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도 평화운동가…脫통일교 행보
- 통일 비전 담은 ‘코리안 드림’ 출간
- 코리안 드림 첫 단계는 남북통일
- 충(忠), 효(孝), 열(烈)은 민족 정체성
-백범 김구
“민족 공동의 염원과 무관한 소모적 싸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된 상황에서 이념 대립은 어리석다. 남과 북은 고조선과 단군의 유산을 중시한다. 남은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삼았고, 북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국명에 포함했다. 선택을 달리한 두 체제가 홍익인간의 이상이 국가 건설에 일조한다고 믿은 것이다.
오늘날의 남북한은 각각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코리안 드림’에 따른 새로운 국가 건설을 통해 그것을 치유할 수 있다. 홍익인간은 한민족의 기원과 동시에 우리의 꿈이 됐고,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것은 민족의 운명을 성취하려는 영적 의식으로부터 표출한 철학이다. 우리의 운명은 김구 선생이 예언한 것처럼 도덕적 권위를 갖춘 새로운 국가를 창조하는 것으로 연결돼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운명은 한민족과 한반도, 아시아와 세계를 위해 미래를 창조하라는 명령이다.”
대중 연설을 듣는 줄 알았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예, 아니오를 묻는 질문에도 짧게 답하지 않는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비즈니스스쿨(MBA)을 졸업했다. 종교학 석사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올림픽(1988년, 1992년)에 출전했다. 올해 마흔 다섯. 자녀가 아홉이다.
서툰 우리말 대신 영어로 답변한 인터뷰 내내 정체성(identity) 운명(destiny) 통일(unification)이란 낱말을 반복해 말했다.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3남 문현진. 장남, 차남이 세상을 떠나 실질적 장남이다. 그러나 통일교인이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가’다. “평화운동가로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강조한다.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GPF) 세계의장 겸 UCI재단 이사장이 저서 ‘코리안 드림’을 펴내고 한국 활동을 본격화했다 ‘풀뿌리 통일운동’이 그것이다. 2007년 GPF를 창설한 후 평화운동을 해온 그는 9월 23일 ‘통일 한국의 비전’이란 부제가 붙은 ‘코리안 드림’을 펴냈다. 9월 29~30일엔 ‘2014 지구촌 평화실현을 위한 지도자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개천절을 하루 앞둔 10월 2일 그를 만났다. 그가 말한 코리안 드림의 첫 단계는 남북통일이다.
“독특한 역사적 전통에 의해 형성된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일부터 통일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류에 봉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다. 그 시작은 이러한 사명을 실현할 자주 국가를 건설하는 것, 통일이다. 통일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 삼아 동아시아 공동체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풀뿌리 통일운동
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함께 꿀 때 그 꿈은 현실이 된다.
-칭기즈 칸
그는 ‘칭기즈 칸의 꿈’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이 세계에서 가장 원대한 세 가지 꿈이라고 말했다.
“책은 우리의 정체성과 운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체성을 되찾고 운명을 개척해 통일을 이루면 21세기를 주도하면서 세계 평화의 실증을 보여주는 국가를 세울 수 있다. 몽골이 유라시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칭기즈 칸 부족은 몽골에서 가장 약한 부족이었다. ‘한 하늘 아래 하나 된 세상’이라는 그들의 꿈은 심오했다. 칭기즈 칸의 부족은 최악의 조건에서 출발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 혁명도 마찬가지다. 18세기 미국인은 대영제국에 맞섰다. 보잘것없는 농부, 작은 가게 주인이 초강대국에 반기를 든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는 국가나 군주가 아닌 창조주가 인간에게 직접 부여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이 부여한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 건국으로 이어졌고 미국은 초강대국이 됐다.
홍익인간의 이상 또한 몽골 제국의 시작과 미국의 건설처럼 꿈으로부터 시작했다. 냉소적인 이들은 ‘이상주의 아닌가’ ‘몽상가다’라고 말하겠지만, 인류 역사의 풍경(landscape)을 만든 것은 꿈꾸는 사람들이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한반도 선진화재단 상임고문)는 ‘코리안 드림’에 부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통일의 대의(大義)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다. 통일 논의에 있어 ‘어떻게’만 있지 ‘왜’가 없는 셈이다. 통일의 방법에 대한 주장은 많으나 비전에 대한 주장은 안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의 철학과 사상 비전을 논의한 책이 문현진 의장의 ‘코리안 드림’이다. 한반도 통일의 사상을 우리 한민족 전래의 사상인 홍익인간의 철학에서 찾고 있다. 홍익인간의 철학을 통일의 철학으로, 통일의 이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익인간이 가진 다른 종교와 민족에 대한 큰 포용성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고 자랑이라는 주장이다. 이 자랑스러운 철학과 사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이 사상에 기초해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그 사상의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큰 사명감과 비전을 가지고 우선 한반도에서 홍익인간 사상의 실천에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한반도 통일의 길이라는 주장이다. 크게 공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를 위해 서구의 사상적 지침을 수신(受信)하고 배우는 데 급급했다. 이제는 지구촌 전체에 새로운 사상적 지침을 발신(發信)하는 시대를 열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한다.”
왜 홍익인간인가?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바로 설 수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
▼ 단군신화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겪은 직후 저술됐다. 일제강점기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썼다. 지금도 난세라고 보나.
“그렇다.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도전적 시기(challenging time)다. 북한 정권이 불안정해 보인다. 통일에 무관심하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겨야 한다고 보는 것은 냉전 시대의 논리다. 냉전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다. 강대국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우리 역사를 중심 삼고, 남북 모두가 공유할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 통일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홍익인간은 냉전 체제의 시각에서 벗어나게 해줄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시조(始祖) 단군의 건국이념이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 재세이화(在世理化·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려 교화한다), 이도여치(以道與治·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광명이세(光明理世·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의 3원칙을 포괄한다.
“北 김정은에게도 책 보낼 것”
▼ 통일에 관심이 적은 젊은이가 많다.
“한국 경제가 상승의 정점에 오른 것 같다. 젊은 세대가 통일에 무관심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위험하다는 점과 통일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몰라서다. 한국 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충성도 높은 한국 시장 덕분이다. 이젠 고령화 시대다. 일할 사람, 물건 살 사람이 줄어든다. 분단이 이어지면 가장 손해 보는 이들이 젊은 세대다. 북한은 자원이 많고, 노동력이 젊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건설할 것도 많다. 인구가 5000만 명에서 8000만 명으로 늘어난다. 세계 톱5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만 예로 들더라도 이렇다는 것이다. 사회, 정치, 영적인 부분에서 이룰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 홍익인간 정신이 우리 민족에 내재한다고 책에 썼다. 1945~1950년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의견이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이 우리에게 내재한 것 같지는 않은데….
“한국 안에서는 전체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밖에서 보는 게 객관적일 수 있다. 한국사람, 정말 대단하다.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잠재력이 대단한 민족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현안을 두고는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잘한 일로 다툴 때가 아니다. 갈등을 접어두고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외국인에게 홍익인간 정신을 설명하면 모두가 놀라고 감동받는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오는 천부인권 정신을 5000년 전에 깨달았다. 모든 인류가 공감하는 이상인 것이다. 정체성을 깨닫고 역사의 주인이 되면 현재의 갈등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
그는 “분단은 5000년 역사의 바다에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20세기 우리 민족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제의 지배를 받았으며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는 자결할 상황이 됐다. 자주권을 발휘해 스스로 통일을 주도하지 않으면 그 공백에 외세가 들어올 수 있다. 아마도 중국이 그럴 소지가 가장 크다. 기회를 잃으면 우리는 바보 민족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운명을 개척하면 코리안 드림을 통해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 우리 민족을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
“한국사람 기분 좋으라고 책 쓴 것이 아니다. 학술적인 면이 뒷받침돼 있다. 단군의 이상을 실현할 독립, 자주 국가를 세우겠다는 꿈은 김구 선생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이었다.”
▼ 북한 김정은에게도 한 권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물론이다. 북한 지도자와 주민도 염두에 두고 책을 썼다.”
▼ 김정은이 싫어할 것 같다. 북한에 비판적인 내용이 많더라.
“한국에 대해서도 비판적 내용을 담았다.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장(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의 ‘코리안 드림’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문현진 의장은 우리가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통일 코리아가 향후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한 미래 비전에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사와 세계사, 서양 근대 철학과 민족 사상,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설명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도덕과 윤리 기준을 제시하고, 또한 테러와의 전쟁의 원인인 종교·문명 간의 충돌 문제에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원대한 코리안 드림을 논하면서도 협소한 민족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고, 세계적 관점에서 온 인류를 위해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역할을 논의한다.”
“대중의 힘이 역사 바꿔”
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던진 돌멩이 하나는 많은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화자 미상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휴전선 이북이다. 아버지는 평안북도 정주, 어머니는 평안남도 안주 출신이다. 가까운 친척이 북한에 살고 있다.
그는 “인류 역사의 풍경을 만든 것은 꿈꾸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한반도 통일을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핵심적 토대로 봤다. 1991년 김일성 주석과 극적인 만남을 통해 북한의 문을 여는 길을 개척하셨다.”
그가 주도해 개최한 ‘2014 지구촌 평화 실현을 위한 지도자 대회’(9.29~30)에는 국내 통일 관련 단체를 거의 망라한 400여 곳이 참여했다. 통일부, 국회 통일미래포럼, 평화문제연구소가 후원했다. 그는 통일운동이 정부 주도에서 국민의 직접 참여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힘이 역사를 바꾼다. 한민족의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협력구조는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기반이다. 분단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핵심적인 정치, 경제 사안을 조율한 터 위에 거대한 사회 문화적 전환을 불러와야 한다. 성공적인 통일을 달성하려면 폭넓은 대중운동이 요구된다.”
그는 한국 전통의 대가족 제도의 효용을 강조한다.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코리안 드림은 홍익인간의 이념이 한국의 가족주의와 맺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대가족 제도만큼 전적으로 헌신적 사랑을 추구한 제도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종교든 보편 원칙 같아”
그는 충(忠) 효(孝) 열(烈)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 효, 열은 아주 놀라운 개념이다. 뛰어난 사람들만 보여준 미덕이 아니라 필부필녀가 실천한 것이다.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고결한 민족이었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홍익인간 철학에 대해 ‘위기 때 성인이 나타나는 게 보통인데, 이 나라는 성인들이 세운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충, 효, 열의 미덕은 우리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지난 일이지만,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의 미국인 시부모들이 며느리의 행동에 굉장한 감동을 받곤 했다. 충, 효, 열은 우리가 어때야 하는지를 규정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유산이다.”
그가 설파하는 비전은 ‘하나님 아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다. ‘한 하늘 아래 하나 된 세상’이라는 몽골의 꿈, 천부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낸 아메리칸 드림과 마찬가지로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을 이뤄내자는 것이다.
홍익인간이란 보편적 가치가 있었기에 외래 종교 수용에 거부감이 없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종교 전통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신문화를 더욱 폭넓게 발전시켰다고 그는 설명 했다. 그의 비전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에도 닿아 있다.
“최제우는 단군의 천지인 사상을 기반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펼쳤다. 홍익인간의 세계,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인간으로서 존엄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그런 이상적 세계를 지상에 실현할 것을 촉구했다.”
-불교는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설파한다. 기독교, 이슬람교 등 일신교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 이렇듯 다른데,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 되겠나.
“그 질문에 대해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 내가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어떤 종교이든 갖고 있는 보편적 가치와 원칙은 거의 똑같다. 종교는 창시자의 메시지를 해석하면서 점차 이를 제도화한 것이다. 교권이 생기면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평화라는 실질적 선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란 비전은 종교지도자에게 평화를 만들어내는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교단의 이익이 아니라 종교의 근본 가르침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이상주의자(idealist)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가 미리 자답(自答)해서다.
“냉소적인 이들은 ‘몽상가’라고 말할 것이지만, 인류 역사의 풍경을 만든 것은 꿈꾸는 사람이다.”
미국 최고 학부와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민주주의 가치와 서양의 합리성을 몸으로 익힌 그가 홍익인간이라는 이상을 바탕 삼아 남북통일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여하는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