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업계뿐 아니라 석유화학 부문 역시 사상 최대의 불황을 맞이했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매출은 65조9000억 원. 그러나 주력사업인 정유 부문에서 9조919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실질적으로는 2241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시가총액 23조6000억 원(2011년 4월 25일 기준)으로 KOSPI 상장사 중 8위를 기록하던 기업 가치는 4분의 1 토막이 났다. 지난해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8조3000억 원(2014년 12월 26일 기준)으로, 기업 순위 역시 31위로 급락했다.
비단 SK이노베이션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2589억 원 적자를 기록하며 1980년 사업 시작 이래 최초의 영업적자 사태를 맞았다. GS칼텍스도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두 번째 적자가 예상되고, 국내 정유사 모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지난해 초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인건비가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정유업계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는 것은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떠밀렸다는 방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더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처음으로 사원 공채 선발을 중단했다.


저유가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산유국들의 재정 압박 심화와 셰일오일의 공급 둔화로 올 하반기부터는 국제 유가가 완만한 상승세로 전환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글로벌 원유시장의 전반적인 공급과잉 이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가 반등세를 타기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셰일가스와 같은 비전통 자원의 생산 원가 하락, 선진국의 수요 감소, 중국의 수요 증가세 둔화 등으로 원유공급의 과잉이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유시장의 가격 하락은 국내 정유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지리적 입지상 국내 정유사가 원유를 도입해서 생산, 판매하기까지 35~40일이 소요되는데 최근의 유가 하락 사태로 재고평가 손실은 물론 매출과 매입의 시차에서 오는 정제 마진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유 4사는 지난해 4분기에만 1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두바이유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은 두바이유가 주로 거래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을 수익성 지표로 삼는다. 그런데 2011년 10월 배럴당 10.29달러로 정점을 찍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013년 10월 3.49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4∼6달러로 반등했다. 1월 현재 6.36달러를 나타내지만 이는 정유사가 마진 6.36달러에서 기본 운영비 등으로 지출되는 5달러를 빼면 겨우 1배럴에 1.36달러만을 수익으로 남겼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저유가가 소비자의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기업의 원료비 절감 효과를 가져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 예측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정유 업계의 내수 매출은 유가급락 이후에도 여전히 답보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