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관용 국회의장은 국가 권력서열 2위지만, 인터뷰 전 서면 질문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자가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내면 이 질문, 저 질문은 빼달라고 하거나 인터뷰 도중 질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하자는 유력 정치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박 의장은 다르다. 그는 가벼운 티타임을 갖듯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인터뷰한다. 박 의장은 ‘인터뷰어’를 편하게 해주는 드문 ‘인터뷰이’이다. 그가 강조하는 ‘대화정치’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그에게 탄핵안 가결에 대해 물어봤다.
-탄핵안을 가결시킨 당사자로서 현재 심정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뒤 마음의 고통이 심합니다. 그러나 의원 다수의 의사표시 기회를 부여하는 일은 법이 정한 국회의장의 책무였으므로 그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무척 가슴 아픕니다. 국민들께서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대처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겸허히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탄핵안 가결 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하루 전인 3월10일 국회의장이 제의한 대통령-4당대표 회담을 대통령이 거절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치를 하는 데 있어 아무리 나쁜 대화도 대화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해드렸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직도 이 고언(苦言)을 이해하지 못한 듯합니다. 기자회견 전에 4당 대표를 먼저 만나라고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제의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관저든 어디든 오라고만 하면 4당 대표를 모시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쳤다’며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 때의 서운함이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만남이 성사됐다면 탄핵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요.
“나는 진심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그들을 만났다면 이렇게 안 됐지. 얘기하다보면 파국을 막을 해법이 나오게 되거든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사퇴한 이후 청와대는 ‘대(對) 국회 창구역’인 정무수석을 공석으로 뒀다. 그후 정치권에선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대화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야(巨野)의 일방주의 정치, 대통령의 의도성 있어 보이는 ‘야당과의 단절’ 등이 탄핵을 무르익게 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같은 이유로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야권의 탄핵국면 조성은 자멸의 악수(惡手)로, 이를 돌파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고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탄핵 추진은 자멸의 지름길. 오히려 야권이 반대 여론을 의식해 탄핵을 안 하겠다고 할까 걱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업자득” 호통 친 이유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발의할 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의장은 ‘자업자득’이라고 호통을 쳤는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선 열린우리당은 대선 이후 여당을 두 조각 냈습니다. 그것도 원수가 되어 이혼했습니다. 가뜩이나 소수 여당인데 그 당마저 두 조각을 냈으니 향후 국정 운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상황을 자초했습니다. 국회 다수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를 리 없는데 스스로 5분의 1쪽짜리 여당의 길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탄핵으로 이르게 된 1차적 자업자득입니다. 이후 대통령과 거대 야당들이 탄핵을 놓고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양쪽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중재 역할을 해야 함에도 모른 체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소수정당인 만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막상 탄핵안이 상정되자 물리력을 동원해 의장석을 일방적으로 점거했습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을 향해 ‘자업자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작심하고 특별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