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목록을 작성하자면 참으로 길다. 부시 행정부는 세계평화의 희망을 저버렸다. 5000만명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뒤 유엔(국제연합)이 들어설 때 유엔헌장은 “전쟁의 고난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민들은 배신당했다. 냉전과 ‘공산주의의 위협’이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국방비로 낭비할 명분이 되진 못한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는 미국 어린이들의 교육비를 갉아먹었고,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돌아갈 의료혜택을 줄였다. 그뿐인가. 노인복지, 무주택자(homeless)와 실업자들을 위한 지원금을 삭감하도록 만들었다.
역대 전쟁은 배신의 역사 지녀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이 있을 때마다 병사들은 배신을 당해왔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국방의 의무와 애국주의 같은 숭고한(grandiose) 거짓말을 들으며 전쟁터로 이송됐다. 미 독립전쟁 당시 젊은이들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겠다고 독립을 선언했던 지도자들(이른바 Founding Fathers)에게 배신당했다. 그들이 헐벗고 장화조차 신지 못하며 고생하는 동안 고급장교들은 사치를 즐겼고 상인들은 전쟁특수로 현금을 챙겼다. 급기야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 일부는 조지 워싱턴 장군에게 처형당했다.
독립전쟁이 끝난 뒤 서부 매사추세츠의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기지 않으려 대들었지만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농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립전쟁에 참가해 워싱턴 밑에서 죽을 고생을 했던 퇴역군인들이었다.
지금의 뉴멕시코 지방과 캘리포니아 지방을 강탈한 미국-멕시코전쟁(1846∼47년), 그리고 남북전쟁(1860∼64년) 때는 수천 명의 병사가 불만을 품고 탈영했다. 부잣집 아들들은 돈을 써서 징집에서 빠졌고, J.P. 모건 같은 금융업자들은 전선에서 전사자가 늘어날수록 돈을 벌었다. 흑인 병사들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인종차별과 빈곤이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사에서도 배신의 기록은 빠지지 않는다. 혹독한 전쟁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채 돌아온 병사들은 불경기 속에서 실업자의 고통을 겪었다. 마침내 미 전역에서 2만명에 이르는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이 워싱턴으로 모여들어 포토맥 강가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했다. 미 의회가 약속했던 수당(bonus)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퇴역군인들은 끝내 총격과 최루탄에 밀려났다.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도 미국 행정부로부터 배신당했다. 전후 그들은 부도덕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에 내몰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이 정부로부터 잊혀지길 바라는 그런 존재가 됐음을 깨닫게 됐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화학제제인 고엽제(Agent Orange)를 마구 뿌려 수십만 명에 이르는 베트남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암환자가 늘어났고 기형아 출생이 늘어났다. 미군 병사들도 고엽제에 직접 노출돼 후유증을 앓았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고엽제의 영향은 별것 아니라며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Dow Chemical)이 1억8000만달러를 피해자 가족에 보상해주기로 합의한 것이 전부였다. 이는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가구10만으로 나누면 고작 1000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였다. 미 행정부는 베트남에 수천억 달러를 전쟁비용으로 쏟아부었다. 그렇지만 집 없는 참전군인이나 재향군인, 병원을 드나드는 부상병들, 그리고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거나 자살하는 참전군인을 위한 예산은 없었다.
제1차 걸프전쟁(1991년) 때 이라크의 인명피해는 1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단지 148명의 미군이 전사했을 뿐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반면 20만6000명의 재향군인회원들이 걸프전쟁에서 비롯된 부상과 질병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숨기려 들었다.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걸프전이 끝난 뒤 12년 동안에 8300명이 사망했고, 16만명이 육체적·정신적 장애(disability)로 고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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