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기조로 회견을 했다가는 야당이 탄핵 표결 강행으로 나올 게 뻔했다. 그러나 이제는 노 대통령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정 의장의 머릿속에는 ‘탄핵 가결’이라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뭐하러 표결 막느냐”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을 이유로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후 일부 여야 중진들은 “그래도 파국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물밑 대화를 해왔다. 그리고 한나라당 쪽에서는 9일 오후 늦게 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희상 대통령정치특보 등을 통해 모종의 타협책을 제시했다. 타협책은 박관용 국회의장 주선으로 노 대통령과 유지담 중앙선관위원장, 그리고 여야 4당 대표가 만나는 7자회동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이 유 위원장에게 자신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 경위를 설명하고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만 분명하게 밝힌다면 탄핵안 표결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문 특보는 10일 오후 3시 정치특보 위촉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 노 대통령을 만났지만, 7자 회동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씨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 특보는 이미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병완 홍보수석비서관과의 접촉을 통해 노 대통령의 강경한 대응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10일 박관용 의장이 별도로 김우식 비서실장을 통해 제안한 여야 대표와의 긴급회동 역시 노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의장이 탄핵안 가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경호권’을 발동한 것도 노 대통령의 대화 거부가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박 의장이 표결을 강행하면서 화난 목소리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고 소리쳤던 것도 의장석을 점거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한 것이라기보다 노 대통령을 향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즈음 노 대통령을 만났던 여권 고위관계자의 전언.
“노 대통령은 자신감에 차 있더라. 처음에는 화가 나서 열린우리당 쪽에 농성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야당이 표결하라고 놔두지, 뭐하러 막느냐’는 것이었다. 당 쪽에서 ‘그래도 우리는 막아야겠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저지하면 표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 같았고, 설사 투표에 들어가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도 아닌 ‘각하’결정을 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도 “야당이 처음 탄핵안을 발의했을 때 노 대통령이 ‘한판 붙자는 거 아이가’ 그러더라. 대통령은 한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도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는 잘못됐지만, 파국을 막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들이밀면서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으나, 노 대통령은 도리어 참모들을 설득하는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