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노무현 신당, ‘호남탈색’ 모험은 시작됐다

민주당 신·구주류 대회전 카운트다운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05-23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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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선혈이 낭자하게…강자가 누구의 피를 보겠다는 말인가”
    • 신·구주류,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 속 ‘마음은 이미 분당’
    •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유인태 수석과 자주 접촉… 계획된 시나리오인가
    • 천정배, “분당요? 단정지어 말할 상황이 아닙니다”
    • 신주류 강경파, 여기서 물러나면 ‘신당’ 물 건너간다 강행
    • ‘호남과 개혁의 분열은 공멸’ …선택 강요당하는 통합신당파
    노무현 신당, ‘호남탈색’ 모험은 시작됐다

    2003년 5월13일 열린 민주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신·구주류 갈등을 둘러싸고 설전이 벌어졌다.

    “작년 여름 선인장 화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 알아서 잘 커주던 선인장이었습니다. / 지난 겨울부터 선인장은 말라가더군요. / 손길 한번 주지 않으면서 잘 크기만 바랐던 내 탓은 하지 않고 / 보기 싫어 추운 베란다 한구석으로 치워놓은 채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 추운 겨울이 지나고 / 알록달록한 봄 화초에 내 눈길이 쏠릴 때 / 그 녀석은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버티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어느새 키도 훌쩍 커 있었습니다. / 마사토로 채운 화분에 녀석을 옮겨 심고 / 햇볕 있는 곳에 놓았습니다. / 시각의 만족을 위해 그저 보기 좋게 커주기만 바랐던 / 일방적인 나의 이기심을 녀석은 용서하는 듯했습니다. / 돌보고 가꾸지 않으면서 그저 받기만 바라는 이기심을 / 스스로 알아챌 때까지 / 녀석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이 지난 5월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시다. 제목은 ‘선인장’. 이 시는 한동안 정치권 안팎에서 화제였다. 이 시가 담고 있는 의미는 뭘까. ‘선인장’은 또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해석들이 분분했다.

    시기적으로 당내 개혁신당 논의가 크게 출렁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신당에 대해 침묵하던 추의원의 입장이 다들 궁금하던 터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추의원이) 지금까지 신주류와 차별화하기 위해 각을 세운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고민을 했군요”라면서 “당신이 진정 호남의 친구입니다”라고 반겼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선인장은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당당하고 자신 있는 힘을 온몸에, 깊은 뿌리에 항상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호남지역 출신들로 보이는 이들 네티즌들은 ‘선인장’을 ‘호남인’, 곧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신주류에 등돌린 추미애 의원

    그로부터 이틀 뒤, 추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16일로 예정됐던 신당 워크숍에 불참선언을 한 것이다. 구주류와 본격적인 세 싸움을 벌이고 있던 신주류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신주류측 의원들은 그동안 추의원이 결국은 함께갈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만큼 뿌리와 정통성을 가진 정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 어렵고 대안정당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워크숍 불참 의사를 밝혔다. 추의원은 또 신당 강경파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민주당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향후 자신의 행보를 암시했다. 추의원의 시에 등장한 ‘선인장’이 네티즌들에게 ‘호남인’으로 인식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현대정치사에서 사회적 소외계층과 약자를 대변해왔고,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지역차별과 소외가 있을 때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이런 민주당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지역차별을 느낀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해줄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해서 지역정당으로 폄하하거나, 그 사람들한테 좌절감을 주면서 영남표를 얻기 위해 호남인들의 빰을 때리고 ‘눈물을 흘려라’고 하면서 전국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고, 영남사람들도 얄팍한 정치기교로 볼 것이다.

    신당을 만들어봤자 이름만 바뀌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이념을 뛰어넘을 수 없다. 영남지역 내에서 개혁우군을 만들어야지 무턱대고 영남표를 구하는 것은 곤란하다. 신당 한다는 사람들이 선혈이 낭자하게 한다는데, 약자가 강자를 향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피를 흘리는 것이지 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의 피를 흘리게 한다는 말이냐. 이미 퇴영한 사람들의 피를 보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추의원측 한 관계자는 “추의원의 정치개혁 방향과 시각은 신주류 강경파인 신기남(辛基南) 천정배(千正培) 정동영(鄭東泳) 의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신당논의가 주도권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 문제다. 향후 당 제도개혁 논의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합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고 5월11일 신주류 강경파의 주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진 ‘신당추진 비공식 의원기구’ 구성방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비공식적인 모임에 참석한 것 자체를 문제삼았다.

    이 관계자는 “당의 대표가 당무회의라는 당 공식기구가 있는데도 비공식기구를 띄우는 데 동참한 것은 문제가 있다. 당 공식기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당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 있던 정대표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서둘러 뛰어들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당 강경파에 대한 추의원의 ‘선 긋기’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신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추의원의 개인적 성향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보다는 지역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추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광진구(을). 호남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전통적인 민주당 표밭 중의 하나다. 내년 총선에서 호남표를 버리고 젊고 개혁적인 30∼40대 지지층만을 겨냥하는 득표전략으로는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적 개혁신당보다 통합형 개혁신당이 당내 대세를 형성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개혁적 세력을 흡수 통합하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인 신당의 방향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

    그런데 갑자기 신당 강경파가 비공식 신당추진기구를 띄우고, ‘워크숍’을 강행하면서까지 구주류와 세 대결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그건 통합신당이 당초 자신들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통합신당으로는 구주류로부터 당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아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 개혁세력들과 함께 준비해온 노무현당으로의 전환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주류가 대선 직후부터 개혁신당과 함께 인적청산 문제를 강도 높게 들고 나온 것은 서둘러 당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나름의 비책이었다. 동시에 내년 총선에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켜 전국정당이자 다수당을 차지해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주도해가려는 다목적 포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주류가 세대교체와 발전적 당 해체를 통한 개혁신당을 추진한 것은 지난 대선 직후부터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개혁성향 의원 23인은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아니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해온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라고 선언하고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 있는 세력과 인사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인적 청산론을 들고 나왔다.

    급선회 거듭한 신주류 강경파

    당시 신주류는 사실상 민주당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했다. 분당 사태까지 치달았던 신·구주류의 갈등은 청와대의 개입으로 봉합됐다. 당 개혁특위에서 개혁안을 마련해 당 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었던 것.

    그리고 한대표 등 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 체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서로에게 남긴 감정적 상처가 쉽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

    사실상 이때부터 양측은 평행선을 달리며 ‘분당’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는 와중에 주도권 다툼은 점차 심화돼갔다.

    당 개혁특위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당 개혁안’의 막판 조율과정에서 양측은 결국 속내를 드러냈다. 당 개혁안의 내용보다 내년 총선까지 당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임시지도부 구성 문제로 정면 충돌한 것.

    당초 구주류측은 개혁안 가운데 지구당위원장제 전면 폐지, 임시지도부 구성 등에 대해 반대입장을 피력했다가 조건부 수용입장으로 한발 물러섰다. 임시지도부 구성은 조기전당대회를 조건으로,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는 총선 6개월 전 위원장 사퇴, 2∼3개월 후 공직후보 국민경선이라는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신주류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시지도부를 구성해도 기간당원 육성 등 최소 3∼4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6개월 후에 전당대회를 할 수 있다”며 현 지구당위원장들의 기득권 포기와 개혁안 원안통과를 주장하고 나선 것. 이에 구주류는 “현역 의원이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면 사실상 ‘무장해제’ 당하는 셈인데, 임시지도부 기간이 길면 당 주도권을 잡고 ‘물갈이’를 할게 뻔하지 않느냐”며 반발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4·24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고, 민주당이 또다시 참패하자 신주류 강경파는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개혁안 협상을 포기한 채 당초 목적했던 독자개혁신당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몇 개월 사이에 상황은 대선 직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구주류가 노무현 정권의 첫 개각과 각 부처 인사 결과를 가지고 ‘호남소외론’을 들고 나오면서 호남민심 이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주류 강경파들의 ‘개혁신당론’에 동조하려던 호남지역과 호남표가 많은 수도권 지역구의 의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노무현 신당, ‘호남탈색’ 모험은 시작됐다

    민주당 신당 추진파 의원들이 5월초 개혁신당에 대해 이상수 사무총장(맨 왼쪽) 주재로 논의하고 있다.

    또 5월에 접어들면서 구주류는 ‘통합신당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개혁신당론’에 맞불을 놨다. 김근태 이창복 의원 등 재야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주장해온 ‘통합신당론’에 구주류 및 중도파 의원 중 상당수가 지지하면서 신주류가 추진하던 ‘개혁신당론’은 힘이 빠졌다. 신주류의 인적청산 문제도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5월7일 노대통령과 정대철 대표와의 독대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당의 방향에 대해 정대표의 보고를 들은 노대통령이 자신의 생각도 조심스레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주목되는 변화가 시작됐다. 신주류 강경파 내에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천정배 의원은 다음날 이른바 ‘끝장 토론’으로 일컬어졌던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개혁신당은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천의원은 또 개혁당 김원웅 대표를 향해 일정한 거리감을 나타냈다.

    지난 대선 직후 그리고 4·24 재보선 패배 직후 ‘민주당 사망선고’를 내리고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인적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개혁신당은 민주당뿐 아니라 모든 세력과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함께 가자는 것”이라며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다”고 한층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당내에서는 신주류 강경파가 호남민심을 의식해 또다시 분당불사형 개혁신당에서 통합신당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잇따랐다.

    재야운동권 출신 의원의 한 측근은 “천정배 신기남 의원의 행보와 발언은 원칙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분당까지 고려했으나 당내에 세가 적고, 정동영 의원 등 일부가 반대해 결국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그러던 5월11일 저녁, 신주류 강경파와 온건파, 중진 그리고 친노 원외인사 등 29명이 심야회동을 통해 신당 추진을 위한 당내 비공식기구 구성방침에 전격 합의하면서 ‘세 대결’이라는 의외의 강수를 뒀다.

    신기남 의원측 한 관계자는 이날 합의에 대해 “개혁신당을 반드시 추진한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며 그 배경에 대해 “이번에 못하면 ‘신당’은 영원히 물 건너간다는 위기감 속에서 강행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비장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끝까지 민주당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분당까지 불사하고 있음을 전했다.

    실제로 신주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개혁신당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남민심을 등에 업은 구주류의 당내 영향력은 갈수록 커갔다. 신주류는 특히 자신들이 밀어낸 한화갑 전 대표를 이제는 붙잡아야 할 입장이 돼버렸다. 한 전대표는 호남민심을 잡을 수 있는 상징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주류도 이에 12일 의원총회를 소집, 중도파까지 포함해 40명의 세를 과시했다. 외유를 떠났거나 지역구에 내려간 의원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의 인원이 모인 것은 구주류의 세가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평가를 낳았다. 이날부터 신·구주류간 세 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신주류 강공은 예정된 시나리오?

    구주류에서는 이번 신주류의 돌출행동을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의 ‘잡초정치인 제거론’ 발언 이후 노대통령과 정대표의 독대, 그리고 5월9일 이강철 정무특보의 대구시지부장 직무대행 내정, 같은 날 부산정치개혁추진위 발족 등 일련의 상황이 마치 사전에 준비돼 있던 것처럼 전개됐기 때문이다.

    구주류는 또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등 강경파 3인방과 자주 접촉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유수석이 이들 신주류와 자주 어울렸다는 사실은 민주당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구주류인 한 의원은 “정무수석은 자신의 호불호를 떠나 여러 의원들을 만나서 때로는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하고, 반대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그런데 유수석은 신주류측 의원들만 만났다”며 “그들이 원하는 개혁신당을 위해 뭔가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한편 당 일각에서는 신주류가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면서 인적청산 대상으로 특정인 몇 명을 지목, 구주류측과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특정인 몇 명만 정치‘2선’으로 물러나면 나머지 민주당 의원이 모두 합류해도 상당 부분 호남색이 탈색돼 새로운 신당으로서의 색깔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고, 개혁신당의 명분도 선다는 것이다. 일종의 타협점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구주류측은 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과연 민주당 신·구주류는 신당을 놓고 분당사태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워크숍 준비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어디론가 바삐 나서는 천정배 의원을 잠시 만났다.

    -분당으로 가는 겁니까.

    “왜 분당으로 갑니까, 분당으로 가길….”

    -구주류에서는 이제 지쳤으니 나갈 테면 빨리 나가라는 분위기던데요.

    “나가기는, 누가 주인인데.”

    -그럼 분당 사태는 없는 건가요

    “장래를 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단정지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상황이 틀려지는데 자꾸 말을 바꾸는 꼴이 되는 것 아닙니까.”

    -소위 인적청산 대상자로 지목되는 구주류 정치인들이 2선으로 물러나면 상황이 좀 달라지나요.

    “그 분이 누구든 거론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든 기득권 포기하고 같이 신당 만들자는 겁니다. 이런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 가자는 것이죠.”

    천의원은 이날 되도록 말을 아꼈다. 다만 “단정지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로 개혁신당을 위해서는 분당 등 모든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음을 시사했다.

    “호남사람들, 더 이상 어떻게 하란 말이요”

    이에 대해 구주류는 나름의 전의를 불태우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훈평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신주류 강경파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민주당 사수’ 의지를 거듭 밝혔다.

    -신주류가 준비한 개혁신당 워크숍에 참석할 건가요.

    “좀 전에 이해찬 의원이 와서 워크숍 참석을 부탁했는데 거절했어요. 원 살벌해서…. 선혈이 낭자하니 어쩌니 하는데 그런 데를 어떻게 가겠습니까.”

    -신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때 신당이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민주당은 50년 동안 이어온 전통 민주개혁 세력입니다. 정책에서도 흠잡을 것 없는 정당이에요. 우리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또다시 정권을 재창출했습니다. 지금도 국민 지지도가 한나라당보다 높아요.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노정부를 지원해주고 끌고 나가야 할 입장이지요. 그런데 신당이다 뭐다 하면서 이렇게 표류하고 있으니 정말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신주류가 왜 신당을 띄운다고 보십니까.

    “당 주도권 잡기 아닌가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지금 당 개혁안이 다 돼 있습니다. 상향식 공천, 지구당위원장직 폐지 등 신주류가 요구한 그대로 돼 있어요. 다만 임시지도부만 합의가 안 됐죠. 임시지도부는 말 그대로 전당대회를 하기 위한 지도부니까 전당대회 준비기구로 만들어서 전당대회를 잘 치르면 돼요. 그런 데도 신주류들은 임시지도부를 통해서 사고지구당에 조직책을 임명하는 등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고 하니까 우리가 반대하는 거죠.”

    -그럼 신당 이외에 지역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모든 정당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 이름을 바꾸고, 통합도 하고 그랬죠. 그런데 아무리 인위적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됐어요. 국민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노대통령은 영남사람입니다. 호남사람들이 대통령 만들어줬어요. 영남사람들은 표 안 줬어요. 호남사람들보고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나머지는 영남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호남사람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손해만 보고 희생해야 하는 겁니까.”

    꽃 놀이패 쥔 한화갑 전 대표

    -어찌 됐든 신당은 당내 대세 아닙니까.

    “나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 공식기구에서 논의하자는 이야기지요.

    -요즘 호남민심이 어떻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당을 흔들면서부터 잘못됐어요.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개혁당에 가서 손잡고, 신주류 의원들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노무현 개인의 승리고 국민의 승리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원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했는지 아십니까.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광주 5·18 기념식장에 서로 앞다퉈 참석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결국 분당으로 갈 수도 있는 겁니까.

    “나갈 사람이 나가는 것이지 우리야 나갈 이유가 있습니까. 신당을 해도 민주당이 중심이 돼서 외부 세력과 합치는 방법으로 외연을 넓히는 신당은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주당의 법통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신주류와 구주류. 그 사이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사람들은 통합신당론을 주장했던 재야운동권과 중도파다. 양측의 세력싸움은 이들에게 결국 어느 쪽이든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과 개혁의 분열은 곧 공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이들로선 여간 고민이 아니다. 재야운동권 세력의 중심축인 김근태 의원은 “일단 논의에 참여해 신주류 내부의 모험주의적인 분당형 신당주의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브레이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도파를 이끌고 있는 한화갑 전대표는 신주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배기선, 설훈 의원 등 측근 의원들을 신주류 모임에 참여시키면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요즘 당내에서는 한 전대표를 두고 ‘꽃 놀이패’를 손에 쥐었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당 주도권 싸움에서 신·구주류 양측 모두에게 한 전대표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신주류의 ‘신당행’ 열차는 하루가 다르게 가속도가 붙어가고 있다. 이제 중도파의 ‘브레이크’로는 멈출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모습이다. 정치생명을 내건 신주류의 도전과 모험이 시작됐다.

    이들이 호남 지지기반을 장악하지 못한 채 소수 개혁세력으로 전락할지, 아니면 전국적인 개혁세력으로 재탄생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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