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또 다른 나와의 질주… 도전은 계속된다”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김성남 기자 photo7@donga.com

    입력2006-08-14 1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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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이 나이에 무슨…’ 하며 주저앉은 적이 있는가. 동료의 탄력 있는 몸매를 보며 ‘난 운동신경이 둔해서…’ 하며 밋밋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은 없는가. 인생은 무한히 계속될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막을 내릴 수 있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고 있는 잠재력이 훨씬 많다. 고정관념을 깨면 삶은 자유롭고 풍요로워진다.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도로를 내달리는 미국산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의 화려한 디자인에 누구나 한번쯤 시선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보다 먼저 할리 데이비슨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우렁찬 엔진 소리다. 2년 전 할리 데이비슨과 처음 인연을 맺은 숭실대 정치학과 한명수(韓命洙·60) 교수도 힘 있는 엔진 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할리를 타고 달리면 강한 엔진 소리가 마치 내 심장 소리인 듯 느껴져 편안해져요. 빨리 달리면 소리가 더 커지고, 속도를 늦추면 잠잠해지는 것이 마치 유리된 또 하나의 나와 동행하는 느낌이죠.”

    지난해 초 한 교수가 새로 구입한 ‘소피테일 딜럭스’는 흰색과 푸른색이 미끈한 몸체를 감싼, 세련된 디자인의 1450cc 오토바이다. 얌전해 보이지만 일단 시동을 걸면 ‘한 성깔’ 한다는 듯 엔진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점잖은 교수와 요란한 오토바이,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엔 누군가의 강권이 있었을 듯한데, 한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멋진 오토바이를 타보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나요?”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차량이 적은 평일 오전 유명산을 향해 떠난 한 교수. 그가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됐다.

    그러나 누구나 욕망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 또한 오랫동안 운동이나 취미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엔 다른 데 관심이 쏠려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고,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뒤로는 운동을 못한다는 강한 자의식이 걸림돌이 됐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자신에게 투자하고 스스로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테니스 라켓을 들었다. 마흔여덟 살 때다.



    일단 운동을 시작하고 보니 종목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욕망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쉰세 살에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고, 쉰다섯 살에 수상스키에 도전했다. 그리고 2년 전 쉰여덟에 할리 데이비슨을 탔다.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마음먹고는 할리 데이비슨을 먼저 구입했다. 그런데 2종 소형 운전면허를 따는 게 문제였다. 학교 운동장에 줄을 그어놓고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하고 시험을 봤는데 내리 일곱 번을 떨어졌다. 7전8기(七顚八起)라 했던가. 여덟 번째엔 반드시 붙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새벽 집에서 40km 떨어진 연습장에서 2시간씩 연습을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릴 적에 좋은 장난감이 생기면 침대 밑에 넣어두고 몰래 보고 만졌듯, 혼자서 오토바이 탈 생각을 야금야금 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나 몰라요.”

    한 교수는 “사람이나 사회가 늙지 않으려면 연상과 상상의 샘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여름방학 땐 유명산이 도서관이라 생각하고 매일 새벽 집을 나서 연습을 했다. 덕분에 이번 여름방학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유명산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드라이브 코스를 한 바퀴 돈다. 유명산길의 율동감을 충분히 즐긴 후 청평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색에 잠기거나, 양수리에서 수상스키를 탄 후 강가에서 책을 읽으면 가슴이 그득 충전되는 느낌이라고 한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그는 “위기에 처했을 때 부부애가 강해지듯 위험에 노출됐을 때 오토바이와 하나 되는 느낌도 더 강해진다”며 웃는다. “자동차가 그림 앞을 지나가는 것이라면 오토바이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서.

    “인생 자체가 위험한 걸…. 뭐든 분수껏 하면 위험할 것 하나 없어요. 나이 먹어 시작하니 속도에 연연하지 않아서 좋아요. 젊어서는 내 차를 앞질러 간 차는 반드시 추월하고 말아야 직성이 풀렸죠. 그러나 추월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 차 하나만 주시하게 됨으로써 시야가 좁아져 위험에 부닥뜨리는 거예요. 요즘은 추월하는 차를 보면서 ‘내가 너를 어찌 앞지르겠냐’ 하고 초연해버리니 마음이 편해요.”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한 교수는 얼마 전까지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아래는 용산구 한남동 할리 데이비슨 매장을 찾은 한 교수.

    한 교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모든 것에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나도 할 수 있구나’ 확인하는 것이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난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전해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또 무슨 일이든 잘하지 못할 바에야 시작을 말자는 주의였는데, 그런 생각이 오히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제한된 삶을 살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죠. 지금도 누군가 과제를 주면 아주 신나서 도전해볼 것 같아요.”

    할리 데이비슨 라이더들은 “할리를 왜 타냐고 묻거든 대답할 필요 없다. 왜? 이해 못할 테니까”라고 말한다. 스스로 해보고 느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면서 행복이 먼 곳에 있지 않고 자기 안에 있으며 자신에 대한 투자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일, 이제 시작할 때다.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한 교수는 학교에 출근할 땐 주로 스쿠터를 이용한다. 왠지 울적한 날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출근해 강의가 끝나는 대로 유명산을 향해 내달리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경기고 연극반 출신 졸업생들이 모여 만든 화동연우회 정기공연 무대에 선 한 교수(아래).

    정치학자 한명수 오토바이

    한 교수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닦고 광낸 할리 데이비슨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 선택한 구속”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자신을 꼭 닮은 동반자 할리 데이비슨과 함께 자유의 폭을 무한히 넓혀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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