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정밀진단’ 북한 후계 구축 프로세스

연말까지‘후계자 지명 → 조직지도부장 임명 → 당 중앙위 충성결의’

  • 이기동│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kdlee011@nate.com│

    입력2009-03-10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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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강성대국 대문 진입’을 공식화한 북한으로서는 그전에 후계체제 구도를 완성할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3~4년간 압축적으로 진행될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1970~90년대 김정일 옹립과정으로부터 유추, 전망해본다.
    ‘정밀진단’ 북한 후계 구축 프로세스

    1982년 8월 평양의 한 농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고(故)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난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국내외의 최대 화두였다.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 한 사람에게 당·정·군의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체제의 속성상 그의 건강이상으로 인한 권력 공백은 정권과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지속가능성, 즉 북한 급변사태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를 비롯한 권력구조의 향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계체제 등장은 단순한 권력교체의 의미를 넘어 북한체제 전반의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관련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심각한 건강문제를 겪은 경험은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후계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2005년 12월과 2006년 10월 각각 ‘후계 논의 금지’ 지시를 내리고 영구집권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후계체제 구축의 안정적인 순항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은 20년 가까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지만,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 후계가도를 닦았던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과 달리,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후계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조성과 정지작업을 손수 지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둘째,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 대문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이미 실현된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에 기초해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단계 정도로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3년 남짓한 기간 안에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가시적인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어렵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당국이 2012년 말에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이 실패했다고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2012년에 가서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내세워 혁명위업 수행의 가장 중차대한 과제인 혁명위업 계승문제를 완수했다고 선포하고, 이를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의 달성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중대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올해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2월13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후계자로 결정된 지 35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물밑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신년공동사설은 “오늘 우리는 당의 혁명위업수행에서 중대한 력사적 계선에 서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 → 김정일 후계 과정은

    북한은 ‘혁명위업 계승’ 문제를 당의 ‘혁명위업 수행’에서 가장 중대한 임무로 인식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일찍이 1974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을 ‘혁명위업 수행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김일성의 선견지명의 결과라고 선전해왔다. 특히 신년공동사설에서 밝힌 ‘력사적 계선’이란 혁명역사 발전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중대한 계기에 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답습하되 그 방식을 집약하고 기간을 단축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을 수령론과 후계자론으로 정당화하고 규범화했으므로 그 구속력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후계체제 준비단계(1972년 10월~1974년 2월)다. 이 기간은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한 가운데 후계자 결정을 위한 내부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 단계였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혁명위업 계승문제와 세대교체를 결부시키는 작업 △헌법개정을 통한 새로운 권력구조 형성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한 후계체제 구축 기반 조성 △후계자가 활동할 특정 권력기구의 강화 △후계자의 핵심요직 임명 같은 조치가 단행됐다.

    둘째는 후계체제 구축단계(1974년 2월~1980년 10월)다. 이 기간은 후계자를 지명하고 후계자의 혁명업적을 축적하는 단계였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한 후계자 지명 △후계자의 통치이데올로기 해석권 장악 △당면 과제에서의 업적 과시 같은 조치가 진행됐다.

    셋째는 공고화단계(1980년 10월~1994년 7월)다. 이 기간은 △후계자 공표 △인격적 리더십 강화 △주체사상의 체계화 같은 조치가 이뤄졌다.

    3월 최고인민회의 선거 주목해야

    이러한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에 비추어보면, 올해는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핵심적인 준비단계가 될 전망이다. 우선 “수령의 후계자는 수령이 선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김정일은 비밀리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후계자를 당 정치국 또는 비서국의 핵심 요직에 임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중을 밝힐 것이다. 비서국의 경우 선군정치하에서 그 권능이 막강해진 군대를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조직지도부장직이 유력해 보인다. 이러한 김정일의 방침에 의거해 핵심 엘리트들은 비밀리에 당중앙위원회 결정서를 하급당에 회람시켜 전당 차원에서 후계자를 추대하는 결의문과 충성맹세문을 만듦으로써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이를 통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상달된 결의문을 근거로 후계자를 추대하고자 할 것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결정 지시가 당 조직지도부와 도당까지 하달됐다는 1월15일자 ‘연합뉴스’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전당적인 추대결의문 작성 등 추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직전단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비밀리에 후계자가 핵심요직에 임명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조만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돼 후계자를 추대할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북한은 후계자가 활동할 주요 정치무대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할 것이다. 당 비서국이 아닌 정치국에서 주로 활동한다면 정치국의 기능을 복원할 것이고, 국방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구를 주 활동무대로 한다면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3월8일 실시될 예정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와 4월 중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회의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 3대혁명소조운동과 같이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실천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전(全)사회 차원의 새로운 노력동원 조직을 만들어 후계자의 통치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2010년은 본격적인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단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비밀리에 개최해 후계자를 추대할 것이다. 그리고 후계자의 주도하에 선군사상을 김정일주의로 정식화하는 작업과 체계화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후계자가 통치이데올로기의 해석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선군사상과 실리주의를 결합해 후계시대에 맞게 선군사상의 지평을 확대할 수도 있다.

    선군사상 체계화의 경우에는 선군사상의 철학적 원리를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최대 관건이며, 주체사상의 틀에 끼워 맞춰 체계화 작업이 진행될 것이므로 주체사상의 체계화에 소요된 기간보다는 훨씬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학기술중시노선과 천리마정신에 근거한 노력동원운동을 창출해 후계자의 경제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후계자의 지휘하에 김정일의 선군영도업적을 찬양하는 다양한 우상화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이 기간에 후계자를 암시하는 새로운 호칭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혁명의 수뇌부’라는 호칭에 주목할 만하다.

    2012~2013년 초부터는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고화 단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7차 당대회를 개최해 후계자를 정치국 상무위원과 같은 당의 최고요직에 임명하거나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보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두 직책에 모두 임명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 당 규약상 군대에 대한 정치적 지도를 행사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최고사령관 지위는 후계자가 군을 완전한 장악할 때까지 김정일 위원장이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기 북한은 각종 선전수단을 동원해 후계자의 인격적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우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특히 김정철과 김정운의 경우는 모계혈통에 대한 우상화 차원에서 고영희를 ‘장군님에 대한 헌신과 자기희생의 화신’으로 만들고, 후계군(群)의 어린 나이를 상쇄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14세 당시 혁명업적을 부각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김일성이 14세 때인 1926년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고, 김정일은 14세 때인 1956년에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행군’을 조직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선전내용을 개발할 수 있다. 혁명에 서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all or nothing’ 게임?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과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는 후계체제 구축기간의 문제다. 20년이라는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기간은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여금 제도적 리더십과 더불어 인격적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는 이러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후계군이 절차적으로 부여받은 제도적 리더십을 확립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제대로 발휘되는 데 필요한 인격적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후계군의 어린 나이와 일천한 경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김정일 위원장의 인격적 리더십을 전수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는 취약한 인격적 리더십을 만회하기 위해 제도적 리더십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리더십 강화를 위해 핵심 측근들의 팔로워십(followership)을 적극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후계자의 리더십과 측근들의 팔로워십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세습과 집단지도체제가 혼합된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후계체제 구축 단계별 조치 내용
    단 계 조 치 내 용
    1단계(2009년) : 준비단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통한 핵심요직 임명(김정일 의중 표명)

    ·당중앙위원회 결정서 하급당 회람을 통한 추대결의문 작성 등 추대분위기 조성

    ·후계자의 정치활동 무대 강화(정치국 또는 국방위원회)

    ·전 사회 차원의 노력동원조직 형성
    2단계(2010~2012년) : 구축단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통한 후계자 추대

    ·후계자의 통치이데올로기 해석권 장악

    ·전 사회 차원의 새로운 노력동원운동 전개

    ·김정일의 선군영도업적 우상화 시도

    ·후계자를 암시하는 호칭 등장
    3단계(2012년~ ) : 공고화단계 ·7차 당대회 개최 통한 정치국 상무위원 또는 최고인민회의 개최 통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보임

    ·후계자의 인격적 리더십 강화차원에서 우상화 실시

    *단계별 시기구분은 중첩적이거나 소폭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이러한 혼합형 후계체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핵심 권력엘리트들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고지도자와 핵심 권력엘리트 간의 운명공동체로 맺어진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상 핵심 권력엘리트들은 공멸방지심리와 기득권 유지심리 차원에서 서로 투쟁하기보다는 구심점으로서의 후계자를 옹립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공유할 것이다.

    ‘정밀진단’ 북한 후계 구축 프로세스
    李基東

    1965년 충남 서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現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논문 : ‘김정일 현지지도에 관한 계량분석’ ‘신사고, 선군정치, 그리고 정책변화’ 외


    이런 맥락에서 최근 회자되고 있는 장성택의 김정남 후견설, 김옥과 김정철 형제의 알력설에 관해 좀 더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심 권력엘리트들은 1974년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결정 이후 9개월 만에 완료된 후계과정 여독(餘毒)청산 과정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일인지배체제하에서 줄서기의 위험성을 목격한 핵심 권력엘리트들이 후계구도를 두고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게임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끝으로 이 글은 김정일 위원장이 적어도 향후 5년 정도 건재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쓴 것임을 분명히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급격한 건강악화나 유고(有故)는 새로운 후계체제 구축의 양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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