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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정면 대응한 한국의 자생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

마르크스에 정면 대응한 한국의 자생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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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정면 대응한 한국의 자생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 통일정책연구소 엮음 / 예문서원 / 382쪽 / 2만원

1997년 황장엽 망명사건은 남한 지식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이면서 북한 최대 이데올로그로 알려진 그가 남한을 선택하다니? 북한이 그토록 강조해온 주체사상에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인가? 북한이 곧 붕괴하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호사가들에게는 이것이 최대의 사회적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7년 가까이 흘렀다. 가끔 그의 정치적 발언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황장엽의 인간중심 철학에 대해 남한의 언론과 학계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정치가로서 그의 비중이 줄어든 만큼 그것과 반비례해서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차분하게 평가될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을 논할 때 그것에 덧씌워진 정치적인 색깔을 지워버리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어버린다. ‘북한’이라는 개념에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아직도 북한 사상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해 있다.

황장엽과의 대화가 남긴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풀이한 글쓴이들의 태도가 그렇고 그 사상의 내용에 접근하는 방법도 그렇다.



이 책은 특정 이념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철학 전문가들이 인간중심 철학에 대한 학문적 토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임을 서문만 보아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서평자도 굳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필자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논문 모음집이 아니다. 필자들은 대부분 황장엽이 망명한 이후 그와 함께 집단 세미나에 참가했던 사회철학 전문가들이며, 장기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인간중심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황장엽의 사상 체계와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1부와 2부의 내용은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정리된 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주체사상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 후,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의하되면서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환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와 대비해서 황장엽의 인간중심 철학을 비교 설명했다.

특히 주체사상 중 김일성주의화한 부분과 원래 의도했던 부분을 구분하고, 그 중 원래의 부분을 되살리려는 체계적인 작업을 ‘참된 주체사상으로서의 인간중심 철학’이라 설명한다.

2부는 남한에서 황장엽이 집필한 인간중심 철학의 중심내용들을 소개했다. 북한에서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못한 부분을 이곳에 와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황장엽 고유의 핵심 사상 체계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인간중심 원리와 인간중심 철학의 체계, 그 철학적 근본문제, 그 변증법적 구도, 민주주의론, 생명론 등이 요약 정리되어 있다.

3부는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중심 철학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귀룡은 인간중심 철학의 몇 가지 구조적 특징을 잡아내고 있고, 한승완은 인간중심 철학의 민주주의 철학이 나름대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한 포괄적 민주주의론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지만 시민사회론의 부재로 인해 현재적 상황에서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김석수는 박종홍과 견주어 황장엽의 역사적 이력을 추적하면서 박종홍의 현실 인식과 사상적 편향 사이의 괴리에 대해 비판하듯이, 황장엽에 대해서도 그의 현실 인식과 철학사상 사이의 간격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간중심 철학, 한국에서도 통할까

그렇다면 인간중심 철학에 대한 이러한 소개와 비판적 평가 작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먼저 그것이 현재적 시점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장 강력한 한국의 자생적인 철학체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성장해온, 따라서 그 뿌리를 ‘여기, 지금’에 두고 있는 철학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연관된 분석과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철학과의 정면 대응을 통해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그 철학적 위상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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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용혁 울산대 교수·철학 yhkwon@mail.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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