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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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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의 비타협적 정치관은 1990년 3당합당 합류를 거부한 데서 비롯됐고 이후 비주류의 길을 걸으면서 더욱 고착됐다. 자신이 내세우는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대화조차 거부하는 배타주의적 소신은 야당과의 타협을 통한 국정안정보다 정치적 승부수에 치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3월10일 밤 9시경,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던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나타난 정동영 의장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바로 직전 청와대를 찾아가 노 대통령에게 “기자회견에서 사과가 어렵다면, ‘대국민 유감표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설득했으나, 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사과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 기조로 회견을 했다가는 야당이 탄핵 표결 강행으로 나올 게 뻔했다. 그러나 이제는 노 대통령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정 의장의 머릿속에는 ‘탄핵 가결’이라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뭐하러 표결 막느냐”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을 이유로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후 일부 여야 중진들은 “그래도 파국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물밑 대화를 해왔다. 그리고 한나라당 쪽에서는 9일 오후 늦게 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희상 대통령정치특보 등을 통해 모종의 타협책을 제시했다. 타협책은 박관용 국회의장 주선으로 노 대통령과 유지담 중앙선관위원장, 그리고 여야 4당 대표가 만나는 7자회동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이 유 위원장에게 자신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 경위를 설명하고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만 분명하게 밝힌다면 탄핵안 표결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문 특보는 10일 오후 3시 정치특보 위촉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 노 대통령을 만났지만, 7자 회동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씨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 특보는 이미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병완 홍보수석비서관과의 접촉을 통해 노 대통령의 강경한 대응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10일 박관용 의장이 별도로 김우식 비서실장을 통해 제안한 여야 대표와의 긴급회동 역시 노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의장이 탄핵안 가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경호권’을 발동한 것도 노 대통령의 대화 거부가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박 의장이 표결을 강행하면서 화난 목소리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고 소리쳤던 것도 의장석을 점거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한 것이라기보다 노 대통령을 향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즈음 노 대통령을 만났던 여권 고위관계자의 전언.

“노 대통령은 자신감에 차 있더라. 처음에는 화가 나서 열린우리당 쪽에 농성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야당이 표결하라고 놔두지, 뭐하러 막느냐’는 것이었다. 당 쪽에서 ‘그래도 우리는 막아야겠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저지하면 표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 같았고, 설사 투표에 들어가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도 아닌 ‘각하’결정을 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도 “야당이 처음 탄핵안을 발의했을 때 노 대통령이 ‘한판 붙자는 거 아이가’ 그러더라. 대통령은 한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도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는 잘못됐지만, 파국을 막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들이밀면서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으나, 노 대통령은 도리어 참모들을 설득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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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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