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영원한 策士’, 윤여준 전 의원의 ‘MB 리더십’ 진단

“‘상식’ 원하는 국민, 쓸데없이 머리 써 일 만드는 정권”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8-09-04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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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통령,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한다’고 했어야”
    •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이미 오래전 내정된 사람”
    • “이 대통령은 국민과 시대의 요구를 통찰하지 못해”
    • ‘만기총람(萬機總攬)’형, CEO식 인사가 리더십 난조의 핵심
    • “청와대, 이태규 전 연설기록비서관 처음엔 그 자리도 안 주려 했다”
    • “대통령과 실장, 수석진은 배워가며 할 자리가 아니다”
    • “‘대통령이 정치 안 한다’는 건 참 우스운 말, 국정행위 자체가 정치행위”
    • “정무는 대통령의 ‘對국민 센서’, 모든 걸 살피고 대안까지 내야”
    • “한국의 보수는 영국 보수당의 혁신을 배워라!”
    • “KBS, 낭비·비합리적 요소 반드시 고쳐야”
    • “국민 신뢰 회복하려면 말 바꾸지 말고 언행부터 일치시켜야”
    ‘영원한 策士’, 윤여준 전 의원의 ‘MB 리더십’ 진단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책사’라는 수식어를 부담스러워한다. ‘어두운 지혜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듣기에 싫단다. 기획통, 전략가, 장자방, 제갈량이란 별칭도 모두 언론의 과장이 만들어낸 허명이라는 것. “그런 식견도 없고 경험도 없다”며 자신은 다만 ‘상식인’이자 ‘생활 정치인’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윤여준(69) 전 의원. 개인적인 호불호에 관계없이 그는 정가와 언론에서 이미 ‘책사’ ‘전략가’로 통한 지 오래다. 1966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는 각 대사관 공보관, 국회의장 공보관,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 의전비서관, 공보수석, 정무장관 보좌관(차관급), 안기부장 특보, 환경부 장관을 거치며 20여 년간 여론과 맞닿은 정무직에서 국정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이회창 총재의 정무특보가 된 후, 2000년 16대 총선에선 기획단장을 맡아 개혁 공천을 이끌었다. 당시 민정계 핵심이던 김윤환(당시 5선), 이기택(당시 부총재), 신상우(당시 국회부의장)씨가 공천에서 낙마했다.

    2003년 그는 비례대표 출신 초선의원임에도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선대위 부본부장을 맡아 거세게 몰아친 탄핵 역풍을 ‘무조건적 사과’와 ‘거여(巨與) 견제론’으로 돌파했다. 총선이 끝나자 그는 바로 국회의원 옷을 벗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정치 야인’이 된 이후에도 그의 정치적 행보는 계속됐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것.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 나선 양대 후보로부터 모두 ‘러브 콜’을 받았으나 사양한 후,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자 그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이명박 정권에 합류하지 않았다. 지방선거 이후 그는 정치 관련 직함을 갖지 않은 채 인터넷에 ‘윤여준의 정치카페’란 사이트를 만들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활정치’를 설파했다.

    하지만 지금도 정권과 정책에 대한 그의 한마디는 언론과 정가의 주목을 받는다. 칠순 나이에도 그의 글과 말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조만간 정권의 핵심 자리에 오를 ‘잠룡(潛龍)’이라는 설도 끊이지 않는다. 올 6월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청와대대통령실의 물갈이 인사가 있을 당시 그는 대통령실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이미 리더십 난조 경고

    지금껏 정책과 선거에 관련한 그의 분석과 예측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다. 지난 대선 당시 그는 이명박 후보 캠프에 “대운하는 공격받긴 쉬운 반면, 국민 설득은 어려워 선거이슈로 부적당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는데, 1년이 안 돼 그의 말은 사실이 됐다. 그는 17대 대선이 끝난 지난해 12월 말 자신의 인터넷 정치카페에 ‘역설의 축복’ ‘CEO의 시대’ ‘역리의 정치’라는 글을 썼다. 모두 지난 정권의 실패를 빗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경계해야 할 사안과 반드시 신경 써야 할 대목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는 그 글들을 통해 “권력의 오만과 독선, 독식이야말로 ‘영광의 숨은 독’”이라며 “한미 FTA와 노동문제를 둘러싼 갈등 해소 등의 어려운 과제를 높은 수준의 정책능력과 정치적 지혜, 국정수행체제로 돌파해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또 이를 위해선 “대통령이 마취와 연장, 집중이라는 권력의 속성과 싸워야 하고, 겸허히 몸을 낮춰 국민을 섬기고 소통해야 하며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러면 “위대한 리더십의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에게 닥쳐올 리더십의 난조를 예견하고 경고한 셈. 그로부터 7개월 후 그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섰다. 지난 7월16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이 주최한 ‘위기의 한국, 진단과 처방’ 세미나에서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준 리더십은 시대적 변화와는 동떨어진 독주형 리더십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대통령의 리더십 사이에 엄청난 시차가 있다”고 말해 언론과 정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날 ‘통찰력과 권력운영의 상관관계’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그는 “리더십의 성패는 권위와 신뢰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후 현재 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권위와 신뢰를 잃은 요인을 △통찰력의 부족 △비전의 부재 △정치에 대한 몰이해 △지지기반에 대한 경시 △얄팍한 홍보 △언행관리의 실패로 분석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요인으로 인사 독식에 의한 권력 사유화를 지목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보수진영 ‘책사’의 입에서 이런 독설이, 그것도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흘러나오자 언론뿐 아니라 정가에도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정을 더 잘 운영하라는 충고이자 고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윤 전 의원은 자신의 발언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와중인 7월21일 한국을 떴다. 그 후 2주일간 연락이 끊겼다. 그가 다시 돌아온 시점은 8월4일. 운 좋게도 공항에서 나오는 그와 전화가 연결돼 다음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여의도 한나라당사 인근 (주)한국지방발전연구회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시차적응이 안 된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협상하라고 했다 욕만 먹어

    ▼ 세미나를 끝낸 후 피하듯 한국을 떠났는데요.

    “그런 건 아니고요. 부부끼리 칠순여행 다녀온 겁니다. 아이들이 지중해 크루즈를 보내주더군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12일간 코스인데 지중해의 풍광 좋은 항구는 거의 다 들르는 코스입니다.”

    ▼ 많이 바쁜 모양입니다. 지난해 만든 인터넷 정치카페가 일시 폐쇄됐던데.

    “예 그랬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중단했습니다. 이름 걸고 쓴 글에 대한 책임의식 때문이랄까요. 매일 다른 일에 쫓기다, 신문기자 마감에 닥쳐 기사 쓰듯 하니까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일이 너무 많아요. 한국저작·인격권협회 대표(이사장)도 졸라서 맡았더니 정신이 없고, 지금 있는 한국지방발전연구회는 컨설팅 펌이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 환경단체, 한반도평화 단체 등 봉사하는 일들도 만만치가 않아요. 만나는 분마다 그거 왜 빨리 다시 안 하느냐고 그래서 지금 어쩔까 고민 중입니다.”

    ▼ 세미나 때 “쇠고기 협상이 거리의 정치를 부활시켰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너무 서두른 면이 있지 않나요.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문제(쇠고기 협상)가 불거지니까 그렇게(서두르게) 됐겠죠. 전 대통령이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어떤 대통령도 다수 국민의 요구를 거역할 권리가 없어요. 국제법적으로나 국제적 관행으로 (재협상이) 말이 안 된다는 건 대통령 말이 맞아요. 그러나 국민이 그걸 몰라서 재협상을 하라고 요구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러면 그것을 일단 받는 게 맞죠. 대통령은 ‘국제법상 이런 문제가 있지만 다수 국민이 요구하는 거니까 미국하고 다시 한번 교섭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죠. 결국 추가협상을 했잖습니까. 그게 곧 재협상이 아니고 뭐죠? 그러면 그 과정에서 흥분도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면서 설득에 나설 수 있는 거죠. 국민의 분노가 한창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 정면으로 받아버리니까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요. 그래서 얻은 게 뭡니까?”

    윤 전 의원은 지난 6월 중순 자신이 대통령실장으로 유력하다는 언론보도가 빗발칠 당시, 한 인터넷언론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재협상 시도해보겠다’고 했어야 한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사심이 있다”고 정부를 쏘아붙였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그가 이명박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둥, 또 다른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는 둥 말이 많았다.

    ▼ 정부 여당에서 가만히 있던가요.

    “그 일 때문에 욕 많이 먹었어요. 무책임하게 재협상하라고 그랬다고. 그래서 누가 무책임한지 한번 두고 보자고 그랬어요. 당과 정부에 있는 분들이 전화를 여러 통 걸어와서 ‘우리는 죽어라고 (대통령실장으로) 밀고 있는데 본인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막 화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는 참 미안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어느 자리에 앉을 목적으로 소신을 감춘 일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策士’, 윤여준 전 의원의 ‘MB 리더십’ 진단

    지난 6월7일 광화문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이날부터 정권퇴진론이 등장했다.

    ▼ 대통령실장 물망에 오른 것은 사실입니까.

    “기자들 전화가 오길래 ‘그런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물리적 근거를 대라면 할 말은 없었지만 직관이 그랬어요. 결국 그렇게 됐잖습니까.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지금 되신 분이 내정돼 있었더군요. 전 실장과 무척 친했고, 오래전부터 대통령께 이러저러한 조언을 하시던 분이었답니다.”

    ▼ 세미나 파장이 컸습니다. 청와대에서 입장 발표까지 했는데요.

    “일반적인 반응이지요. 자기들 잘못한 거 잘못했다는데 ‘우리 잘했다’ 그럴 사람은 없을 테니까.”

    ▼ 지난해 말 정치카페에 쓴 글이 현 상황을 예언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될지 알고 충고하신 겁니까.

    “충고라기보다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다 할 수 있는 얘기지요. 제가 남이 말하지 않는 말을 한 건 아니지요.”

    ‘응징심리’가 만든 사상누각 지지율

    ▼ 정치카페 글에서 이명박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시대정신’의 변화라고 했습니다. 그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는데 4~5개월 만에 시대정신이 또 변한 건가요?

    “시대정신은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걸 수용하지 않았죠. 지난번 대선을 오죽하면 ‘묻지마 선거’라고 했겠습니까. 국민은 지난 집권세력에 대한 ‘응징심리’로 이 대통령을 찍은 거죠. 그런데 이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을 맡은 후에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통찰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초기부터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된 거죠.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아니에요?”

    ▼ 이번 세미나에서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 이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는 맞는데 ‘압도적 지지’를 받은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뭡니까.

    “2위와 표차가 많이 났으니 압도적 승리가 맞죠. 그런데 그게 산술적으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는 아니라는 거죠. 요즘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 등장한 정권이 별로 없어요. 다들 기반이 취약한 정권이라고요. 지지기반이 취약한 정권은 등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될 게 지지기반의 확대 안정입니다. 그래야 국정수행이 원활하니까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도 그랬지만 이 대통령도 지지기반이 오히려 축소됐잖아요. 민심이 이반하는 바람에. 그게 국정을 흔든 거고, 그 때문에 이렇게 어려워진 거죠.”

    윤 전 의원은 이 대통령의 지지기반 붕괴를 이렇게 분석했다.

    ‘영원한 策士’, 윤여준 전 의원의 ‘MB 리더십’ 진단

    2004년 4월16일 한나라당 천막당사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는 윤여준 전 의원.

    “이 정권은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63%)을 보인 가운데 총유권자 대비 낮은 득표율(약 30%대)로 탄생했죠. 또 YS나 DJ 같은 확고한 지지기반도 없고, 노 전 대통령처럼 충성심 강한 이념적 지지 세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여기다 대통령직인수위로부터 시작된 실용노선, 경제 악화는 이해관계에 따른 지지기반의 붕괴를 초래했죠. 총선 과정에서 이명박 세력의 ‘독식’은 분노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지지층의 추가 이탈을 초래했습니다.”

    ▼ 대통령의 리더십 난조의 핵심 원인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이 인사문제를 제일 많이 이야기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과거 청와대에서 일할 때의 경험에 비춰 봐도 우리 국민이 가장 예민해 하는 게 인사입니다. 깜짝 놀랄 만큼 그래요. 어느 한 사람의 인사 때문에 민심이 멀어지기도 하고 모아지기도 하는 걸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때 느꼈죠. 아, 인사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말 이걸 조심해야 한다는 걸 여러 번 느꼈습니다. 초기에 청와대와 내각 구성에서 국민의 생각과 워낙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바람에 거기서부터 일이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청와대 인사가 어떻게 잘못됐다는 얘깁니까.

    “청와대 내부 사정은 잘 모르니까 뭐라고 얘기하기가…. 인사 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분야별로 책임자를 두고 권한을 줘서 책임지도록 하면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기총람(萬機總攬·삼국지에서 조조가 국정의 모든 일을 혼자 결정했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국민과 동떨어진 인사

    ▼ 이 대통령이 만기총람형이라는 뜻인지요? 혹 CEO 출신이라 더 그런 것 아닙니까?

    “그렇죠. 기업과 국가는 다릅니다. 기업은 단순하지요. 국정은 규모가 방대하고 다양합니다. 회사는 이익 창출이라는 목적 하나로 CEO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죠. 근데 한국사회는 굉장히 다원화된 사회거든요. 다원화된 이해와 다원화된 의견이 계속 부딪치면서 갈등하고 있죠. 이를 조화롭게 수용하고 조절하는 게 국정 최고책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대통령은) 기업 CEO같이 하면 안 되죠. 근본적으로 다르니까요.”

    윤 전 의원은 세미나에서 ‘만사형통’ ‘고소영’ 같은 말이 나오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권력 사유화’라고 일갈했다. 그러고선 “인연 위주의 인사가 민심이반에 끼칠 영향이 얼마나 클지 이 대통령도 잘 알 것”이라며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爲政在於得人’, 즉 ‘정사를 함이란 곧 사람을 얻는 것’이란 뜻이다. 우연이랄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인사 첫 불협화음이 윤 전 의원과 관련이 깊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며 사표를 던진 이태규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그의 보좌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 이 비서관이 왜 그만두었는지 들으신 게 있는지요.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당초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어느 자리에 내정돼 있던 게 막판에 아무런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상한 자리로 바뀌었다는군요. 그나마 대통령 연설기록비서관 자리도 안 주려고 그랬다나 봐요. 자기들도 그 사람이 선거 때 기여했던 게 있으니까 마지못해 자리를 줬는데, 그게 소위 물먹이는 자리를 줬다 이런 거죠. 주변의 평가도 그렇던데요.”

    정무는 對국민 센서

    ▼ 대선 공신들의 인사 때문에 말이 많았습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런데 공신을 인사에서 완전히 배제할 순 없잖습니까.

    “정권 초기엔 외직 말단에 집어넣었어야 해요. 정부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료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 익히게 했어야지요. 한 2년 하면 많이 익힐 수 있잖아요.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나서부터는 외직에 있던 측근들을 한 사람씩 내직으로 불러오면 됩니다. 그때는 많이 훈련됐을 테니까. 그런데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처음부터 그렇게 내직에다가 두고 중책을 줘버리면 실수를 하고 사고가 생겨요. 일이 잘못되는 거죠. 본인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경험 부족이 문젭니다.”

    ▼ 이 대통령의 청와대가 노무현 정권 때처럼 아마추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아마추어가 꼭 나쁜 건 아니지요. 아마추어가 꼭 경험 없고 서툰 걸 의미하진 않아요. 직접적이고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바둑이나 골프를 봐도 그렇고. 문제는 대통령 자리가 지금 헌법상 두 번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나 처음 해보죠. 그래서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청와대의 대통령실장이나 수석진은 배워가는 사람이 맡을 자리가 아닙니다. 대통령도 그런데 실장이나 수석도 처음 하는 사람들로 채우면 뭘 어떻게 할지를 모르죠. 또 제3자일 때는 다 보여도 자기가 맡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장기나 바둑 훈수 잘 두는 사람이 선수로 뛰면 수가 안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결국 대통령도 비서관진도 국정을 너무 모른다는 얘기인데요. 일전에 세미나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몰이해’를 리더십 위기의 한 요인으로 꼽으셨습니다.

    “대통령책임제하에서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다 정치예요. 대통령이 ‘나는 정치 안 한다’라고 했다는데 참 그건 우스운 말이지요. 국정 최고책임자가 ‘정치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지요. 국정행위 자체가 다 정치행위인데. 그 양반이 생각하는 정치는 협의의 정치인가 봐요. 정당과 국회의원이 하는 정치 말이에요. 그런데 대통령직 자체가 정치의 최고 정점이거든요. 경제든 외교든 사회든 그 어떤 분야든 어젠다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얻고 정책을 추진하고 피드백하는 그 과정이 바로 정치적 과정(political process)이거든요. 어떻게 대통령이 정치와 분리됩니까. 대통령이 국민 개개인을 설득할 순 없죠. 정당을 설득해야 국회가 설득되고 그런 다음에 언론을 통해 국민과 대화를 해야지요.”

    ▼ 대통령의 정치와 관련해 청와대 정무라인이 전혀 작동을 안 한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청와대 정무 기능 얘길 하기에 제가 그랬어요. 지금 여권에서 얘기하는 정무 기능 얘기를 들어보면 청와대와 당, 청와대와 국회 간의 관계를 놓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건 청와대 정무 기능의 일부분일 뿐이다, 민심 동향과 국정 전반을 살펴서 어느 분야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 늘 살피는 거다, 그런 후에 이 분야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이런 것이고 지금 국민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선하려면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런 모두를 대통령에게 미리 예고하는 게 정무 기능의 핵심이라고 말입니다. 전체를 봐야 해요. 민심이 움직이면 정당이 움직이고 그러면 국회가 움직이는 거잖아요. 결국 동전의 양면이에요. 민심과 정당정치라는 게. 그러니까 예민하게 살펴서 늘 센서 기능을 해야 됩니다.”

    중시중비(衆是衆非)를 물리칠 힘

    윤 전 의원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큰 이유 중 하나를 통찰력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통찰력을 “전체를 환하게 보되 본질을 꿰뚫고 변화를 앞서 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세미나에서 “한국사회는 지난 10여 년 사이 정보화와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크게 변화했고, 국민의식도 빠르게 진화했다. 그 결과로 광장세력, 집단지성, 사이버 시민세력이 등장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런 시대의 변화를 보는 눈이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약간의 통찰력만 가졌어도 순수한 시민세력까지 언제라도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할 잠재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보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일방적 정책결정과 국민과의 소통부족은 국민에게 ‘오만’으로 비쳤고,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거리의 정치, 광장의 정치를 부활시키고 말았죠.”

    ▼ 대통령이 정말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사실 가만히 보면 대통령 자신의 통찰력이 부족한 건지 주위의 뭐가 잘못된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 통찰력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 얘기는…. 여러분이 한 말 아닙니까. 그게 뭐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 말씀을 아주 아끼시는군요. 윤 전 의원님은 말씀하실 때 늘 그렇게 정치적 파장을 먼저 계산하십니까.

    “절대 아니에요. 청와대에 오래 있으면서 그렇게 훈련된 건 사실이지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대변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 어휘 한마디, 토씨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해요. 그렇지만 저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생리적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속을 못 감추고 말을 에둘러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탈입니다. 손해를 많이 봤어요. 저처럼 단순한 상식인이 어디 있습니까.”

    ▼ 평소에 ‘상식적’ ‘상식인’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는데, 지금 이 대통령이나 정부가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저는 늘 하는 얘기가, 국민이 대통령이나 정부한테 엄청난 거 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국민의 평균적인 상식에 맞으면 된다고요. 근데 왜 그걸 못 맞추느냐는 거예요. 다수 국민이 누구입니까? 그냥 상식인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아니냐고요. 그러면 다수 국민이 그런 상식인이면, 평균적인 상식에 맞으면 다수 국민이 이해해줄 거 아니겠어요? 근데 왜 비범하게 하느냐는 거예요, 평범하게 하면 상식인인 국민이 이해해줄 걸. 왜 자꾸 머리 쓰고 쓸데없이.”

    ▼ 유머감각이 좋으시군요.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머리를 쓰지도 말아야겠군요.

    “(웃음) 평범하게 하면 됩니다. 유머가 아니라 제 생각이 그렇습니다.”

    ▼ 결국 윤 전 의원 말씀을 들으면 여론을 추수하는 대통령이 되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판단을 잘 해야지요. 지도자가 늘 여론만 따라간다면 지도자가 왜 필요해요? 여론만 있으면 되지. 옛말에도 지도자는 중시(衆是), 중비(衆非)를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중이 그렇다 할 때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되고 대중이 아니다 그럴 때도 그렇다 할 수 있는, 그게 지도자라는 것이지요. 판단을 잘 해야 돼요. 그런 걸 판단하는 게 통찰력이죠.”

    ‘영원한 策士’, 윤여준 전 의원의 ‘MB 리더십’ 진단

    기자의 엉뚱한 질문에 박장대소하는 윤여준 전 의원.

    대통령의 통찰력과 관련해 윤 전 의원은 여담이라며 자신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를 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지만 그 말의 칼날은 청와대의 수석진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세미나에서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몰이해를 말하며 “정치를 책략으로, ‘정무’를 권모술수와 밀실정치로 간주하는 구시대적 인식은 자칫 이 대통령의 정치능력 전체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청와대에 들려주고픈 경험담

    “1998년 8월30일에 이회창 의원이 한나라당 총재가 되셨지요. 제가 1년 가까이 그림자처럼 보좌하고 다닐 때였죠. 그랬더니 제게 ‘책사’라는 호칭이 붙었죠. 제가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책략이라는 건 정치가 소수 권력 엘리트들 사이의 게임일 때 난무했다, 지금은 국민이 구경꾼이 아니고 주권자다, 그런데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책략을 쓰나, 통용되지도 않으려니와 윤리적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나는 아주 평범한 상식인이다, 여의도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다, 이렇게요. 그랬더니 기자들이 상식인이 무슨 이렇게 중요한 직책을 맡느냐고 난리예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권력자 주변에는 늘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대통령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청와대 들어가 석 달이 지나면 현실로부터 멀어진다, 주변이 나쁘고 좋고 관계없이 메커니즘이 그렇다, 이회창 총재도 현재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제1당의 총재이자 둘째가는 권력자다, 그럼 이 양반도 자칫하면 메커니즘 때문에 현실로부터 멀어지기 쉽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뭐냐, 상식 있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게 뭔지, 요구하는 게 뭔지, 이걸 늘 살펴서 그걸 총재께 전달하는 일이다, 다수 국민은 지금 이걸 원합니다, 이걸 요구합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걸 총재께 부단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말이에요. 총재가 다수 국민의 평균적인 생각, 즉 상식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당시 제가 맡은 롤이지, 무슨 잔머리 굴려 가지고 책략 만드는 게 롤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그게 맞거든요.”

    그러고선 상식, 즉 국민의 평균적 생각을 바로 읽는 것이 결국 모든 책략을 이긴다는 사례를 또 하나 소개했다. 탄핵 역풍이 휘몰아치던 17대 총선 때의 상황이었다. 그 안에는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현재 맞닥뜨린 리더십 위기를 돌파할 방안도 함께 들어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지난 17대 총선을 제가 아주 비범한 전략을 써서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국민이 요구하는 걸 잘 살피고 상식만 따라갔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천막당사에서 총선을 치를 때 탄핵역풍이 불었잖아요. 국민의 분노가 워낙 거셌죠. 거기다 대고 무슨 선거전략을 쓰고 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다 돌아서서 들어주지도 않는데. 그래서 박근혜 대표 보고 그런 거예요. 우리가 지금 어떤 메시지를 던져도 국민이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구호는 효용성이 없다, 무전략의 전략으로 가야 한다, 대표께서는 모이는 사람들에게 세 마디만 하시라, 죽을 죄를 졌다, 다시는 안 그런다,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그랬거든요.

    박 대표도 동의하시더라고요. 실제 그렇게 했죠. 아마 박 대표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그 얘기도 안 들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호감들이 있었거든요. 나와서 보고 다 연민의 정을 느낀 거예요. 엉뚱한 사람들이 저질러놓은 걸 저 연약한 여자가 혼자 책임지려고 저러고 다닌다, 불쌍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죠. 선거운동이 매일 계속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게 눈에 보여요. 그래서 맨 마지막 일주일동안 집어넣은 게 ‘거여 견제론’이지요. (탄핵파동을 통해서) 권력이 비대해지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체험을 통해 보지 않았느냐, 견제할 힘을 달라 이렇게요. 결국 121석을 얻었죠.”

    “대통령의 소통이 뭔지 모르겠다”

    ▼ 이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론청취의 실패, 즉 ‘소통의 실패’를 말했습니다. 진정한 소통의 정치는 어떤 겁니까.

    “소통행위라는 게 수직, 즉 상하 간의 소통이 있고 수평의 소통이 있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이 뭔지 모르겠어요. 소통이 부족하다고만 했지 다른 설명이 없으니까요.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건 수평적 소통이거든요. 근데 혹여 대통령이 수직적 소통이 부족했다고 한 것이라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국민이 얘기하는 소통하고 다른 차원이라는 거죠. 지금은 거버넌스, 즉 협치(協治)를 할 때입니다. 협치나 거버넌스는 수평적인 소통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제 지도자가 ‘follow me’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대는 지나갔죠. 한국사회의 수준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 이런 소통구조의 변화, 즉 한국사회의 변화에 보수진영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 특히 한나라당은 최근 영국 보수당이 보이는 변화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영국 보수당은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꾸는 중입니다. 내부혁신을 시작한 거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우린 톱다운, 즉 수직적 소통조차 안 되고 있어요. 지금 시대는 교감, ‘interaction’의 시대이고 상호작용의 시대입니다. 상호작용이 상호교감 없이 됩니까? 수평적인 관계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제 지도자와 국민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생각을 해야지 나는 위고 국민은 밑이다 이렇게 해 가지고는 소통이 안 됩니다.”

    윤 전 의원에게 영국 보수당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물었더니 신문 한 장을 복사해 주며 “그 안에 대답이 다 들어 있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영자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실린 칼럼이었다.

    “지난 5월에 나온 건데요. 우리의 보수가 어떻게 해야 할지 거기 모두 나와 있어요.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현대보수주의(modern conservatism)의 21세기 중심적 논쟁거리는 삶의 질이라는 겁니다. 이제 개인적인 자유만 얘기해서는 부족하고 경제를 제일로 내걸었던 대처리즘도 한물갔다는 얘기죠. 이제 보수의 중심 논제가 경제에서 사회, 환경, 건강, 여성문제 이런 것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겁니다. 즉 삶의 질 문제죠. 우린 지금 경제만 가지고 죽어라 외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여기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참고해야 할 내용이 참 많아요.”

    공기업 ‘민영화’보단 ‘효율화’를

    윤 전 의원은 지난 세미나에서 이 대통령의 미래 비전 부재를 꼬집으며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라는 추상적 목표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내용이나 실천적 추진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그 적실성의 부족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친기업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확대재생산할 것이라는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실천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모두 통찰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기업 민영화, 한반도대운하 건설 등 국민에게 많은 비전을 제시했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국정기획수석실도 만들고요. 왜 비전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건 비전이 아니라 어젠다, 즉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통해서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걸 밝히는 게 비전이죠. 어젠다와 비전을 구분 못 한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죠. 비전을 내놓아야 국민이 동의할지 안 할지 태도를 결정할 거 아니겠어요?”

    ▼ 공기업 민영화 문제는 어떻습니까. 저항이 심한데.

    “이번 정부가 시장제일주의를 내걸었잖아요. 거기에 대한 우려가 있는 거죠. 시장 만능으로 가다 보면 공공성이 다 시장 쪽으로 흡수돼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수 서민은 어떻게 하란 얘기냐 그런 우려죠.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식자들의 우려는 그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공기업의 효율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공기업의 운영을 효율화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니까 팡팡 있는 대로 썼던데 말도 못 하게. (일은 안 하고)그냥 월급만 챙기고 그거 말이 돼요? 국민적 분노를 사는 게 마땅하죠. 당연히 (민영화보다는) 효율화가 돼야지요.”

    ▼ 지난달 박재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KBS는 정부 산하기관이고, 그 사장은 MB의 국정철학을 적극 구현할 사람이 돼야 한다”고 ‘신동아’에 밝혔는데요.

    “자기들 속생각이 그런 거야 누구나 짐작하는 것이라 쳐도, 그걸 공식적으로 청와대 인사가 대놓고 발언하는 건 온당치 않아요. ‘대통령의 철학을 반영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라는 말을 청와대 수석이 공식적으로 하는 건 시빗거리가 될 수 있죠.”

    ▼ KBS의 방만 경영을 감사원이 지적하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는데.

    “그런 것들은 다 고쳐져야 되겠지요, 그런 낭비적인 요소, 비합리적인 것들 모두 말입니다.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공기업에 적용되죠. 사기업은 그게 용납이 안 되지요, 이익을 창출해야 되니까. 공기업 운영의 효율화는 국민적 요구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방법이 문제입니다. 방법이 매끄럽지 않아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얄팍한 홍보와 대통령의 말 바꾸기

    ▼ 청와대의 ‘스타일 위주’ 홍보에 대해 비판하며 “얄팍한 재치에 바탕을 둔 소프트 터치 홍보에는 국민이 결코 속지 않는다”고 말씀한 바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그랬죠. 전 청와대에서 대통령 홍보하는 일을 오래 했어요. 그것도 직급별로 모두. 홍보는 본질을 조금 낫게 하는 것뿐이지, 흑을 백으로 만드는 건 아니지요. 실체가 없는 홍보는 반드시 실패하죠. 그건 홍보가 아니에요. 국민이 속질 않아요. 금방 알아요. 요즘처럼 많은 미디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속일수도, 감출 수도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하는 게 최선의 홍보지, 홍보 기술을 발휘하면 다르게 비치죠. 그걸 시도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해요.”

    ▼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전봇대 뽑아라’ ‘청와대 칸막이 낮춰라’ ‘사관학교 단상 높이 줄여라’고 지시한 게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 이런 홍보가 소프트 터치 홍보라는 거죠?

    “네. 대통령이 국민에게 친밀감을 준다는 거하고 만만하게 보인다는 건 완전 다른 거죠.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에게 미움을 살망정 경멸을 사선 안 됩니다.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사는 게 낫다는 거지요.”

    윤 전 의원은 이 대통령의 말 바꾸기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이를 ‘언행관리의 실패’라 규정했다. 그는 “언행의 일관성 유지야말로 권위와 신뢰를 확인하기 위한 요체”라며 “이 대통령의 경우 언행의 불일치가 너무 잦다”고 말했다. 그는 그 대표적 예로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담화를 한 지 며칠 안 돼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진압한다든지,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 고시를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늦추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다음날 여당대표가 뒤집은 일을 들었다.

    “지금 정부가 제일 힘든 게 신뢰가 무너진 것 아닌가요? 국민의 신뢰 말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아마 가장 기본적인 해결과제처럼 보이는데요. 왜냐면 신뢰회복이 안 되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이 안 믿을 테니까요. 신뢰를 회복하려면 대통령이나 정부가 말과 행동부터 일치시켜야 합니다. 말이 자꾸 바뀌면 어렵습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5월22일 대국민담화를 시작하면서 국민에게 사과 인사를 하는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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