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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인류 삶을 한 단계 진전시킨 DNA 이중나선 구조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인류 삶을 한 단계 진전시킨 DNA 이중나선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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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딜레마 ‘인간 복제’

왓슨은 결정학 분야의 선구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성격이 괴팍하고 데이터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학자로 묘사해 유족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프랭클린은 당시 가장 해상도 높은 DNA의 X선 사진을 찍은 과학자다.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1962년 왓슨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업적을 쌓은 그의 공로가 파묻혔다.

왓슨과 크릭이 사실상 참고한 결정적인 실험 데이터는 윌킨스가 사적으로 보여준 프랭클린의 사진이었음에도, 이들은 공식적으로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책이 당초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하기로 했다가 취소된 이유 가운데는 이 같은 서술에 대한 세간의 거센 비판도 있었다. 왓슨은 프랭클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후기를 덧붙였다.

왓슨은 한참 뒤 인종차별 논란에도 휩싸인다. 그는 2007년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생명과학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들’이라는 또 다른 회고록을 냈다. 그는 이 책을 홍보하던 도중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아프리카 대륙 흑인들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추론이 가능한 언급이었다. 이 때문에 79세의 나이에 43년간 일했던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그렇다고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솔직함이 왓슨을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왓슨은 대학생 때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어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뒤 유전학의 비전을 알게 되고, 이때 과감한 진로 결정을 내렸다고 회고한다. 슈뢰딩거는 “생명 현상은 최종적으로는 물리학 또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왓슨은 “이중나선에서 시작된 생명과학의 새 지식은 인류의 삶을 한 단계 진전시킨 강력한 힘이 됐다”고 자부한다. 지름이 10억 분의 1m도 되지 않는 DNA가 인류와 과학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만했다. 호박만한 토마토가 탄생한 것도, 유전자를 분석해 범인을 잡게 된 것도 모두 DNA 구조가 밝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전 정보의 흐름을 제시하는 이론인 센트럴 도그마, 돌연변이설, 인간 유전체(게놈)지도 완성 같은 현대 생물학의 중요한 개념과 사건이 모두 DNA 구조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됐다. 최근에는 1g에 DVD 50만 장의 정보를 수록할 수 있는 ‘정보저장 DNA’가 개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인간과 동식물 유전자 구조를 해독해냄으로써 암, 심장병, 당뇨, 혈우병 같은 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물론 긍정적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인간 복제’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불러오기도 했다.

인간미 넘치는 과학자?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저자와 세상을 동시에 바꿔놓았다. 왓슨 자신이 대중적인 스타 과학자가 된 것은 물론, 과학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한 공로가 지대하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왓슨은 이 작은 책으로 유전자 과학의 흥미진진함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그 덕에 대중은 훨씬 더 과학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중나선’의 이중효과다. 이 같은 개인적인 유명세와 대중의 이해가 훗날 그가 인간유전체(게놈) 연구에 엄청난 예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왓슨보다 열두 살 많은 공동 연구자 크릭이 더 비상한 통찰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DNA 구조 발견 이야기를 할 때 크릭보다 왓슨이 먼저 떠오르는 건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그가 1990년대 게놈프로젝트의 기수로 미국 생물학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학자가 된 것은 연구 업적뿐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젊은 지성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몰려든 것은 오로지 이 책 때문이었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과학자를 꿈꾸게 만들었다. 과학계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오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중나선’이 스테디셀러가 된 까닭은 장차 과학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과학자와 연구의 본질, 과학자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덕택이다.

왓슨은 2007년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454라이프사이언시스가 인류 최초로 한 사람의 전체 유전코드를 읽어냈다. 그 유전코드의 주인공이 왓슨이었다. 크릭은 2004년 세상을 떠났지만, ‘분자생물학계의 성난 황소’라는 별명까지 얻은 왓슨은 여전히 건재해 이따금 언론에 오르내린다.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연구하면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어서다.

신동아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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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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