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국내 조폭 업고 총기 밀매·매춘·카지노사업 손댄다

한국 속의 러시아 마피아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사진: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3-05-23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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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17일 부산 영선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서 러시아인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총기 살인’이었던 까닭에 각 언론에서는 “러시아 마피아가 국내에서 세력다툼을 벌일 만큼 활개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과연 러시아 마피아는 부산을 장악한 것일까.
    국내 조폭 업고 총기 밀매·매춘·카지노사업 손댄다
    5월8일 부산역 맞은편의 초량동 외국인상가. 원래는 중국인 화교들이 많이 살았다는 1km 남짓한 거리는 1990년대 이후 부산을 드나들기 시작한 러시아인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장사들이 옷가지와 생필품, 술을 사기 위해 거리를 누비고, 가게에서 고용한 고려인 중년 여성들은 이들을 상대로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한국말 대신 러시아어와 영어로 돼 있는 간판, 금발과 갈색머리 사람들로 넘치는 거리는 흡사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시장 골목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깔리자 거리는 다시 한번 변신했다. 밤 11시, 거리 곳곳에서 ‘발티카’ ‘루슬란’ 같은 네온사인을 반짝이는 외국인 전용 술집 앞에서 늘씬한 금발 미녀들이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 끌고, 다른 한편에선 한국 아줌마들이 “러시아 아가씨 있어요” 하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멀리 골목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부산 동부경찰서’ 표지를 단 승합차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다들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술집 문을 열자 러시아 노랫가락이 귓전을 때린다. 익숙한 솜씨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아가씨 례나 투르니예바(27)는 하바로프스크 출신이었다.

    “러시아 마피아가 부산에 있는 것 같냐고요? 글쎄요, 가끔 그런 일은 있어요. 갓 스물을 넘겼을까 싶은 젊은 애들이 웬 사진을 들고 다니며 ‘이 사람 본 적 있느냐’고 심각하게 묻곤 하죠. 경찰 아니었냐고요? 에이, 내가 경찰하고 양아치도 구분 못하겠어요?”

    그러면서 례나는 함께 기거하고 있다는 동료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유난히 돈을 잘 쓰는 40대 아저씨와 사귀는친구를 부러워하던 참이었는데, 어느날 그 남자가 “쫓기고 있어서 부산을 떠나야 한다. 다신 못 볼 것 같다”며 전화를 하곤 연락이 끊겼다는 것.



    “뭐, 마피아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죠. 그렇지만 이 동네에 러시아에서 도망치듯 온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돈을 못 갚았거나, 일을 저질렀거나. 그게 아니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잖아요.”

    “러시아인 있는 곳엔 그들도 있다”

    골목 뒤편 으슥한 노천술집에는 초라한 차림의 두 50대 러시아인이 익숙한 동작으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 ‘발로자’라고 부르라고 할 뿐 끝내 성을 가르쳐주지 않은 중년남자는 5년 전 선원으로 처음 부산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자주 드나들다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고려인 여자와 마음이 맞아 아예 주저앉게 됐다는 것. 불법 체류자였다.

    “마피아가 도대체 뭐야. 배 타고 왕게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다 마피아들이야. 그거 잡아서 그냥 일본이나 한국에 파는 거 러시아 법 위반이라고. 그러다 싸움 붙으면 바다에서 주먹질도 하고 칼부림도 하고 총 쏘는 놈도 있고, 그게 마피아지 별거야. 그렇게 따지면 이 술집에 오는 친구들 중에도 그런 사람 많아. 길에서 손님 끌고 있는 저 아가씨들 누가 데려왔겠어. 꼭 양복 입고 시가 피고 카지노 다녀야 마피아야?”

    새벽 한시. 여관 현관을 나서는 러시아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기자라고 말하자 재미있다는 듯 쳐다본다. 당연히 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순순히 인터뷰에 응한다.

    “한 달에 100만원쯤 남는 것 같아요. 일이 매일 있는 건 아니니까요. 3주는 서울에 가 있고 한 주는 부산에 내려와요. 여기 고향친구가 있거든요. 일은 아줌마들이 핸드폰을 걸어 알려주죠. 나는 무조건 10만원만 받아요. 아줌마가 중간에서 얼마를 챙기든 자기 능력이죠. 그게 일하기 편해요.

    어디에 감금당하지 않냐고요? 아니요, 그냥 내가 돈 벌고 싶어서 나오는 거예요. 아, 들어올 때는 러시아 중개인에게 400달러 줬어요. 속았다는 생각은 들죠, 한국 가면 한 달에 그 만큼씩 번다고 했으니까. 마피아요? 있겠죠. 러시아 사람 있는 곳에 마피아가 없을 수는 없어요. 하다못해 돈 빌려줬는데 안 갚는 사람 있으면 대신 받아내 줄 사람은 필요하잖아요.”

    한동안 거리를 헤매고 다니지만 ‘마피아’라는 개념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마피아’라는 말과 러시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마피아’라는 말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는 것. 러시아 연해주에 10년째 머무르고 있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한국에서 마피아라 하면 곧 고도로 조직화한 범죄단체를 의미하지만, 러시아에서 마피아는 범죄자든 화이트 칼라든 ‘불법·탈법을 불사하는 자기들만의 이너서클’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 마피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살인과 매춘알선, 청부폭력을 저지르는 깡패와 범죄자들의 그룹은 두말할 것 없는 범죄조직이죠. 이들이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 합법회사를 차린다 해도 여전히 범죄조직입니다. 그러나 경제마피아나 관료마피아, 정치마피아 등은 조금 개념이 다릅니다.

    경제마피아는 합법사업을 하면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도 있겠지만 소수겠죠. 그러나 사실 구 소련 붕괴 이후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이런 ‘경제마피아’식으로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런 의미에서 이들을 ‘시장경제의 개척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관료마피아나 정치마피아도 이와 비슷하다고 이 사업가는 전한다. 자기들끼리 형성된 인맥과 동지애를 바탕으로 서로 탈법을 알선하고 눈감아주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일컫는다는 것. 우리식 혈연, 지연, 학연이 좀더 나쁜 방향으로 발전해 만연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분석일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을 제어하거나 감시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로 치면 경찰이나 감사원, 국세청, 정보기관도 모두 이런 식의 마피아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법을 지키고 제대로 세금을 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죠. 아예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합법적인 사업을 하다가 결국은 마피아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요. 거리 총포상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을 만큼 총기가 흔해서 문제가 생기면 ‘법보다 가까운 총’을 쓰고 싶은 유혹도 크죠.”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압수한 총기류만 24만정이었다.

    민간기업 3분의 2가 관련

    알려진 바와 같이 고도로 조직화된 ‘진짜’ 러시아 마피아는 1980년대 말 구 소련 붕괴과정에서 탄생했다. KGB와 공산당, 군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무기를 손에 쥔 이들은 탁월한 조직력과 끈끈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러시아 전역에 걸쳐 세력을 확보했다. 특히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러시아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국유재산 빼돌리기, 군대무기 밀반출 등을 통해 지하경제를 장악해 갔다.

    이들 러시아 마피아는 홍콩의 삼합회나 미국 마피아와 달리 단일한 계보나 통일된 조직체계가 없는 것이 특징. 주로 도시나 민족별로 인간관계가 있는 전직 군인이나 기관원들이 ‘알음알이’로 모이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러시아 마피아 사정에 정통한 현지 관계자들은 “우리식 조직폭력배라기보다는 ‘범죄자들의 인맥’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러시아 내에는 이런 식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조직이 8000여 개에 달하고, 관련인원만 12만명을 넘어선다는 것이 러시아 당국의 추산이다.

    여러 마피아 중 우리식 ‘범죄조직’ 개념에 맞아떨어지는 것으로는, 러시아 지하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야포치크’라는 인물이 이끄는 집단이 있다. 이런 거대 마피아 조직은 크게 다섯 개 계층으로 구성된 조직체계를 갖고 있다. CEO격인 ‘대부’와 한 지역을 총괄하는 이사에 해당하는 ‘보스’, 나름의 인간관계를 통해 조직원을 관리하는 중간간부 역의 ‘권위자(압토리테트·Avtoritet)’, 그 밑의 조장(세스테루키·Cesteruki), 행동대원(보르타·Vorta) 순이다.

    이들 중 ‘보스’는 해당 지역에서 합법적인 신분을 갖고 유지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 ‘법률 속의 도둑(보르 브 자코녜·Vor v Zakony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 경찰과 언론들은 이러한 등급분류를 다른 조직에도 적용시켰다. 지난 4월17일 부산에서 피살된 바실리 나우모프(54)에 대해서는 언론에 따라 ‘보스’급과 ‘권위자’급이라는 보도가 엇갈렸다.

    이들 조직화된 마피아들은 풍부한 자원과 넘쳐나는 실업자들, 혼란스런 법체계를 악용해 급성장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합법적인 기업을 운영하며 신분을 위장하고 마약 거래, 위조지폐, 무기 밀매, 자금세탁 등의 범죄를 꾸미는 것이 일반적.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안보국(FSB)의 추산에 따르면 총 민간기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만여 개 회사, 전체 은행의 30%, 총 GDP의 40%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러시아 마피아가 앞에서 설명한 ‘야포치크’파처럼 거대한 이권사업에 개입하는 대규모 범죄조직은 아니다. 단순한 ‘동네 양아치’ 집단, 지역 잡범들의 무리도 러시아 마피아라고 불린다. 또한 합법적인 기업을 운영하며 사업을 펼치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피살된 바실리 나우모프의 경우가 전형적인 케이스. 죽은 나우모프와 친분이 있었다는 한국 기업 러시아 현지지사의 한 직원은 “수산업 자체는 합법이지만 불법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인물을 제거하거나 영역을 침범한 경쟁상대와 맞서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하는 ‘매우 거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국내 조폭 업고 총기 밀매·매춘·카지노사업 손댄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 ‘러시아 텍사스 거리’의 밤 풍경. 외국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러시아 마피아의 국내유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관련기관은 크게 경찰과 검찰,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세관 등이다. 그러나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는 국제범죄의 경우는 비교적 해외정보 수집폭이 넓은 국정원의 몫이 클 수밖에 없다. ‘신동아’는 국정원이 199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들과 접촉해 러시아 마피아의 현황, 국내 폭력조직과의 연계설 등에 관한 최신첩보를 입수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국 거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의 관련정보는 그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 또한 24시간 운영하는 국제범죄상담소와 신고전화 111을 통해 국내 곳곳에 묻혀있는 국제조직범죄의 징후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정원이 파악한 러시아 마피아 관련 첩보는 대체적으로 경찰이나 일반 시민들의 판단과 일치하지만, 견해차가 있는 부분도 일부 있었다.

    우선 우리나라에 지역적으로 가까운 극동지역 마피아들이 주로 드나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경찰과 국정원 모두 이견이 없다. 특히 물류비용이 적게 들어 러시아 선박의 출입이 잦은 항구도시 부산은 이들에게도 지리적, 경제적으로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우선 일반 선원이나 보따리 무역상이 많은 탓에 러시아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교통편이 많다는 것.

    국정원에서는 극동지역을 대표하는 마피아로 조직원 250명 규모의 ‘토리폰’파와 300명 규모의 ‘스포츠맨그룹’을 꼽고 있다. 그밖에도 270여 개의 조직이 이 지역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고 국제범죄정보센터측은 밝혔다.

    이들이 현재 부산을 드나들며 벌이는 사업은 크게 수산물 밀수와 중고자동차 수입. 수산물의 경우는 러시아정부에서 허용한 쿼터 이상을 잡아 한국에서 팔거나 아예 공해상에서 배끼리 수산물을 거래해 한국으로 들여오는 형태다. 중고자동차의 경우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본국 대도시 중고시장에 넘긴다. 실제로 극동지역 대도시에서는 전체 차량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과 일본 중고차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사업 모두 한국 으로서는 손해날 게 없다는 점. 오히려 싼값에 수산물을 수입하거나 중고차를 쉽게 처리할 수 있어 국내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해 러-일 거래규모만 3억~5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수산물의 경우, 지난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어업협정이 갱신되면서 한국으로 많은 물량이 몰리고 있다고 국정원측은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 국내법 상 어업협정에 정해진 쿼터 이외의 물량을 외국에 파는 것은 불법인 데다 30%에 달하는 수출관세를 탈세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들이 없으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르는 명태와 게, 바다가재 등은 모조리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수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수산물을 밀수하는 이들이 모두 마피아는 아니지만, 이들의 ‘불법어로’ 때문에 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전언이다.

    아직은 ‘잔챙이들’ 용돈벌이 수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측은 “꼭 조직화된 형태가 아니어도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고 말한다. 1994년에 하바로프스크 출신 건달들이 부산의 한 수출회사의 미수금 해결사로 개입했다 적발된 것이 그 시초. 이들은 특히 당시 부산을 장악하고 있던 국내조직 칠성파에 마약과 총기밀매를 제의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듬해 7월에는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부산으로 AK소총을 밀반출하려는 마피아조직을 적발해 이를 우리 관계기관에 통보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이 지역에 심어둔 정보원들도 “한국의 모 조직이 이쪽에 무기밀매를 제안했다”는 보고를 심심찮게 보내온다고 한다. 개인 차원에서 총기를 들여오다 적발된 사례는 1990년 러시아 선박이 드나든 이후 40여 차례에 달한다.

    1999년 9월에는 위장무역회사를 차려놓고 채권해결에 개입한 트로피모프 발레리(41)가 부산경찰에 적발되어 구속됐다. 러시아 당국에 신병이 인도된 발레리에 대해 국정원은 무역업을 가장한 극동지역 마피아 조직 ‘샤텐로브스카야(일명 샤텐)’의 중간보스로 파악하고 있다. 이후 2001년 9월 마약밀매와 불법체류자 일본 밀항 알선 등의 혐의로 체포된 블라디미르 레세예프 등 씨먀 바소(바소 패밀리) 조직원 여덟 명, 지난해 2월 러시아여성의 매춘을 알선한 혐의로 검거된 블라디보스토크 출신 러시아인 등 부산지역에서는 극동지역 출신들의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 범죄 중 대부분은 선원이나 하급 조직원들의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부산시경 폭력계 고행섭 주임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부산에 드나들면서 우범자들이 섞여 들어와 일을 벌이지만, 아직 마피아 전체가 개입된 계획적인 조직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거나 부산을 거점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마디로 ‘마피아 조직원’들은 있을 수 있지만 ‘본류’는 없다는 것.

    부산 시민들이나 초량동 텍사스촌 일대의 상인들, 부산에 오래 머물고 있는 러시아인들도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나우모프 피살사건 이후 쏟아진 ‘부산은 러시아 마피아의 천국’이라는 식의 보도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부산에 6년째 머물며 러시아 선원들을 상대로 술집 영업을 하고 있는 안드레이 필랴노프(56)씨는 실제로 조직화된 마피아가 한국에 들어와 있다면 부산 시내나 텍사스촌 일대가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동아일보’ 사회2부의 석동빈 기자는 “텍사스촌에 가면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다는 일부 보도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한다. 지난 10년간 수없이 계속된 경찰의 함정수사와 기자들의 함정취재에도 불구하고 꼬리가 밟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총기가 반입된다 해도 극히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건네지는 형태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국정원 또한 이러한 시각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러시아 마피아들이 점차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국내활동은 ‘잔챙이들’의 용돈벌이 아니면 ‘씨를 뿌린 정도’지만, 언제 큰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분석이다. 국정원은 특히 러시아 마피아와 국내범죄조직 간의 연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조직의 러시아 진출이 먼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내조직의 보스들이 러시아에 건너가거나 반대로 러시아 마피아 조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와 접촉하고 있다는 징후. 아직까지 개인적인 차원의 친분일 뿐 조직적으로 연계해 사업을 실행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부산에서 칠성파 조직원 김모씨, 영도파, 신20세기파 등의 조직원들이 ‘선 만들기’를 시도하는 정황이 국정원 레이더에 포착되기도 했다.

    국내 조직원들이 모스크바 셰레메체보공항에 도착하자 러시아 마피아 조직원들이 ‘번쩍번쩍한’ 차량으로 호위를 하는 광경이 우리측 정보원들에 의해 확인된 일도 있었다. 거꾸로 이들 안면이 있는 러시아 마피아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국내 조직들 또한 룸살롱에 ‘2차’까지 풀 코스로 접대하는 게 이미 관행이 된 상태. 지난해에는 룸살롱 접대부가 마음에 든 마피아 조직원이 다음날 이 접대부를 다시 불러내 서울 강남의 한 명품전용 백화점에서 4500만원짜리 시계를 사준 일도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국내 유입보다 한국 폭력조직의 러시아 진출이 먼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도 확인됐다. 주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와 연해주 및 사할린 등 극동지방에 세워진 카지노에 국내 조직들이 일정 지분을 투자했다는 첩보를 국정원이 추적중이라는 것. 러시아에서는 마피아의 개입이나 비호 없이 카지노를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체첸 쪽 보스들이 몇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사실이 우리 관계기관에 포착되기도 했다.

    들의 국내 밀입국과 이를 통한 매춘알선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시장조사’차 한국에 왔던 이들은 국내 폭력조직과 모임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접촉상대는 최근 들어 주가를 올리고 있는 40대 주먹계 거물 Y씨. Y씨는 국내 ‘러시아 인터걸’ 알선루트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모임은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국내조직과 러시아조직 사이에 이익분배와 이권을 둘러싸고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관계기관은 추측하고 있다.

    국내 조폭 업고 총기 밀매·매춘·카지노사업 손댄다

    지난 4월 부산 감천항 중앙부두 세관 검색대에서 세관원들이 러시아인 총기피살사건 용의자 몽타주와 출국 선원들의 얼굴을 대조·검색하고 있다.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와 술집 접대부나 매춘부로 일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해 평균 6만 여 명 입국하는 러시아인들 가운데 매춘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3개월짜리 C3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인원만 대략 3000여 명. 러시아 마피아나 그 하부 조직원들이 국내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 중에 현재까지 ‘그나마’ 돈이 되는 것은 이들을 밀입국시키거나 업주들을 대신해 관리하는 일이다. 특히 러시아 현지에서 여성들을 모으거나 비자발급을 위한 가짜서류를 만드는 작업이 러시아쪽 조직원들의 몫. 이 과정에 앞서 등장한 Y씨처럼 국내조직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개입해 양측의 연결고리 노릇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측 관계기관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한국이 러시아 마피아들의 자금세탁 루트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관계기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한 고려인 출신 하바로프스크 마피아 중간보스는 사할린 교민들이 영구 귀국해 살고 있는 안산 귀향단지에 자신의 장인과 장모를 이주시켜 놓고 이를 이유로 심심찮게 서울에 드나들고 있다. 문제는 그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은행계좌를 서울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가 우리 정보당국에 의해 확인됐다는 것. 관계기관은 엄청난 현금을 갖고 호주에 입국하려다 추방당한 전력이 있는 이 중간보스가 이번에는 서울을 자금거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

    5월8일 오후 초량동 텍사스촌에서 5km 남짓 떨어진 감천항. 가파른 언덕 빼기에서 바라보는 항구는 공휴일을 맞은 탓인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수산물 냉동창고와 선박수리공장이 줄지어 서있는 부산 남쪽 끝의 이 항구에는, 연해주 도시에 적을 두고 북태평양 일대에서 조업하는 러시아 배들이 하루 평균 80~100척, 전체 선박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을 드나드는 러시아 선원들이 대부분 감천항에 머무는 까닭에 이 항구의 여덟 개 게이트는 ‘러시아인 출입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구라는 지리적 숙명?

    근무중인 게이트 초소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4월17일 총기살인사건 용의자들의 몽타주가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의 러시아 선원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면서 “바지주머니 속에 권총이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총기살인사건 이후 한층 강화된 몸 수색에 장난을 쳐보자는 심산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세관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항구에 정박중인 선원들의 경우 선원수첩과 상륙허가서를 제출하면 횟수 제한 없이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상륙허가서는 입항수속 대리점에서 선원명단과 신원사항을 제출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수배여부 등 특이사항을 체크한 뒤 발급해준다. 총기를 포함한 금지물품을 들여오다 적발되는 경우에는 바로 물품을 압수하고 본부세관 조사를 거쳐 강제 추방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검찰에 넘겨 기소하는 경우도 있다.

    감천항 출입선원의 검색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경남세관 감천항 사무소의 근무인원은 총 70여 명. 게이트 당 두 명의 세관요원이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서고, 10명이 맞교대로 순찰선을 이용해 관할구역 내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를 감시한다. 총기살인사건 이후 “감천항이 총기 반입루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본부에서 추가로 근무인원을 파견했다지만 10km에 달하는 감천항 전역을 20명 남짓의 게이트 요원들이 감시하기에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부산경남본부세관 관계자의 토로다.

    “솔직히 한밤중에 몰래 철조망 너머로 가방을 던져놓고는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후에 다시 주워가면 무슨 수로 잡아내겠습니까. 레이더로 감시한다고는 하지만, 다대포 먼 바다에서 고깃배를 타고 물건을 받아와 늘어서있는 작은 포구로 들어오면 추적할 방법이 묘연해요. 지리적 특성상 ‘완벽’한 감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뜨내기들이 오가는 항구도시의 숙명일까. 총기살인사건을 계기로 국제범죄수사를 강화해야 한다며 한바탕 소란을 겪는 동안 부산은 어느새 국제범죄조직의 진입루트로 낙인 찍힌 듯했다. 과연 지금도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선가 거대한 범죄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는 것일까. 아직 ‘러시아 마피아의 천국’이 아니라는 점은 사실인 듯하지만, 범죄에 연루된 도망자들의 상륙시도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 또한 분명했다. 용두산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밤은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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