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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에서 가결까지 65시간 막전막후

발의에서 가결까지 65시간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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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정국의 출발점은 민주당의 분노였다. 민주당 수뇌부는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등 노 대통령의 잇따른 총선 관련 발언을 ‘민주당 죽이기’로 간주하고 생존 차원의 대응으로 탄핵을 거론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사과 거부’로 민주당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고, 그 결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나타났다.
발의에서 가결까지 65시간 막전막후

3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헌정사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16대 국회는 초헌법적 반(反)법치주의적 자세로 일관하면서 국법질서와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최소한의 도덕적 기반마저 붕괴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탄핵하여 민주헌정을 수호하기 위한 헌법적 책무를 다해야 하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

3월12일 오전 11시22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상정을 선언하는 순간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이같이 시작되는 탄핵안 제안설명서를 움켜쥐었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있어 비록 낭독하지는 못했지만 조 대표의 제안설명서에는 애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의결을 헌정사상 최초로 이끌어내기까지 넘어야 했던 고비고비가 배어 있었다.

제안설명서에도 나타나 있듯 야권에서 ‘불법적 선거 개입’ 등을 이유로 노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은 수개월 전부터였다. ‘탄핵’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10월10일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 수사와 관련해 “수사결과가 나온 뒤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한 직후였다. 다음날인 10월11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이규택(李揆澤) 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리를 덮고 재신임을 걸어 총선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술수”라며 “민주당 자민련과 연대해 탄핵소추로 몰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돕는 것”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탄핵은 노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위협용 카드’였을 뿐 실제 성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야권이 탄핵을 사용 가능한 무기로 인식한 것은 지난해 12월4일 이후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측근비리 특검법을 무려 209명의 찬성으로 재의결하는 가공할 ‘반노(反盧) 결집력’을 발휘했다. 개헌안 처리나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재적의원(당시 3분의 2는 182명)을 훌쩍 뛰어넘은 숫자였다.

야권이 본격적으로 탄핵추진을 검토하게 된 데는 노 대통령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주축을 이룬 지지자들의 대선승리 1주년 기념행사인 ‘리멤버 1219’ 행사장에서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번 뛰어달라”며 ‘친노’ 단체들에 적극적 활동을 주문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내년 총선을 겨냥한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라며 탄핵 추진의 불가피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같은 해 12월24일 노 대통령과 총선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박범계(朴範界) 전 대통령법무비서관 등 전직 비서관 행정관들과 함께한 오찬석상 발언도 말썽이 됐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하나의 세력으로 하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한 축으로 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고 발언했다. 야당이 역시 이를 ‘사전선거운동’으로 맹비난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선거와 관련해 할 수 있는 행위와 그 범위에 관해 선관위 유권해석을 요청하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해가 바뀌어 1월5일, 조순형 대표는 당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사유라는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며 처음으로 ‘탄핵’을 거론했다.

민주당이 특히 흥분한 대목은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돕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그야말로 ‘민주당 죽이기’를 노골화한 것이라는 것. 조 대표는 3월 탄핵 정국이 본격화된 뒤에도 이 발언을 계속 상기시키며, “노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적어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민주당을 찍어달라’고 말하는 게 인간적인 도리이고, 순리 아니냐”며 여러 차례 배신감을 토로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을 쪼갠 것도 용서하기 힘든데 그나마 남은 민주당마저 짓밟으려 한다는 게 민주당의 인식이다. 사실 ‘친노파’들의 민주당 분당(分黨) 강행이야말로 노 대통령이 탄핵소추 사태를 맞게 된 근본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핵심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총지휘한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총선에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노골적인 열린우리당 지지 행위를 좌시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탄핵추진의 본질은 총선에서 몰락 위기에 처한 민주당과 ‘차떼기’로 코너에 몰린 한나라당이 야합해 대통령을 끌어내림으로써 물꼬를 되돌리려는 총선정략에 불과하다”고 단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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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부형권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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