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 이주향│수원대 인문대 교수·철학

    입력2013-07-19 09: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혼자 살기보다 함께 살기 좋은 사람들이 결혼합니다. 그러면 함께 살기보다 홀로 살기 좋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겠지요? 물론 많은 이에게 이혼은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혼을 선택하는 건 그것이 함께 사는 일보다 낫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황혼이혼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20년 이상 부부로 살아온 사람들이 따로 살기로 결정하고 법적인 조치까지 취했을 때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 겁니다.

    마음이 맞지 않기 때문이든, 경제 상황 때문이든,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든, 자유를 주기 위함이든 제3자가 판관이 될 일은 아닙니다. 제3자는 그저 그들의 결정을 단지 존중해주면 될 일이지요.

    ‘이혼’이란 말 대신에 ‘해혼(解婚)’이란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이혼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 결혼관계를 풀어준다는 뜻의 해혼은 ‘졸업’이란 말처럼 하나의 경험을 마무리한 후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있지 않나요?

    해혼이란 말을 들은 것은 인도에서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타지마할을 아시지요?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22년간 지었다는 그 묘지는 묘지가 아니라 대리석으로 빛나는 천상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샤자한과 그의 아내 뭄타즈의 이야기가 살고 있는 거기서는 이생과 내세가 둘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죽은 아내를 떠나보내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아내와 함께 묻힐 묘지를 짓는 데 평생을 바치는 남자에 대한 상상으로, 마치 내가 전생의 뭄타즈였던 것처럼 사랑의 환상에 들떠 걸어 나오다가 그 앞에 있는 간디 아슈람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간디의 해혼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간디는 해혼식까지 했습니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리 낯선 문화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결혼의 굴레를 풀어주고 자유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겁니다. 샤자한과 뭄타즈처럼 영원한 사랑의 원형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해혼식을 하고 자유인으로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니라 내용이니까요.

    인도는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힌두의 땅이고, 브라만의 땅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의미겠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인도 문화의 정수인 명상수행이 삶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계층이기도 합니다.

    브라만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배우고, 청년이 되면 좋은 가문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부모가 그랬고, 조부모가 그랬듯이 그들은 가정을 충실히 꾸립니다. 돈을 벌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브라만 계급에 맞게 잘 교육해 결혼까지 시키지요. 자식이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평생 동반자로 살아온 배우자와 해혼을 해도 되는 겁니다.

    간디의 해혼식은 머리 좋은 사람의 기발한 착상이 아니라 인도 문화가 용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해혼식’이라는 형식이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결혼식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이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의무를 끝내고 자유인으로 돌아가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의지를 낸 사람의 삶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요.

    브라만의 남자들은 해혼 후 대부분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합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 든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입니다. 왜 인도가 매혹적인 곳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혼을 하지 않았어도, 해혼을 하지 않았어도 나이 들수록 필요한 것이 혼자 사는 연습입니다. 혼자 사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혼자 살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고,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 우리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하지요? 그런데 진짜 당신 없이 못 사는 사람과는 결혼해선 안 된다는 것이 스캇 펙의 이론입니다. 진짜 당신 없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생충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거지요. 아내 없이는 한 끼의 밥도 해결할 수 없는 남편은 아내의 짐입니다. 남편 없이는 경제적으로 한 달도 꾸려갈 수 없는 아내는 남편의 짐입니다. 만나면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야기만 하는 친구는 친구의 짐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 가정은 남자들의 왕국이었습니다. 가정에서 남자들이 버려질 수 있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남자들이 하인인 집이 너무 많습니다.

    가부장적 가족이 해체되면서 평생을 처자식을 위해 살았는데 50대가 되고 보니 직장에서, 가정에서 위기라고 느끼는 남자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큰소리칠 때는 술친구도 많았는데, 도와줄 힘도 없고 술값을 낼 돈도 없어지자 친구도 사라졌다고, 세상 인심이 각박하다고 푸념하는 남자도 많습니다. 세계는 넓은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고립감을 호소하는 거지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관계에서 위기라 느낄 때 어떻게 하십니까. 혹, 가까운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하거나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나요? 우울증과 분노가 반복되다보면 망치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래서 일단 불혹을 넘기면 슬슬 혼자 살아갈 연습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친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내가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존감이 없는 사람의 하소연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아끼지 않고, 실적이 미미하면 폐기처분하는 사회에서는 내가 나를 아껴야 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그저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이유도 모르는 무한경쟁의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스스로 내 공간을 찾고 내 시간을 찾아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합니다. 아플 자유, 울 자유 없는 세상에서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공간 갖기는 어렵게라도 이룩해야 할 인간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동굴 없이 정서적인 독립을 이룩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당연히 나만의 통장이 있어야겠지요? 법인카드로 돈을 팍팍 쓰고 다닌 사람 중엔 내 지갑을 여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내 지갑을 열어 가까운 사람들을 먹일 수 있어야 진짜 내 경제력입니다. 규모 없이 돈을 마구 쓰고 다니는 사람도 불안하지만 누가 자린고비하고 친구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스스로 만든 밥상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생각보다 삶이 튼튼해집니다.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에 ‘나’만의 요리가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오로지 ‘나’를 대접하기 위해 요리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삶의 기본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요리 두세 접시를 직접 만들어낼 줄 아는 것, 혼자 사는 연습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면서 맘에 맞는 친구를 불러보시지요. 식탁이 당신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를 찾아보시지요. 여행도 좋고, 운동도 좋고, 명상도 좋고, 특정한 분야의 공부도 좋습니다. 그런 관심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감정이 교류되고 이성이 교류되고 신성이 교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이주향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이화여대 석·박사(철학)

    한국니체학회 이사, 동아일보 독자위원회 제2기 위원

    저서:‘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현대 언어·심리철학의 쟁점들’ ‘내 가슴에 달이 들어’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등

    現 수원대 인문대 철학교수


    그러고 나서 내가 사회적으로 잘나갈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잊어야 합니다. 사실, 잘나갈 때 도와줬던 사람을, 친하다고 생각해서 찾았는데 그 사람이 초라한 내 모습을 부담스러워하면 기가 막히지요?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빚쟁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빚을 상기시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도와준 일을 잊고 있으면, 내가 줬던 도움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빛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홀로 선 사람만이 모든 존재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에세이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