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파키스탄 커넥션을 주도한 압둘 칸
최근 파키스탄의 한 과학자에 의해 이슬람 지역과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파키스탄 핵실험 성공(1998년)의 주역 압둘 카디스 칸 박사가 북한·이란·리비아·이라크에 핵기술을 이전한 데 따른 파문이 바로 그것이다. 조지 테닛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2월5일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한 연설에서 “(CIA의) 정보 수집활동을 통해 파키스탄 압둘 칸 박사가 핵기술을 유출해온 루트를 탐지해냈다. 우리는 북한·이란·리비아와 같은 나라에 핵기술을 제공해온, 4대륙에 걸친 비밀 네트워크를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의 비밀공장에서 만들어진 핵 부품들이 리비아로 운송됐다는 것. 말레이시아 ‘스코미 정밀엔지니어링’이란 회사가 파키스탄 압둘 칸 박사로부터 반제품 상태의 핵 부품 제조를 주문받았고, 그 가운데 14개를 2002년 12월부터 2003년 8월 사이에 아랍에미리트연방 두바이에 있는 스리랑카인 소유의 한 중간상을 통해 리비아로 보냈다는 의혹이다. 문제의 회사는 압둘라 바다위 총리의 외아들 카말루딘 압둘라가 최대 주주인 스코미그룹의 자회사. 사태가 불거지자 말레이시아 정부 당국은 총리의 아들이 핵 부품 판매 자체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 CIA는 몇 해 전부터 압둘 칸을 ‘문제인물’로 꼽고 있었다. 2001년 3월 압둘 칸이 자신이 1976년에 세운 ‘카후타연구소(칸연구소)’에서 물러난 것도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핵기술 이전 사실은 2003년 이란과 리비아로부터 그 전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리비아는 유엔 경제제재에서 벗어나려고 팬암기 폭파사건(1988년)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결정하면서 영미 정보기관에 파키스탄의 핵기술 지원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1월 압둘 칸을 비롯해 관련 과학자들의 명단을 파키스탄 정부에 통보했다.
지금껏 드러난 혐의내용을 보면 압둘 칸은 1990년대 초부터 이란, 리비아, 북한에 우라늄 농축 기술과 원심분리기 도면, 부품 등을 제공해왔다. 그는 이들 3국 실무자들과 콸라 룸푸르, 카사블랑카, 이스탄불, 모로코 등지에서 만나 관련 부품을 건넸고 기술자문 역할을 맡아왔다.
미국 언론들은 압둘 칸이 핵기술 암거래 조직을 꾸려가면서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챙겼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키스탄 국익에 기여하기 위해 그렇게 해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슬람권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한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이자 이슬람권의 영웅인 그는 핵기술 유출 파문에 대해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핵 보유국이 늘어나게 되면 서방국가들이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곧 무슬림의 대의(大義)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무슬림의 대의’란 곧 반미, 반서방 저항의식에 바탕을 둔 범이슬람 민족주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 아래 1970년 무렵부터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다. 따라서 압둘 칸은 ‘이슬람 핵무기=이슬람권의 힘’이라는 정치군사적 등식을 믿은 것 같다.
조지 테닛 미 중앙정보국 국장도 지적했듯 압둘 칸의 커넥션은 북한과 리비아, 이란의 핵개발 일정을 여러 해 단축시켜줬다. “그렇다면 이슬람 국가가 아닌 북한엔 왜?”라는 질문에 압둘 칸은 “그 부분은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굳이 입을 연다면 대답은 “국가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 부분도 역시 ‘무슬림의 대의’를 위해서다. 이슬람 국가 가운데 최초로 핵을 보유한 파키스탄이 힌두교 국가인 인도와 군사적 균형을 맞추려면 핵무기를 실어 나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