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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일본 ‘잃어버린 시대’의 서막 ‘플라자 합의’

  • 조인직 | 대우증권 동경지점장 injik.cho@dwsec.com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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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1985년 9월 미·영·프·독·일 등 G5 정상들이 ‘플라자 합의’를 결의한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

1970년 미국 의회에서 상원의원 에드먼드 머스키의 발의로 이른바 ‘머스키법’이라는 배기가스 규제법이 통과됐다.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의 유해 배기가스를 5년 내에 10분의 1로 줄이지 않으면 미국에서 차를 팔 수 없도록 한 게 골자였다. GM과 포드 등 미국 업체들은 이를 ‘의회 로비’라는 미국식 방편으로 충분히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일본 업체들은 ‘기술혁신’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결국 1975년 혼다가 세계 최초로 완전 연소를 통한 고효율친환경 CVCC 엔진을 개발해 출시했다. 이에 힘입어 혼다는 1970년 미국에서 3만2000대를 판 소형차 ‘시빅’을 1975년에는 무려 18만7000대나 팔게 된다.

휴대가 가능한 스테레오 카세트인 소니의 ‘워크맨’ 역시 1979년 출시하자마자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각광받았다. 발매 15년 만인 1993년에 누적 판매대수 1억 대를 넘겼다. ‘워크맨’이라는 상품명은 부자연스러운 일본식 영어 조어였으나 브랜드화하는 데도 대성공, 198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됐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1968년부터 전 세계 GDP 2위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소련이 1985년까지 2위였다는 설도 있으나 당시 통계가 미비하다). 1974년에서 1990년에 이르기까지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에 버금가는 평균 4.2%의 성장률을 일궈내면서 ‘중단 없는 성장’을 이어갔다. 일본 경제의 순발력과 다대한 기술혁신이 이 같은 영광을 이뤄낸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각국에서 20년 이상 지속시킨 고정환율제의 영향도 컸다. 환율도 일종의 상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컨대 지속적으로 향상된 품질의 제품을 늘 똑같은 가격(환율)에 판다고 하면 국가 간 무역역조는 피할 수 없다.

애당초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질서에서 미국 달러를 상대로 환율 개념을 본격적으로 규정한 것은 1944년 체결된 브레턴우즈 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이다. 미국 뉴햄프셔 주 리조트 지역이던 브레턴우즈에서는 2차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영국 등 연합국 45개국 대표들이 참석해 전후 경제 질서를 논의했다. 이때 만들어진 협정은 그전까지 금(보조적으로 은도 사용)을 절대적인 국제통화로 인정한 체제에서 금과 달러를 양축으로 하는 통화체제로의 변화를 정식으로 추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본토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미국은 후방 병참기지 및 자본조달시장으로서 위세를 떨쳤다. 그러면서 전 세계 금 보유량의 60% 이상을 점유했다. 세계의 은행 혹은 무역 거래 등에서 규칙을 유리하게 제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의 위상을 확보한 것이다. 브레턴우즈체제에서 금 1온스(약 28.4g)는 35달러로 고정됐다(최근 금 1온스당 가격은 1300달러로, 70년 사이 달러 가치가 37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강한 달러’ 정책 실패는 일본 엔화 절상을 골자로 한 ‘플라자 합의’의 단초가 됐다.

원조 대상에서 라이벌로

일본 엔화의 가치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연장선에서 1949년 미 군정에 의해 ‘1달러=360엔’으로 결정됐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의 저서 ‘전후 70년 세계경제의 자취’에 따르면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 군정은 자체 조사를 통해 1달러에 300~330엔을 적정 환율로 인식했다. 하지만 태평양 지역 자유민주주의 우방 국가로의 성장을 지원하자는 취지, 즉 수출 확대를 통한 일본 경제개발계획에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10% 정도 더 절하한 360엔으로 고정했다고 한다. ‘와(和)’를 좋아하는 일본 민족의 특성상 원(圓) 내각의 합인 360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공작이 일조했다는 설도 있다.

요즘 미국과 일본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른바 ‘양적완화’ 대열에 들어섰다. 말은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 예전부터 있어온 고전적인 금융 정책이다. 무역거래가 조금 불리할 거 같으면 얼른 돈을 풀어 자국 화폐의 가치를 절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품 판매를 유리하게 하는 행위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볼 때 ‘무기한 할인판매’를 통해 손님을 모으는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 입점한 루이비통이 수년 전까지 정가판매 원칙만 고수했듯, 자존심이 센 미국 역시 적어도 1960년대 말까지는 자국 통화를 ‘할인판매’하지 않는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나 원조 대상에서 라이벌로 어느새 격상한 일본은 물론, 독일 등 유럽의 경제 강국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미국은 베트남전쟁(1965~1973년)에서 연간 GDP의 10%씩을 국방예산에 쏟아부으면서 재정과 경상수지 모두 악화해갔다. 고민하던 닉슨 대통령은 결국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의 태환(兌換·지폐를 정화(正貨)로 바꾸거나 그런 일)을 정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닉슨 성명’을 발표했다. 심각한 무역역조로 인해 그동안 모아둔 금 준비금을 모두 소진한 상태여서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1971년 12월에는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선진 10개국 재무장관들이 만나 새로운 고정 환율로 달러와의 교환가치를 매기는 데 합의했다. 이때 달러당 일본 엔화 환율도 16.88%포인트 절하해 ‘1달러=308엔’으로 조정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각국의 기초체력에 맞춘 통화 절상 또는 절하 압력이 표면화했고, 1973년부터는 이탈리아, 스위스에 이어 일본도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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