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석유화학은 올해부터 소외된 이웃에게 수준 높은 공연 감상 기회를 주고,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족 어린이에게 음악 교육을 시켜주는 ‘나눔예술, 나눔교육’ 프로그램을 후원한다. 그동안 진행해온 맞춤형 휠체어 기증 등의 사회 공헌 활동에 또 다른 ‘사업’을 추가한 것이다. 회사 창립일에 기념식을 하는 대신 직원들과 함께 ‘연탄 나르기’ 봉사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박찬구 회장을 만났다.
박찬구(64)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첫인상은 친근했다. 2세 기업인, 대기업 CEO에게서 보이게 마련인 권위적인 태도나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가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하는 어투에서 진심이 읽혔다.
금호석유화학은 2012년 동아일보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진행하는 ‘나눔예술, 나눔교육’ 프로그램 후원사다. 전문공연단체가 전국의 읍면동 단위 복지시설에 찾아가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고, 음악 전문가가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을 돕는다. ‘나눔예술, 나눔교육’은 2009년부터 이어져온 ‘나눔예술’ 프로그램을 확대·개편한 것. 올해부터 ‘엘 시스테마’와 같은 교육 커리큘럼 ‘나눔교육’이 추가됐다.
‘엘 시스테마’는 2008년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 1975년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아브레우 박사가 시작했다. 그는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빈민가 소년 11명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음악을 가르쳤다.
전과 5범의 소년 등 단원들은 연주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 악단은 2년 뒤 스코틀랜드 국제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오케스트라 교육도 크게 확대됐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는 180곳의 교육장에서 1만5000명의 교사가 35만 명의 어린이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빈민가에서 자란 에딕손 루이즈와 구스타보 두다멜이 각각 베를린 필하모닉의 더블베이스 연주자, LA필하모닉 지휘자가 됐다.
교육 사업에 대한 열정
‘나눔교육’의 취지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한 채 자존감을 잃어가는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연주하는 기쁨을 알려주는 것. 첫 단계는 전국의 다문화가족센터와 아동센터 등에서 대상자를 추천받는 것이다. 이후 재능기부자 등 예술교육 전문가에게 음악을 배우게 한다. 초등학생의 경우 방과 후 주 2회 악기 레슨을 받고 주 1회 합주를 하게 된다. 취학 전 유아에게는 ‘몸으로 리듬 익히기, 음정 익히기, 악보 익히기’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박 회장은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면 좋겠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밝혔다.
“‘금호’ 하면 예술 후원을 떠올리는 분이 많은데, 사실 창업자인 선친이 가장 먼저 한 사회공헌은 학교 설립이었습니다. 1959년 제 조부의 호 ‘죽호’를 따서 재단법인‘죽호학원’을 만들고, 광주중앙여자중·고등학교, 금호고등학교, 금파공업고등학교 등을 차례로 세우셨죠. 여성 인재 양성을 위해 여자대학 설립도 준비하셨는데 그 뜻은 이루지 못했어요.”
박 회장의 설명이다. 박 회장은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자의 넷째 아들. 박인천 창업회장은 1946년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사업을 시작한 후 여객, 운송, 항공, 화학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오늘날 ‘금호그룹’의 기틀을 만든 인물이다. ‘금호’는 박인천 회장의 아호이기도 하다.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은 1996년 금호의 일대기를 토대로 집필한 전기소설 ‘집념 - 길 위의 길’ 서문에서 “박인천 회장의 전기를 기록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그의 일생이 ‘역사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며 “박 회장은 끝없는 도전과 시련을 거듭하면서, 발전과 비약을 일궈냈다. 그의 일생은 우리 역사의 엄정한 상징이 되고 있고, 또 그만한 교훈을 준다”고 했다.
1959년 금호가 학교법인을 세운 것도 당시의 사업규모에 비춰보면 큰 도전이었다. 박 회장은 “선친이 광복 후 창업한 ‘광주여객’이 6·25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1959년은 기업을 회복시켜 조금씩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던 때다. 회사에 여유자금이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광주에 여자 학교가 너무 없다’며 ‘더 늦기 전에 교육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신께서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많이 배우지 못한 데 대한 한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학교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무학자가 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죠. 학교 설립을 위해 직접 지역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뜻을 모으셨어요. 그 마음에 공감한 여러 독지가가 물자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건설비는 후불로 치르도록 양해해준 덕분에 광주중앙여중고가 세워진 겁니다.”
박 회장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가져야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음악 영재 지원 사업
금호는 1977년 말 전남 광주지역 최초의 문화재단인 ‘재단법인 금호’를 설립해 문화예술 후원에도 나섰다. 기업 운영이 궤도에 오른 상태였던 이때는 ‘기업 이익의 일부를 지역에 돌려줘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고 한다. 이후 금호문화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 재단은 지금도 음악영재 발굴과 악기 및 장학금·항공권 지원 등의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큰형님(고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계실 때 많은 일을 하셨죠. 금호미술관과 금호현악사중주단을 만들고, 광주비엔날레 추진위원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장 등을 지냈어요. 형님 덕분에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금호의 전통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저도 형님 일을 돕느라 좋은 악기를 사서 음악 영재에게 빌려주는 일을 시작했지요.”
박 회장은 “나보다 열일곱 살 위인 형님은 늘 내게 아버지 같은 어른이었다. 어린 시절 밥상예절을 형님에게 배웠고, 경영자가 된 뒤에는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자세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1717년산 바이올린 피에트로 과르네리(Pietro Guarneri)와 1861년산 첼로 주세페 로카(Giuseppe Rocca) 등 명품 악기 7점을 보유하고 있다. 재능 있는 연주자라면 이 악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2007년 러시아에서 열린 ‘제3회 크누쉐비츠키 국제 청소년 첼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변새봄은 당시 금호석유화학의 1861년산 첼로 주세페 로카로 연주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06년 오디션을 통해 이 악기 사용 수혜자로 선발된 덕분이다.
깊고 중후한 소리를 자랑하는 주세페 로카의 현재 주인은 미국 보스턴 글로브지가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한 첼리스트 재클린 최. 1717년산 피에트로 과르네리는 현재 프랑스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이 사용하고 있다. 박지윤은 2004년 티보 바르가 콩쿠르에서 1위 및 청중상을 석권하고, 2005 롱티보 콩쿠르,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연주자다. 금호석유화학은 1995년 악기 무상 임대 사업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모두 23명의 음악 영재가 이 혜택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맞춤형 휠체어
이 회사의 사회 공헌 사업이 육영과 문화예술 후원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은 2010년 ‘사회복지의 날 기념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수여식’에서 장애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공헌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여러 장애인 시설에 맞춤형 휠체어 및 보장구(保障具)를 지원하고, 시설이 낙후된 사회복지시설의 창호를 교체해주는 등의 봉사를 계속해온 덕분이다. 박 회장은 “복지 시설에 목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도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도우려고 한다. 이를 위해 2008년부터 여러 시설에 지체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휠체어 방석 쿠션·자세유지 쿠션, 시각장애인을 위한 흰지팡이 등을 기증했고, 2009년부터는 중증뇌성마비 장애아동을 위한 맞춤형 휠체어도 제작·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휠체어 지원은 금호석유화학이 하는 사회 공헌 사업의 특징을 분명히 보여준다.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휠체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 도구다. 하지만 신체 곳곳이 비틀어지는 장애의 특성상, 이들이 일반 휠체어를 이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금호석유화학은 2009년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추천한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영락애니아의 집’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어린이 10명을 소개받은 뒤 이들 각각을 위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휠체어’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뼈가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까지 일일이 살핀 뒤, 하나하나 틀을 떠 제작한 것이다.
“휠체어를 직접 만든 이유는 합성고무, 합성수지 등 금호석유화학의 제품이 휠체어를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보호장구제작 전문업체와 협력해 기존 휠체어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일반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금세 힘들어하고 짜증을 내던 아이들이 새로운 휠체어를 탄 뒤부터 편안해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쁘던지…. 이제 그들도 세상을 좀 더 친근하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참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매년 복지시설에 맞춤형 휠체어를 기증하고 있습니다.”
시설이 낡은 사회복지시설 창호를 금호석유화학이 생산하는 ‘금호 휴그린’ 제품으로 바꿔주는 일도 꾸준히 한다. 박 회장은 “겨울에 찬바람만 안 들어와도 얼마나 따뜻해지냐. 창호를 바꾸면 결로나 소음 같은 문제도 상당부분 해결된다”며 “‘우리가 만드는 화학제품으로 소외계층의 신체적·물리적 장애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게 금호석유화학 장애인 봉사 사업의 목표”라고 했다.
급여 끝전 모으기
영유아 및 미혼모 보호시설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어린이를 돌보고 있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
박 회장은 회사 차원의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하는 동시에 직원들의 봉사 참여도 독려한다. 2008년부터 사회공헌 활동 정도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는 ‘포인트 시스템’도 시행 중이다. 직원이 사회 공헌 활동을 한 경우 한 시간당 1포인트씩 적립해주는 제도다. 특별히 어렵거나 가치 있는 활동을 했을 때는 2포인트를 적립한다. 이렇게 1년 동안 모은 포인트를 정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직원 1명은 연말 ‘최우수 직원’으로 선정돼 1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2위부터 7위까지에 해당하는 우수 직원 6명에게도 각각 상금 50만 원씩이 주어진다. 이들 7명은 승진 심사 때도 가산점을 받는다. 2011년에는 ‘단체상’을 신설해 팀원 평균 포인트가 가장 높은 한 팀에게 포상금 2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나눔을 열심히 실천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거예요. 우리 직원들은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꾸준히 많은 일을 해왔거든요. 그걸 격려하는 차원으로 보시면 될 겁니다. 현재 전국 사업장별로 많은 직원이 사회복지기관 자원봉사, 소년소녀 가장 돕기, 탈북가정 지원, 헌혈 등의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1사 1산 1하천 환경개선 활동, 1사 1늪지 정화 활동, 지역 농산물 구매, 사랑의 김장 담그기 등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 프로그램 참여자도 많습니다.”
박 회장은 이와 더불어 ‘급여 끝전 모으기 및 정액 기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1991년 금호석유화학 여수공장 직원들은 “작은 후원도 모이면 큰 도움이 된다”며 급여 중 1000원 미만의 끝전을 모아 성금으로 기탁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하는 이가 많아지면서 이 운동은 점점 회사 전체로 확대됐고, 급여에서 매월 일정액씩 더 떼어 성금에 보태는 이들도 생겼다. 이제는 직원들이 1년간 돈을 모으면 연말에 회사가 같은 액수를 더해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 기부하는 전통이 생겼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임직원 10여 명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를 찾아 끝전 모으기와 회사의 매칭그랜트(임직원이 내는 기부금만큼 기업에서도 후원금을 내는 제도)로 마련한 성금 2400만 원을 전달했다. 봉사활동도 했다. 회장과 직원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한 일은 2010년 12월에도 있었다. 기업 창립 40주년을 맞은 날, 기념행사를 하는 대신 서울 구룡마을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초심(初心) 연탄’ 5000장을 전달하는 ‘사랑의 연탄 나눔’ 행사를 연 것.
박 회장은 “선친은 내게 ‘나는 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기업의 부가 얼마인지보다 중요한 건 그것으로 얼마나 실질적인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며 “그 말씀이 늘 마음에 남아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듣고 자란 조상 박수량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조선 중기에 38년간 관직에 계신 분입니다. 지금의 법무장관 격인 형조판서까지 지내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셨을 때 집안에 초상 치를 돈조차 없었다고 하더군요. 청백리셨던 거지요. 명종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도록 지시한 뒤 ‘그의 청렴함을 기려 무덤 앞에 백비(白碑)를 세우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그분을 기리는 비석이 남아 있어요.”
Vision 2020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웃과의 나눔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집안 내림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하는 듯 들렸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나눔’을 우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금호석유화학의 전문 영역은 나눔이 아니라 화학이거든요. 저는 기업가로서, 우리 기업과 산업의 가치를 높이는 걸 최우선에 놓습니다. 그 결과물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거고요.”
이를 위해 박 회장이 세운 목표는 금호석유화학을 2020년까지 세계 1등 제품 20개를 보유한 매출 2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키우는 것. 이른바 ‘Vision 2020’ 계획이다. 지난해 말 이 회사의 고무 산화방지제 제품 ‘쿠마녹스 13(KUMANOX 13)’과 계열사 금호폴리켐의 고기능성 합성고무 제품 ‘EPDM’이 지식경제부의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면서 목표 달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세계 일류상품은 지식경제부가 주관하고 한국생산성본부가 인증하는 제도로, 글로벌 제품 중 세계시장 점유율이 5% 이상이면서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5000만 달러 이상인 제품이나, 연간 5000만 달러 이상 수출에 성공한 제품 중 선정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뽑힌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와 부타디엔고무(BR)에 이어 모두 4개의 세계 일류상품을 보유하게 됐다.
박 회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타이어 회사, 각종 가전 및 반도체 회사들이 금호석유화학의 고객이다. 다른 기업을 상대로 사업하는 B2B 형태의 회사다 보니 일반 소비자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우리 회사는 이미 합성고무 합성수지 정밀화학 전자화학 에너지 건자재 미래소재 등 많은 사업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10년 현재 매출의 65%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게다가 2005년 10억달러 수출탑, 2008년 20억달러 수출탑, 2011년 30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했을 만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 15개 사업장 및 공장을 보유하고 북미, 유럽, 아시아 등 해외에 9개 지사 및 사무소와 5개의 합작 공장을 둔 금호석유화학의 캐치프레이즈는 ‘최선을 넘어서(beyond the best)’다. 박 회장은 “1970년 창립 후 40년간 축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는 환경 친화적 제품과 신기술 개발에 앞장서려 한다. 친환경 합성고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주는 중온화 아스팔트 첨가제, 탄소나노튜브 등의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금호미쓰이화학, 금호개발상사, 금호항만운영 등과 함께 ‘Vision 2020’을 달성하기 위해 더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웃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사회봉사 활동에도 더 힘을 실어주고 싶고요. 선친께서는 늘 ‘기업하는 사람은 새롭고 창조적인 일에 투자하고 산업 발전에 기여해 많은 사람의 고용과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기업 활동을 통해 더 많이 나누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