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핵생물의 유전정보 복사 과정을 규명한 공로로 20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로저 콘버그씨가 2007년 4월9일 건국대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그저 둥근 공에 불과한 배아가 어떻게 눈, 코, 입을 비롯한 온갖 복잡한 기관을 갖춘 동물로 자라는지 알고 싶다면 중요한 기능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들을 하나하나 유전자 적중법으로 없애거나 망가뜨린 뒤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이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치료에도 활용된다. 실험을 통해 선천성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면 이상이 생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할 수 있다.
노벨상과 ‘유전자 적중법’
새로운 유전자를 도입해 생물을 변형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어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의 유전체에 넣어서 번식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넣는 방법이 개발됐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단이 갖춰진 것이다. 문제는 효율과 정확성. 집어넣은 유전자가 원하는 자리에 제대로 끼워졌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오 카페치와 올리버 스미시스는 상동 염색체 사이에 이뤄지는 DNA 재조합 과정을 이용하면 유전자를 삽입하는 과정의 정확성과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포의 염색체들은 부모로부터 한 벌씩 물려받기에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것들이 둘씩 쌍으로 들어 있다. 그 비슷하게 생긴 쌍을 상동 염색체라고 하는데, 상동 염색체 사이에는 DNA의 교환이 가끔 일어난다. 또 한쪽 염색체가 끊겼을 때 상동 염색체를 참조해 수선하기도 한다. 카페치와 스미시스는 이 상동 재조합 과정을 이용해 유전자를 원하는 자리에 끼워넣고, 제대로 끼워진 세포들만을 골라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수상자인 마틴 에번스는 생쥐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집어넣은 새 유전자를 지닌 후손들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배아줄기세포를 꺼내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른 배아에 이식하여 이른바 ‘모자이크 배아’를 만들었다. 그 배아를 대리모에 착상시켜 태어나게 한 뒤 교배시켜서 이식된 유전자를 지닌 후손들만을 골라냈다.
이 두 연구 흐름이 합쳐진 결과는 놀라웠다. 인간은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바꾼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1989년에도 배아줄기세포의 유전자를 상동 재조합으로 변형시킨 생쥐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됐다. 실험 방법은 지금까지 말한 그대로였다. 상동 재조합을 통해 생쥐의 배아줄기세포에 있는 특정한 유전자를 바꾼 뒤 다른 배아에 그 줄기세포를 이식했다. 그 모자이크 배아를 착상시켜 태어나게 한 뒤에 교배해 유전자가 바뀐 생쥐 혈통을 만들었다.
생쥐에 생쥐 유전자만 집어넣으라는 법은 없다. 연구자들은 생쥐를 인간의 질병 치료제 개발에 활용했다. 인간의 각종 질병 원인인 유전자들을 생쥐의 배아줄기세포에 집어넣어 생의학 분야의 연구 및 치료제 개발에 이용하고 있다. 인간의 이러한 실험은 ‘창조주’ 행세를 하는 오만한 행위일까.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는 자연을 흉내 내는 것이다.
자연은 늘 실험한다
사실 자연은 온갖 유전학적 실험을 한다. 당하는 기존 생물들의 처지에서는 희생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이러한 실험을 통해 새롭고 우월한 생물이 나타날 수 있다. ‘진화’는 자연 실험의 대표적 산물이다.
찰스 다윈은 ‘종(種)의 기원’에서 비둘기 교배 실험부터 시작해 인간이 자연을 흉내 낸 실험들을 열거한다. 농경과 유목도 자연선택을 모방한 인위 선택의 결과였고 이는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됐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 생명의 다양성을 빚어낸 원동력임을 간파했다. 그를 계승한 많은 과학자는 ‘선택의 단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생물종인가 개체인가. 자연은 종을 선택하는 것일까, 개체를 선택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