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너나할 것 없이 떠나는 바람에 산업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이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가 100만개에 달한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다. 중국경제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우리에게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노용악(盧庸岳·64) LG전자 중국지주회사 고문은 10년째 중국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경영인이다. 노 고문은 2002년에 중국경제보가 뽑은 ‘중국 10대 가전(家電)인물’에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사스 창궐 기간에 보여준 용기와 사업능력을 평가받아 ‘역경을 이긴 10대 경영인’(중국 재경시보), ‘비상인물’(非常人物·대단한 사람, 경제참고보)로 꼽히는 등 중국 언론매체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은 바 있다.
1965년에 LG전자에 입사해 한국 전자산업의 산증인이자 마케팅 전문경영인으로도 유명한 ‘중국통’ 노용악 고문. 그가 체득한 중국에서의 성공 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또 그의 눈에 비친 중국시장의 내막과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현지에 진출한 혹은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인들은 어떤 사업전략을 구사해야 하나? 이번달 중국탐험 인터뷰는 지난해 중국경제를 강타했던 사스파동의 극복사례를 시작으로 노 고문의 LG전자중국지주회사 경영 노하우를 들어본다.
사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지난해 사스가 창궐해 외국기업인들이 서둘러 중국을 떠나 귀국하던 시기에 노 고문은 중국에 계속 머무른 것은 물론 ‘아이 러브 차이나(愛在中國)’ 캠페인을 벌여 중국인들로부터 크게 신망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스기간중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큰 가치를 얻은 기업의 대표’로 ‘비상인물’에 뽑히기도 했는데요. 당시의 상황은 실제로 어땠습니까.
“무서웠지요. 그때 분위기를 전하면 이런 식입니다. 제가 계속 출근하니까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고 싶지 않아도 안나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연세가 든 사람에게 더 잘 걸린다는데 나오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는 거예요. 제가 피신을 해야 자기들도 피신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사스 발생 초기에는 정말로 공포가 엄습했으니까 이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통계적으로 보면 교통사고로도 몇백 명씩 죽는데 사스에 걸릴 운명이면 걸리는 거지 뭐,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가 중국사회에서 한 단계 점프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연하게 대처했는데, 주변의 평가가 달라지고 성과도 나니까 조금씩 안정되어갔죠.
중요한 것은 덮어놓고 무모하게 버틴 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입니다. 소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렌지, 김치 같이 사스 예방에 좋다는 음식을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했습니다. 물론 사스 예방약도 식구 숫자대로 지급했고요. 사스 예방에 좋다는 것은 다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하니까 직원들이 집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회사에 출근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모든 마케팅 컨셉트를 사스 공포에 질려 있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 같으면 살균효과를 마케팅 컨셉트로 잡고 광고전단과 카탈로그까지 모두 바꿨습니다. 그 결과 매출도 늘고 주위에서 좋은 소리도 듣고 중국정부도 고마워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린 셈이었죠.”
-당시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기업들은 어땠습니까.
“서양사람들은 대개 쉬었지요. 결과적으로 중국 국내업체들은 덜 쉬었고요. 저희 회사 바로 옆의 일본 마쓰시타 공장도 가동이 중단됐었습니다. 환자가 한 명만 발생해도 그 공장이 폐쇄되었으니까요. LG는 예방조치를 철저히 한 탓인지 다행히 직원 중에 감염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