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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용오름 풍수’로 통일신라 수호한 문무대왕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용오름 풍수’로 통일신라 수호한 문무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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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이 674년 “궁내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동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동국여지승람’엔 연못 서쪽에 임해전(臨海殿)이 있었다고 전하며, 안압지에서 출토된 제기 등의 자료에 의하면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전(龍王殿)이라는 건물도 이곳에 있었음이 확인된다. 문무왕대에 신라인은 ‘바다가 임한 전각(임해전)’이라는 이름까지 구사하면서 이 연못을 바다에 비유했고, 또 용왕을 모시는 장소로 이 연못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다음 왕위를 이을 태자가 머물도록 했을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필자는 팔짱을 끼고 안압지의 호안(湖岸)을 따라 한가로이 거닐지만, 머릿속은 130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문무왕의 ‘권력 풍수’ 행위를 복기하느라 바쁘다. 용의 능력을 빌리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용이 되고자 한 문무왕은 이곳에서 무엇을 도모하고자 했는가.

이 연못엔 어디선가 날아 들어오는 강력한 기운이 바닥의 물(水精의 기운)을 매개체로 삼아 인근의 월성(月城) 궁궐 등 주위 사방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물의 수정 기운에 반사돼 튕겨 나가는 그 기운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굳세다. ‘우리 풍수’에선 지기가 ‘풍(風)’으로 상징되는 천기나 ‘물·#51394;水·#51395;’로 상징되는 수정(水精)의 기운을 만났을 때 풍성한 에너지장을 형성한다고 본다. 안압지의 물은 바로 이 에너지를 증폭해 사방으로 골고루 퍼지게 하는 구실을 한다. 이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새벽 동틀 무렵 혹은 해 질 녘, 사람이 드문 즈음에 연못가에 편안히 앉아 온몸을 이완하고 물을 바라보라. 어느샌가 천기와 수정기가 섞인 기운이 온몸을 푸근하게 감싸안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궁궐 동쪽에 용이 출현했다!

‘용오름 풍수’로 통일신라 수호한 문무대왕

1967년 5월 발굴 당시의 문무대왕릉.

문무왕은 이러한 기운을 용의 조화라고 해석했던 것일까. 그는 안압지가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듯하다. 역사에 의하면 삼국을 통일하기 전 신라 첨해왕과 미추왕 시기에 각각 ‘궁궐의 동쪽 못에 용이 출현했다(龍見宮東池)’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용오름 같은 신비 현상이 목격된 듯하다. 그리고 문무왕은 이 지역을 근거로 못을 더 확장하는 형태로 안압지를 조성했을 개연성이 크다.



안압지는 1300여 m에 달하는 호안을 따라 20여 곳의 건물터, 독특한 모양의 입수구와 배수구 시설, 연못 속에 조성한 3개의 인공 섬 등을 갖췄다. 우리 전통 정원의 미학을 보여주는 곳이라고도 평가받는다.

필자는 안압지의 조경을 감상할 겸 발걸음을 옮겨 서편 호안에서 연못 바로 건너편의 동편 호안을 바라보았다. 서편 호안은 직선으로 뻗은 구조를 한 반면 동편 호안은 마치 해안가처럼 굴곡지게 배치해놓은 형태다. 인공에 의해 참으로 절묘한 자연미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순간, 수년 전 안압지 동편 호안의 모양이 문무대왕릉과 감은사가 있는 동해구(東海口·신라 시기의 지역 명칭)의 지형과 같다고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가 기억에 살아났다. 그에 의하면, 대학교수팀에 의뢰해 동해구를 담은 지도(2만5000분의 1)를 근거로 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해 당시의 지형을 컴퓨터상에서 재현한 결과 안압지 발굴 도면의 동편 호안과 같은 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즉 안압지의 동편 곡선 호안은 동해구와 위치상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면서 동해구를 재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압지 연못에 떨어지는, 정체가 불분명한 외부의 기운 역시 동해구 쪽에서 분출한 기운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만약 두 기운이 같은 것이라면 문무왕이 안압지를 동해바다로 설정하고, 용이 머무는 용궁전을 조성한 이유 또한 분명해진다.

문무왕 화장한 진짜 이유

안압지 답사를 마치고 바로 문무왕이 잠든 수중릉(문무대왕릉)을 찾아갔다. 차를 봉길리 해변 주차장에 세워놓고 바라보니 200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바위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적 제158호로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문무왕은 과연 대왕암을 탐낼 만도 했다. 그곳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기가 바다의 수정 기운을 만나 공중으로 엄청난 에너지장을 펼치고 있었다. 권력과 부와 건강이라는 삼박자 기운을 골고루 갖춘 토션 필드(Torsion Field)라고나 할까.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근처에서 용오름 현상을 간헐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데, 운 좋은 날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이 에너지장은 안압지에서 느끼던 바로 그 기운이었다! 안압지에 조성된 3개의 인공 섬도 불로장생을 꿈꾼 삼신산의 의미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권력과 부와 건강의 세 가지 복을 기원하는 상징성을 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대왕암에 대한 문무왕의 풍수 행위는 자신의 죽음으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문무왕은 21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681년에 돌아가면서 조서(詔書·왕이 죽을 때 남긴 글)를 통해 자신의 장례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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