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3월 11일 높이 15m의 쓰나미를 맞고, 12일 1호기, 14일 3호기, 15일 2호기와 4호기에서 연쇄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2011년 11월 12일 도쿄전력은 사고 후 최초로 정부 관계자와 기자들에게 현장을 공개했다.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현장에서는 많은 직원이 방호복과 방호마스크를 쓴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상발전기 위치를 잘못 선정함으로써 당한 참혹한 사고 현장을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사진부 기자들이 다녀왔다. (1부 4장 1절 기사 참조)
1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는 어떤 지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면진동(免震棟)이 있다. 면진동은 요시다 마사오 후쿠시마 제1발전소장이 본사와 연락하며 사태 수습을 지휘해온 본부였다. 기자들과 함께 현장 시찰을 마치고 이곳에 온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사고 담당 장관이 사태 수습에 노력해온 도쿄전력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2 ‘J빌리지’라고 하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부속건물에서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선량계 두 개씩을 휴대한 후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탑승한 기자들. 한 기자는 ‘얼굴을 덮는 마스크를 착용하니 매우 더웠다. 11월이었지만 땀이 흘렀다. 한여름에 이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던 현장 요원 40여 명이 열사병 증세를 호소했다는 사실이 이해됐다’라고 적었다. J빌리지에서는 시간당 1.5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키던 방사선 선량계가 버스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접근해감에 따라 금방 10마이크로시버트로 올라갔다.
3 핵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정지하고 있었으나 사고를 일으킨 인접 호기의 수소가 흘러들어와 3월 15일 격납용기 상단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건물이 수소폭발로 날아가버린 4호기. 훼손된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벽체 사이로 보이는 노란색 구조물은 격납용기의 뚜껑이고, 엷은 녹색은 핵연료 교환장치다.
4 해안 쪽에 있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도로변의 각종 탱크들. 15m 높이의 쓰나미가 만든 ‘물폭탄’에 밀려 휘어지고 쓰러져 있다. 철 구조물이 마구 휘어져 있는 데서 3번 이상 덮친 쓰나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5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현장 수습 요원들. 전신 방호복에 마스크를 쓴 채 작업하고 있어 매우 더울 것으로 보였다. 훼손된 격납용기에서 계속 물이 새나와 도쿄전력은 이 물을 한군데에 모은 후 정화해서 방류했다. 물을 모아놓으면 바닥에 ‘오니(汚泥)’라고 하는 찌꺼기가 쌓이는데, 오니는 상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다. 이들은 오니만을 따로 모아놓을 시설을 짓고 있다고 했다.
6 3월 14일 두 번째로 수소폭발을 일으킨 3호기. 3호기에서는 직접 수소가 발생했기에 4호기보다 폭발강도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는데도 도쿄전력은 3호기에 해수를 주입하지 못해 연쇄 폭발을 당했다.
7 쓰나미에 휩쓸린 3호기 터빈 건물. 도쿄전력은 터빈 건물 안 지하실에 비상발전기를 넣어 두었기에 속수무책으로 SBO(원전 완전 전력 상실) 상황을 맞았다.
8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바다 쪽 부지에 있는 각종 관이 쓰나미에 밀려 훼손된 상태로 있다. 가운데 흰색 관은 배기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9 바다 쪽 도로에 임시로 설치한 방조제. 높이는 약 4m다. 돌을 넣은 철망(鐵網)을 쌓아올려 만들었다. 다시 쓰나미가 몰려오면 복구작업이 엉망이 되기에 6월 30일 황급히 쌓았다고 한다.
10 격납용기 등에서 새나오는 물을 저장하는 탱크들. 이 탱크에 담긴 물은 정화 과정을 거쳐 방사성물질을 제거한 후 방류한다.
11 오렌지색 호스를 통해 원자로와 격납용기 안에 물을 넣어줌으로써 녹아내린 핵연료가 냉각돼 더 이상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것은 2호기 터빈 건물이다.
12 대책본부가 차려진 면진동에서 호소노 고시 원전사고 담당 장관의 연설을 듣는 도쿄전력 직원들. 한때 이들은 특공대를 조직해 사고가 난 원자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