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테러 이후 미국은 핵 테러의 위협에 주목했다. 핵무기를 터뜨리는 테러도 가능하지만, 입수하기 쉬운 방사성물질을 뿌리는 방사성물질 테러도 일어날 수 있다. 항공기를 몰고 원자력발전소로 돌진하는 자살테러도 가능하다. 핵 테러는 일어나기만 하면 심리적으로 공포가 엄청나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2010년 한국은 천안함 테러를 당한 만큼 북한이 자행할 수 있는 핵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7년 “핵테러는 현 시대 가장 심각한 위협 중의 하나”라며 “단 한 번의 핵 테러도 대량살상과 엄청난 고통과 원치 않는 변화를 영원히 초래할 것이다. 이런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불법거래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1993년 이후 핵 물질과 방사능 물질에 대해 1773건의 도난·분실·탈취·불법거래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러한 사례가 매년 평균 2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 2011년 6월 몰도바의 수도인 키시네프에서 핵분열 물질 밀매 시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1㎏당 2000만 달러에 우라늄-235를 밀거래하려던 일당 6명이 체포됐다. 충격적인 사실은 용의자들이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세력에 우라늄을 넘기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07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무장괴한 4명이 1만V가 흐르는 전기 철조망과 경보시스템을 뚫고 ‘펠린다바’ 원자력연구센터에 침입한 사건이 꼽힌다. 연구센터 안에는 핵무기 25∼30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고농축우라늄(HEU) 750㎏이 보관돼 있었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이 사건들은 핵물질이 소홀히 관리될 경우 쉽게 탈취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핵물질 도난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새로운 유형의 핵 테러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 사고는 자연재해에 의해 일어났지만, 원전 등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테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됐다.
핵 테러 위협은 가상현실이 아니다
2001년 9월 11일 순항 속도인 시속 800여㎞로 날아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리는 여객기. 원자력발전소의 격납용기도 항공기가 시속 800㎞ 이상으로 날아와 들이받으면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3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9·11 테러의 주모자 모하메드는 초기 목표가 원자력발전소에 비행기를 충돌시키는 것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 5월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알카에다 등 이슬람 급진세력이 서방국가에 보복하기 위해 핵물질을 테러에 악용하거나 핵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9·11테러 이후 핵물질을 확보하려는 알카에다의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현재 31개국이 43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고, 2만 기 이상의 핵무기와 12만 기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의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산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관리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핵물질은 국제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지경이다.
핵무기나 핵물질이 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1990년대 이전에 발생한 테러는 정치적 성향이 강했다. 그런 만큼 공격대상도 제한돼 있었다. 테러조직은 공격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졌는지 여부를 고려했다. 살상과 파괴의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대량살상을 피했다. 최종 목적이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테러행위는 무차별적이고, 잔인하며 파괴적으로 변했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수단, 즉 화생방 무기를 테러에 쓰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의 지하철 독가스 테러가 대표적인 사례다. 테러조직은 대량살상 테러를 자행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어떻게 하면 적에게 더 큰 충격과 공포를 줄 수 있는지만을 생각할 뿐이다.
테러범들이 핵무기 획득에 혈안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공포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테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핵테러는 파괴력도 엄청나지만 폭발 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지속적인 피해와 그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10kt급 핵무기가 뉴욕 맨해튼에서 폭발한다면 10만 명이 죽고 70만 명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되며, 폭발 반경 0.5마일(800m) 안의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한 연구 결과는 두려움을 준다.
더러운 폭탄으로 위협하다
핵 테러는 ‘핵물질 혹은 방사능물질을 직접 무기로 사용하거나, 이것을 사용하는 시설을 공격해 인명을 살상하고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공격행위에 대한 협박으로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특정 개인과 단체, 공동체, 그리고 정부의 인식 변화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징적 심리적 폭력 행위’로 정의할 수도 있다. 핵 테러는 메가 테러의 대표다.
핵 테러 유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방사능 무기나 더러운 폭탄(Dirty Bombs)을 사용한 공격이고, 둘째는 핵시설에 대한 공격이다.
핵무기와 방사능무기는 다르다. 방사능무기는 재래식 화약의 폭발력으로 방사능물질을 살포해 사람과 장비, 시설, 지역을 오염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방사능물질이 살포돼 피폭된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방사능물질은 독성 화학제와 다를 바 없다.
방사능무기에는 크게 폭발에 의해 살포되는 것과 폭발 없이 분사되는 것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일반적으로 방사능 살포장비를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나 방사능무기로 부른다.
더러운 폭탄은 통상의 화약을 순도가 낮은 핵분열 물질이나 사용후핵연료에서 얻은 핵폐기물 등으로 둘러싼 다음 발파해 핵분열 효과가 아닌 방사능물질의 살포 효과를 얻는 급조 폭발물의 일종이다. 핵물질이 아닌 방사능물질이기에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으나 지역 일대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더러운 폭탄은 핵폭탄에 비해 고도의 제조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제조비용도 높지 않고, 소규모 시설로도 제조할 수 있다. 준(準)국가 수준으로 진화한 게릴라나 테러조직이라면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급조된 더러운 폭탄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성공한 사례가 없어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휴대하기 용이한 크기의 더러운 폭탄이 함유하는 방사능은 소량에 불과하고, 확산 범위도 제한된다. 그 방사능에 오염되려면 오랫동안 방사능물질에 노출되거나 섭취·흡입해야 한다.
따라서 더러운 폭탄은 대량살상무기와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더러운 폭탄에 의한 한두 번의 방사능 피폭으로는 치명적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더러운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 방사능 공포로 인한 심리적인 충격과 방사능을 제거하기 위한 예산 투입 등으로 입는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것이다.
원전을 공격한 사례
원자력발전소는 핵분열에 의한 발열(發熱)을 이용해 증기를 발생시키고, 이것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원자력발전소는 대규모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가공할 에너지원을 다루는 시설이다. 이 때문에 보안대책은 상대적으로 잘되어 있다. 그럼에도 핵시설에 대한 테러가 간헐적으로 발생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1976년 5월 12일,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州)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두 개의 폭탄이 폭발했다. 테러를 자행한 조직은 프레드 햄튼 인민군 부대(Fred Hampton Unit of the People‘s Forces)로 알려졌다. 이 조직은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폭탄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1978년 3월 17일 스페인에서도 유사한 테러가 발생했다. 레모니즈 원자력발전소에서 폭탄이 터져 2명의 인부가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스페인 바스크 분리주의 조직이 자행한 테러로 밝혀졌다.
하지만 원자력시설에 대한 공격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른 유형의 테러와 비교해서 사상자 규모가 크지 않았고, 언론에 모든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원전 시설은 방사능물질의 외부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방호벽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반적인 폭탄으로는 파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원자력발전소 공격에 대한 우려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불거졌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항공기 등으로 원자력발전소에 자살테러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용후핵연료(Spent Fuel) 저장고에 대한 공격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사능물질의 외부 유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난에도 견딜 수 있도록 다중 방호벽을 구축해놓고 있다. 따라서 테러리스트가 원자력발전소 침투에 성공하더라도 시설을 파괴해 방사능을 누출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원자력 선진국인 미국은 원자력발전소가 비행기를 쓰는 자살테러 공격에 취약하며, 원자로 격납용기가 항공기 충돌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2007년 미국 원자력에너지협회는 원자력시설에 대한 항공기 충돌 사고 시 파괴력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미국 전력연구소 주관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9·11테러 당시 펜타곤 건물에 충돌한 민항기와 동일한 기종이 같은 속도로 원전에 충돌한다는 조건하에 진행됐다. 그 결과 비행기의 충돌로 격납용기는 붕괴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됐다. 쌍둥이 빌딩을 붕괴시킨 비행기의 속도(시속 약 800㎞)가 아닌 펜타곤에 충돌한 민항기의 속도(시속 약 480㎞)로 실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시속 400㎞는 이·착륙할 때의 속도이고, 800㎞는 순항 비행 중일 때의 속도다. 따라서 순항 속도로 날아오는 민항기가 충돌하면 격납용기는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되고 나온 핵연료를 가리킨다. 이것은 핵분열성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높은 방사능과 발열성을 띤다. 사용후핵연료는 수조에 넣어 저장한다.
이 저장고는 격납용기 밖에 있기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높은 공격 형태로 테러리스트들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저장고에 차 있는 물을 빼내 사용후핵연료를 과열시켜 화재가 발생하면 방사능을 유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원자로를 공격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핵연료의 과열, 즉 멜트다운(Melt Down, 노심 용융)이 발생하는 경우다. 녹아내린 핵연료의 온도가 1090∼2760℃에 이르면 핵연료를 담고 있는 연료봉이 녹고, 계속 그런 상태로 있으면 핵연료도 녹아내린다.
초(超)고열 상태로 녹아내린 핵연료는 원자로 안의 물을 모두 증발시키고 원자로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그리고 강력한 수소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를 훼손시킬 수 있다. 격납용기가 훼손되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서 보듯 방사능을 품은 증기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이들은 바람과 기류를 타고 이동하니, 반경 수백㎞ 지역이 방사능 피해를 본다.
테러조직, 핵무기 제조 가능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한 전례는 없다. 그러나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 사례는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가 그것이다. 1986년 4월 29일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파손사고로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되어 31명이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테러조직이 조직적으로 원자력시설을 파괴한다면 그 피해는 체르노빌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핵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알카에다와 같이 조직화되고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테러조직이 핵 과학자들을 고용한다면 핵 폭발물 제조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경우 제조 가능한 핵무기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건 타입(Gun-type)의 핵무기다. 이것은 총신과 비슷한 모양의 관 양쪽에 대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넣고, 권총을 쏘듯이 한 쪽을 격발시켜 그곳의 고농축우라늄을 반대편 고농축우라늄으로 날아가게 한다. 날아간 고농축우라늄이 반대편에 있는 고농축우라늄에 충돌해 한 몸이 되면 바로 핵분열이 일어난다.
둘째는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유형이다. 이 폭탄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은 무기급 플루토늄(weapons-grade plutonium)으로 제조한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쪼개서 공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공 밖에 다량의 화약을 배치해 폭발시키면, 쪼개놓은 플루토늄은 안으로 몰려들어 한 몸이 된다. 그 순간 강력한 핵분열이 일어난다.
급조 핵 폭발물은 일반적인 핵무기와 비교해서 크기가 더 작을 수도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무게는 약 4t이고, 길이는 3m 정도였다. 냉전 당시 만들어진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핵폭탄 B-53은 길이가 3.8m, 지름이 1.27m, 무게는 약 4t이었다. 사제 핵 폭발물은 차량이나 보트, 경비행기에 실릴 수 있어야 하니 이보다 더 작게 제조할 것이다.
핵무기는 방사선과 열·폭풍으로 파괴효과를 일으킨다. 핵분열로 방출되는 방사능 입자는 넓은 지역으로 퍼져 오랫동안 방사선을 방출한다. 파괴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배제하고 저고도에서 1메가톤급 핵폭탄을 폭발시키면 반경 9.6㎞ 이내에 있는 목조건물, 6.4㎞ 이내에 있는 벽돌건물, 4.8㎞ 이내에 있는 콘크리트와 석조 건물은 파괴된다.
전문가들은 급조 핵 폭발물은 이렇게 큰 위력은 발휘하지 못하지만 10kt급 핵무기 정도의 위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과 비슷한 수준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이 마련한 급조 핵 폭발물은 지상에서 폭발하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보다는 피해 범위가 좁다고 본다.
파키스탄이 전복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자폭탄. 리틀보이란 별명을 가진 이 폭탄은 ‘건 타입’으로 폭발한다.
테러리스트들이 핵물질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는 소련 붕괴 이후 폐쇄된 무기 실험소와 저장소를 꼽았다. 러시아는 그간 약 1만 기 이상의 핵무기를 해체했지만, 일부는 기록상으로만 해체됐을 것이다. 미국 국립정보회의가 미국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1992년부터 1999년 사이 최소한 4건의 무기급 및 무기화 가능성을 가진 핵물질 절도 사건이 러시아의 연구소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테러조직에 은밀하게 핵물질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파키스탄을 꼽는다.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에서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정부 전복이 성공하면, 파키스탄은 테러조직에게 핵물질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03년 파키스탄 정부는 2명의 핵과학자를 알카에다 조직과 연루된 혐의로 체포했다. 파키스탄 정부의 당국자는 체포된 과학자들이 핵물질을 알카에다에 넘기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는 테러공격이 성공할 경우 대규모의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도의 보안태세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경비를 민간경비업체에 맡기고 있다. 미국 원자력발전소의 절반 이상을 경비하고 있는 와켄허트 서비스(Wackenhut Services)에서 근무했던 케시 데이비슨은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대테러 모의훈련을 실시했는데, 대부분 테러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심각한 것은 허술한 보안망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도 거의 같은 수준이다. 스페인에서는 이미 바스크 분리주의 테러조직이 원자력발전소에 침투해 폭탄 테러와 무장공격을 감행했다.
우리나라도 원전시설의 보안대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11년 10월 5일 소형 선박을 탄 중국인 밀입국자들이 국가 1급 보안시설인 영광원자력발전소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가 체포된 적이 있다. 이들은 전혀 제지를 받지 않고 발전소 인근까지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들이 테러리스트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핵 시설 안전대책 강화해야
원자력발전소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연구소 같은 방사능물질을 다루는 곳에 대한 보안 강화도 시급하다. 한국에서 방사 성물질을 다루는 방사능 기기를 보유한 병원은 270여 개로 알려져 있다. 병원은 다중 이용시설이기에 완벽한 방호시설을 갖추기 어렵다. 많은 병원이 방사능 기기를 다루고 있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시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핵·방사능 테러를 자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사성물질을 획득하고 무기를 제조해야 한다. 방사성물질은 해외에서 밀반입할 수도 있고 국내에서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테러용 무기로 제조하고, 이를 목표 장소로 운반해야 한다. 핵·방사성물질은 ‘국내 반입’ ‘도로를 이용한 운반’ ‘목표 건물로의 유입’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따라서 단계마다 차단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로의 반입을 막기 위해 공항과 항만의 검색 시스템을 강화하고, 교통 요충지에는 검색 시스템을 설치하고 이동식 검색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주요 건물의 출입구에도 검색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9개의 국제공항과 6개의 국내 공항 그리고 28개의 항만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승객과 수화물에 대한 방사선 검사는 수행되지 않는다. 국제 무역의 90% 이상이 해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국내 28개의 항만 가운데 방사선 탐지기를 보유한 곳은 인천항과 부산항뿐이다.
한국 내의 방사능 검색장비 관리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2011년 8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은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한국이 보유한 4대의 이동식 환경감시차량 중 2대가 고장 난 상태이고, 울진원자력본부 소속의 차량은 휴대형 감마핵종 검출기뿐만 아니라 광대역 감마 감시기, 삼중수소 측정 장치가 모두 고장 났음을 밝혀냈다. 이처럼 장비가 고장 나 있음에도 제대로 수리하지 않은 채 27차례나 방사능 측정 작업에 나선 사실도 확인했다.
테러의 안전지대는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북한에 의한 대남 테러 가능성은 상존해왔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적화(赤化)통일을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대남테러전술을 구사해왔다. 북한의 테러는 국가기관이 기획하고, 자행하는 국가주도형 테러(State Lead Terrorism)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 테러조직의 테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가 동원되고, 그 파괴력도 엄청나 커다란 안보위협이 된다.
한국은 핵 테러 안전지대 아니다
북한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상승할 때와 북한 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남 테러를 자행한다. 1987년의 대한항공기 공중폭파 테러가 전자의 경우이고, 천안함 격침은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다. 북한은 1950년대 말 항공기 납치를 시작으로 지상·해상·공중·해외에서 모두 테러를 자행했다. 이러한 테러를 통해 전쟁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겠다”고 예고한 해다. 김정일 사후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김정은 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올해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른다. 중국에선 4세대인 후진타오에 이은 5세대 지도부의 등장이 본격화된다. 국내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의 테러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도 “북한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직접 공격을 가하는 위험하고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며 북한에 의한 직접 테러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테러 형태로는 전통적 방식의 테러 이외에도 화생방 테러와 원자력 관련 시설에 대한 폭파테러 등을 전망해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테러를 기도한 적이 있다. 1983년 7월 29일 북한 공작원들은 선박을 이용해 월성지역 침투를 기도했다. 그들의 목적은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사보타주였다. 이 기습이 성공했다면 한국은 큰 해를 입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테러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해온 불량국가다. 북한은 자행한 수많은 테러에 대해 공식적인 인정은 물론이고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테러정책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한 적도 없다. 북한은 화생방무기와 특수공작요원을 양성해놓고 언제든지 테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수정할 의사도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 테러를 우리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내부 갈등을 외부로 돌리거나, 김정은을 위한 세습체제를 공고화해야 할 때 그 돌파구로 대남테러를 획책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핵 테러로 인한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핵안보정상회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 특별연설을 계기로 창설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탈냉전, 특히 9·11테러 이후 핵테러의 위협이 점증하자 “핵 테러 대처를 위해 향후 4년 내에 전 세계 모든 취약한 핵물질을 안전하게 방호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됐다.
핵 테러 대비 국제공조 강화해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주요 47개국 정상들과 유엔·국제원자력기구(IAEA)·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해 구체적인 핵 안보 협력을 위한 ‘작업계획(Work Plan)’ 50개가 합의정상선언문인 ‘워싱턴 코뮤니케’를 통해 발표됐다. 여기에는 고농축우라늄의 최소화, 핵안보 관련 입법 조치와 국제협약 가입, 핵 테러 방지를 위한 양자 차원의 협력 등이 포함됐다.
3월 서울에서 두 번째 회의가 개최된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안보에 관한 실천적 비전과 이행 조치 방향을 제시하고 선언을 넘어 실천의 단계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논의하게 될 주요 의제는 핵 테러 위협의 중심이 되는 고농축우라늄, 플루토늄 등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불법거래 방지를 위한 실전 조치와 국제협력 방안, 일본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현안으로 대두된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의 안전관리 방안, 원료 취득과 폭탄 제조가 용이해 핵테러보다 발생 가능성이 훨씬 높은 방사성물질에 대한 국가별 조치와 방호대책 마련, 국제 협력 강구 등이다.
핵 테러와 관련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핵 테러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 테러가 발생하면 정치, 경제, 사회, 심리적인 후유증이 엄청날 것이다. 핵 테러는 특정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기대는 크다고 할 것이다.
|
테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왔다. 역사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과거에도 테러의 수단으로는,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 속에 등장한 첨단 무기들이 사용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마 핵 테러가 발생하랴…’ 할 때 핵 테러가 일어난다.
핵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핵 테러에 대한 불감증을 경계하고,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1% 이하의 안보위협 가능성’에도 대비해나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