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선화예고와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1990년대 말까지 국내외 무대에서 활약했다. 결혼하면서 무대를 떠난 그가 이번 음악회를 준비한 건 의사인 남편의 권유 때문.
“한국 가곡이 참 아름다운데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음악계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겠더군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한국 가곡을 정말 많이 배웠는데, 요즘 학생들은 우리 가곡을 거의 알지 못해요. 이러다간 다음 세대에 우리 가곡이 영영 잊히겠구나 싶었어요.”
마침 선화보컬소사이어티에서도 “뜻 깊은 일을 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회원 20여 명이 이번 공연에 뜻을 모았다. 자금은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그렇다 보니 시리즈를 이어가기에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박씨를 초조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저희가 조명하려는 작곡가 분들이 워낙 고령이라 건강이 좋지 않아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박씨는 다음 작업도 생각해뒀다. 우리 가곡을 외국어로 번역해 내한 공연을 여는 외국인 성악가들에게 ‘앙코르송’으로 부르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가곡이 있고, 이렇게 훌륭한 작곡가가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