰듯 내준 것은 전략적으로 큰 실수다. 현재로서는 끈질기고 비장하게 원내 투쟁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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