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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외로움은 상대적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이죠”

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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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 새벽. 때론 간병으로 밤을 새우고 나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여인의 모습으로, 우유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가끔은 청소부의 모습으로 정호승 시인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시인의 모습을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시인은 기도한다.
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초가을 즈음에 새벽기도를 다닌 적이 있다. 새벽잠을 꿀처럼 빨아먹고 살던 내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새벽길을 나서면 무척 피곤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몸을 이끌고 예배당에 가고, 거기에서 기도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평온해지고 가끔은 휘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불가의 수도승이 하안거나 동안거에 들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나, 일상에 지친 범부가 새벽기도를 하는 시공간은 일상의 담장을 잠시 헐어내는 시간이다.

1시간 정도의 기도를 마치고 새벽담배를 피운다. 교회에서 내려와 점점 밝아오는 태양을 보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벽의 ‘본 모습’을 본다. 새벽은 내가 깨어야 할 나의 ‘자아’이며, 타인에 대한 ‘사랑’이고, 간절한 ‘기도’다. 그렇게 새벽은 깨어 있는 자들의 몫이다. 이제 아침이 오면 저 고요한 거리는 인파로 북적댈 것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침을 오게 하는 빛을 보았다. 그것은 예감이었고, 축복의 햇살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면서도 같은 시간을 품고 있으며, 그 시간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곳에 가끔 가을날 감나무처럼 시가 서 있기도 하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찰나다. 그 찰나에 정호승(鄭浩承·57) 시인은 서 있다.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아이를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하여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시 ‘슬픔을 위하여’ 중에서

시인은 때론 간병으로 밤을 새우고 나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여인의 모습으로, 우유 배달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가끔은 청소부의 모습으로 새벽에 나타난다. 그를 본 적이 있는가? 독자는 어쩌면 그런 시인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정호승 시인은 기도한다.

기도하는 시인 정호승. 토요일 오후에 긴 이야기 자리를 벗어나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정호승 시인을 ‘기도하는 인간’으로 보았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나타났을 무렵엔, 분명 기도하는 인간들도 같은 땅 위에서 살았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거나 혹은 우리가 분류해낼 수 없는 원시 인류로서 나는 ‘기도하는 인간’이 저 원시의 공간을 수만년 지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빙하기에 매머드나 주라기의 공룡과 같은 존재로서의 인류는 ‘기도하는 인간’인 거인이 지배했을 것이다. 선생의 단정하고 자그마한 체구, 그 몸 안에는 거인이 살고 있다. 큰 키에 대단한 몸을 가진 마음의 거인이 세상사의 자잘한 모습을 읽고 안타까워한다.

“선생님은 서정시인입니까?”

뜬금없이 서정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은 허허 웃으면서 서정이란 시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서정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서정’이라고 부연 설명해주었다.

“꽃 하나를 보아도, 그 자연물 속에서 제가 보는 건 인간이지요. 저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징이나 꽃과 별과 같은 자연물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매개물입니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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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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