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신평의 ‘풀피리’⑫

조정래 작가의 ‘토착왜구’, 빨갱이 낙인과 무엇이 다른가!

태백산맥 산줄기처럼 완고한 반일·반미 세계관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0-10-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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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착왜구,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상품

    • 방한 美 학자에게 ‘미국 놈 싫다’ 말하던 조정래

    • 인간에 대한 이해 결여해 폭력적 언사

    • 치기 어린 복수심에 휩싸여 환상에 빠져

    • 열등감이 낳은 美·日에 대한 적개심

    • 명예훼손 법제 언급해 진중권 압박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산다.

    조정래 작가가 10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조정래 작가가 10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문해력(literacy)’이라는 단어가 있다. 잘 쓰이지는 않는데,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낱말이다. 쉽게 말해 글자를 읽고 글자가 담은 뜻을 이해하는 힘이다. 문해력이 없는 사람, 즉 글자를 읽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문맹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갖고 있어 문맹률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문해력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조차 갖지 못한 사람을 문해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의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을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서 현대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최근에는 문해력 앞에 여러 가지 단어가 붙고 있다. 가령 컴퓨터 문해력, 정보 문해력, 기술 문해력, 예술 문해력, 비주얼 문해력, 통계 문해력, 생태 문해력, 건강 문해력 등 생활 전반으로 개념이 확장하고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을 다룰 수 있고 인류가 직면한 환경오염, 기후변화에 대해 공감 능력이 있다면 현대적 문해력은 대충 다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토착왜구’와 ‘빨갱이’는 정치 상품

    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일정 수준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어 중에서도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외국어 문해력’ 혹은 ‘영어 문해력’을 생각할 수 있다. ‘영어 문해력’을 갖추지 못하면 타인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는데 지장을 받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나라의 문호를 활짝 열고 무역을 한 데서 경제력이 창출됐다. 한국은 싱가포르 같은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국민총생산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도 살 길은 외국 문물을 과감히 수입해 생활·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꾸어나가는 일에도 변함없이 매진해야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도 있다. 고유의 것에 대한 애착이 세계화 시대에 더 큰 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그들과 무리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정작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토착왜구’ 같은 표현이 횡행한다. 토착왜구는 ‘친일파’를 달리 표현한 개념으로 보인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생존하려면 일본이나 중국, 미국 등 큰 나라와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중 중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로,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도 긴 세월 동안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좋을 때도 있었으나 나쁜 때도 많았다. 나쁜 때만 생각해 그 나라들을 배척하고 우리의 주체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공허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무언가 본질을 숨기려고 위장하는 태도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이 잦다. 과거 정치적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던 행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토착왜구와 빨갱이는 공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 상품이다.

    “미국 놈들은 악랄한 제국주의자다”

    연전에 잘 아는 몇 사람과 모여 환담을 했다. 각자 지금 무엇에 취미를 가졌는지 말하게 됐다. 나는 매일 영어방송을 청취하면서 영어도 공부하고 세계정세도 파악하는 게 요즘 살아가는 낙이라고 말했다. 한 친구가 발끈했다. 그는 “도대체 영어 공부하는 것을 남에게 취미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일순 나는 당황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내 생활의 일부를 말했을 뿐이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그 친구의 비위를 상하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친구는 과거 영남지역 운동권에서 유명한 이론가였다. 김영환 씨의 ‘강철서신’이 전국적으로 유통돼 운동권 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친구가 보내는 지하서신은 영남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독서물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한 번씩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친구가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겪은 생활상 불편 탓에 야기된 열등감을 억누르지 못해 폭발한 게 아닌가 싶다. 운동권 출신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반미를 외치면서도 자식들은 미국이나 서구로 유학시킨다. 자식 대에서는 어떻게든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염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까. 

    최근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운동권 친구와의 어이없는 일화를 다시금 연상시키는 사건이다. 진보적 역사관으로 각광받아온 조정래(77) 작가가 10월 12일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다 친일파”라거나 “반민특위를 부활시켜 150만 친일파를 전부 단죄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말을 했다. 이를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정도면 광기”라고 비판했다. 조 작가는 진 전 교수가 공개사과를 하지 않으면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사람은 말로 의사를 표현할 때 말의 속도에 뇌가 따라가지 못해 정제되지 못한 단어를 쓸 때가 있다. 때로는 실언도 한다. 특히 우리말은 관계대명사나 관계부사가 없어 논리적 구성을 결여하기가 쉽다. 어떤 사람의 말을 녹음해 문장으로 풀어낸 기록을 ‘녹취록’이라고 한다. 녹취록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결락(缺落)이 생기며, 또 이해하기 어려운 단락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나는 조 작가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려면 대작가의 호칭을 받는 이가 이따위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어쩌다 보니 말이 앞서나가며 실수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게 아니었다. 페이스북 친구인 오진영 씨가 대학 시절 미국 인류학자인 낸시 에이블먼의 조수로 있을 때다. 그가 방한한 낸시를 수행해 참석한 모임에서 겪은 일이다. 조 작가는 낸시에게 대뜸 “나는 미국 놈들이 싫다. 미국 놈들은 악랄한 제국주의자들이다”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고 한다.

    美·日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착각

    미국이 현대판 로마제국으로 제국주의 원칙에 따라 국제질서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은 상당부분 맞는다. 그러나 미국과 미국인은 다르다. 양자를 동일시하면서 미국인 누구나 제국주의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행태다. 

    더욱이 낸시는 머나먼 태평양을 넘어 한국에 온 손님이다. 처음 만난 손님에게 불손한 말을 서슴지 않고 뱉었다. 거친 폭력 행사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벗어난 것이다. 이 에피소드로 볼 때 조 작가가 가진 반일, 반미의 폐쇄적 외국관은 태백산맥 산줄기처럼 완고한 모양이다. 이것은 그의 일생을 통해 집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가 꺼낸 토착왜구라는 표현은 실언이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한국이 처한 국제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미국과 일본에 대해 치기 어린 복수와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착각과 환상 속에 빠져 살고 있다. 

    그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숱한 박해를 받았던 사실은 어느 정도 안다. 민주화 이후 그의 처지는 달라졌다. 외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은 많이 팔렸다. 그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쥐었다. 말하자면 그는 대외개방경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다. 그럼에도 완강한 쇄국적 대외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에 관한 말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분노와 증오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다. 

    아마 그는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지 않을까. 외국어를 구사하면 한국어로 말할 때와 비교해 사고의 지평선을 넓히고 더욱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큰 기쁨을 선사한다. 또 한국어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인도의 초대총리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적이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는 딸 인디라 간디의 교육을 위해 딸에게 꾸준히 편지를 썼다. 어떤 편지에서 그는 “영어는 세상을 향한 창이다. 그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에게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영어가 갖는 기능을 강조하며 배움을 권한 셈이다. 네루는 영국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조 작가가 가진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어쩌면 부족한 ‘외국어 문해력’에서 기인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 부족함이 나의 운동권 친구가 그랬듯 심한 열등감을 낳았고, 미국·일본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착각을 빚은 셈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단죄’돼야 하나

    조정래 작가가 ‘친일파 단죄’ 발언을 ‘광기’라고 비판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해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사진은 진 전 교수가 9월 25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 저자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뉴스1]

    조정래 작가가 ‘친일파 단죄’ 발언을 ‘광기’라고 비판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해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사진은 진 전 교수가 9월 25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 저자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뉴스1]

    그가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박해를 받았을 때 그래도 힘이 돼준 것은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였다. 그런 그가 이제 권력의 편에 섰다 해서 언론자유를 부당하고 과다하게 억누르는 명예훼손 법제를 이용해 진중권 전 교수를 걸고넘어지게 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자신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상대를 ‘토착왜구’라고 부르며 ‘단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조 작가 자신을 ‘빨갱이’로 몰았던 ‘광기’와 다를 게 무엇인가. ‘토착왜구 150만 명’에 친미파까지 포함시키면 그는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단죄’돼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시무시한 일이다. 

    조 작가가 자신이 지금 누리는 엄청난 것들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살펴주었으면 한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진솔히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이 자기만의 닫힌 세계에서 생성된 하나의 환상에서 비롯했음을 깨닫길 바란다. 그 깨달음은 그의 여생에 풍요와 너그러움, 평안을 선사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빈다.

    *요즘 시골에는 어디서나 주황색을 띤 감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머지않아 첫서리가 내릴 즈음 감들은 주홍색으로 물들고, 이때 따서 장독 안에 쟁여두면 겨우내 홍시를 맛볼 수 있다.

    ■ 주황감

    늙고 지친 하늘이
    낮게 내려와
    마지막 품은 온기
    감 입으로 불어넣는다
    아직 젊은 바람은 쉴 새 없이
    감에 붙은 녹색 자국
    조금씩 지운다
    우리는 이제 어떡하니
    식어가는 땅이 묻는데
    앞을 보며 감은
    그냥 지긋이 웃을 뿐

    주황색을 띤 감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신평 제공]

    주황색을 띤 감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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