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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그녀가 촛불시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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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살겠다’

‘물론 살면서 (어쩌다) 신의 은총(?)으로 두 눈이 촉촉해지고 약간 목이 메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일종의 신경증적 기능장애이거나 생리적 불구라고도 할 만한 증상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냉혈한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달라. 슬플 때 마음껏 우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나에겐 더 고통스러운 내면의 울음이 있었다. 내 글이 곧 내 눈물인 경우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사와 글을 ‘목 놓아 우는 통곡’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을 들으니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정신이 번쩍 난다. 하기야 그녀는 총탄이 날아드는 전쟁과 혁명 현장이 주 취재영역이었고, 일반 사람에게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할 때도 그들의 권위에 대한 냉소를 무기 삼아 뜨거운 불덩이들을 쏟아내듯 펜으로 옮겨 적었으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고도 남는다.

“(내 글은)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들에 대한 통곡이나 마찬가지다.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이란 대통령, 황제 같은 존경받을 만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물론 타인을 변화시킬 용기를 갖지 못한 자들을 일컫는다.”

오리아나는 열다섯 어린 나이 때 직접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가 발각될까 두려워 씹어 삼키려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청소년기의 경험들이 오리아나로 하여금 평생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평생 ‘글’을 무기 삼아 독재와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을 지켰다. 책과 기사를 통해 전쟁 때 겪었던 많은 일을 기억하면서 전쟁반대론을 펼쳤다.

그는 어린 나이에 전체주의적인 정권과 점령군에 맞선 용감한 사람들과 작가 미술가 역사가 교수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어른이 되면 ‘양심에 따라 살겠다’고 결심한다. 한편으로는 저항운동을 억압하는 자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지위를 이용하는 권력자들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으면서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지위나 직업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자각한다. 기자가 된 후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개인주의에 대한 애정을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으면서, 부패에 무릎 꿇은 권력자들을 고집스럽게 혐오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드디어 기자가 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생계가 안 된다’는 부모의 만류로 피렌체 의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기계적인 암기 위주인 의학공부는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추론과 비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고민이 깊어갈 무렵, 갑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녀는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하고 만다. 그리고 과감하게 신문사 문을 두드린다.

열여섯 어린 나이였다. 당시 피렌체의 유력지 ‘나지오네 디 피렌체’를 찾아간다는 게 그만 이름도 없는 ‘일 마티노 델리탈리아 센트랄레’라는 신문사를 찾아갈 정도로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시기였다.

그는 ‘열일곱’이라고 나이를 속인 뒤 무작정 편집장을 찾아가 “리포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문학적 저널리즘의 지평을 연 오리아나 팔라치.

편집장은 어린 그를 미심쩍어 하면서도 그 당돌함을 높이 사 기회를 주기로 한다. 새로 문을 연 나이트클럽 취재를 맡기며 12시간 안에 기사를 써내라고 한 것. 처음 들어가본 나이트클럽에서 작성한 기사였건만 그는 천재 저널리스트로서의 싹을 보였다. 간단한 스케치 기사에 전쟁 후 여름을 맞은 이탈리아 사회의 단면을 끼워 넣은 것이다. 결국 그는 경찰과 병원담당(지금말로 하면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채용된다.

오리아나는 초창기 남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 풍경을 그 특유의 시선으로 글에 담아 호평을 받았다. 낡은 수녀원 건물에 대한 기사를 쓸 때는 뜰의 벚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녀원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고, 피렌체의 비둘기 기사에서는 한때 번영을 누리다가 몰락한 피렌체의 역사에 비둘기의 운명을 빗댔다. 오리아나 특유의 문학적 저널리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의 기사는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었다. 생생한 아이디어, 문화적인 사안에 대한 지적인 논의, 예술성이 살아 숨쉬었다. 그는 한마디로 기사를 소설의 반열로 올린 문학적인 저널리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을 보고 쓰는 단순한 형태에 그친 게 아니라 운치와 인간미를 더해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글쓰기는 객관적 사실의 요약이 아니라 철저히 주관적 관찰에 의한 글쓰기였다. 기자 초년병 시절,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모습을 묘사한 다음 글에서 잘 묻어난다.

‘세르지오 반지니는 법정 바로 옆 감방에 있었다. 그는 격자무늬 상의와 회색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는 신문을 읽고 담배를 피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인 긴 의자에는 차(茶)가 가득 담긴 보온병이 있었다. 내가 작은 창가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그는 군인처럼 기다란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신문과 담배를 던져버리고 창살에 얼굴을 갖다댔다. 묘하게 금욕적(禁慾的)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의 뺨은 홀쭉했고 눈은 매우 검었으며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짧은 검은색 턱수염이 귓불이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냥 얼굴이 아니라 아주 긴 쉼표 같았다. 그리고 그 중간부분에 표정이 있었다.’

단순한 묘사를 하더라도 그녀가 말이나 사물에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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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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