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카이스트 입틀막’ 윤석열-신민기와 오바마-홍주영은 다르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미국이면 안 그런다? 몰라서 하는 소리!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4-02-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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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자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뉴스1]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자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뉴스1]

    “내가 한 행동이 어떤 것, 누구에 대한 업무방해인지, 그것이 표현의 자유로 용납되지 않는 수준의 범법행위였는지 궁금하다.”

    16일 카이스트(KAIST) 학위 수여식에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하고 퇴장당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19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장에서 ‘부자 감세 철회하라. R&D 예산 보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고성을 질렀다. 경호원들은 당장 그를 제지했다. 입을 틀어막은 후 팔과 다리를 들어 졸업식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신 대변인은 30분간 별도의 장소에 격리된 후 풀려났다. 일명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의 경위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대통령경호처의 ‘입틀막’ 경호는 잘못된 것이다. 이번 사례만이 아니다. 1월 18일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전주을)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경호처에 의해 입틀막을 당하며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경호 절차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면 대통령 근처에 온 사람들에게는 위협이 될 만한 무기가 없다. 대통령의 연설이나 발언, 동선을 방해한다 해서 얼굴을 짓누르며 입을 틀어막는 행동은 너무도 명백하게 폭력적이다.

    그런 식으로 보호받는 대통령이 과연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대통령경호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능적 안티’가 아닐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또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경호처의 경호 프로토콜은 분명히 수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끝낼 수는 없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처해 있는 철학적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호처가 입틀막을 한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입틀막 당한 사람에게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너무도 또렷이 보이는 경호처의 잘못과 달리 반대편의 오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오바마-홍주영, 윤석열-신민기는 다르다

    애석하게도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에 대한 논의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 MBC를 비롯한 몇몇 언론은 섬세해야 할 논점을 더욱 단순하게만 만들고 있다. 2013년 11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방해한 한국계 이민자 학생과 그에 대한 오바마의 대응을 근거 삼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보도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미국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현지시간 2013년 11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티 앤 옹 레크리에이션 센터(Betty Ann Ong Chinese Recreation Center)에서 당시 첨예한 이슈이던 이민법 개정을 주제로 오바마의 연설이 시작됐다. 오바마가 특유의 유려한 말솜씨로 청중을 휘어잡고 있을 때, 대통령의 뒤편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대통령님, 우리 가족은 19개월째 떨어져 있습니다!”

    연설 방해자의 정체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재학생 홍주영 씨였다. 당시 24세이던 그는 11세에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이른바 ‘서류 미비 체류자’ 신분이었다. 이민법 개정 문제의 당사자로서 본인의 절박한 처지를 호소하고, 대통령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목청을 높였던 것이다.

    오바마의 대응은 우아했다. 경호원들이 그 학생의 발언을 제지하거나 쫓아내게 하지 않았다. 흥분한 학생을 가라앉힌 후 연설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대통령님은 모든 서류 미비 이민자들의 추방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학생을 향해 오바마는 단호하게 답했다.

    “사실,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 모여 있죠.”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의 연설을 방해한 학생에게는 적어도 그의 처지에서 볼 때 ‘선 넘는’ 행동을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둘째, 오바마의 연설을 방해한 학생은 오바마가 좀 더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을 하길 기대하고 연설을 방해했지만 어쨌건 본인과 오바마를 ‘같은 편’으로 보고 있었다. 셋째, 오바마는 연설 방해자 학생을 오냐오냐해주지 않았다. 일단 상대방의 말을 어느 정도 들어본 후 그의 주장을 반박하며 본인의 취지를 청중에게 더 확고하게 설명했다.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으로서 말하건대, 나는 이 커뮤니티에 왔다는 것이고,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바마는 연설 방해자가 아무 말이나 제약 없이 하라고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위를 강조했다. 그런데도 삼권분립이 있기에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야 하고, 그러자면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이곳에 왔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을 소개한 국내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있는 전후 맥락을 알게 됐다. 오바마는 연설 방해자의 입을 틀어막지 않았지만 자신의 연설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방해자에게 대통령과 ‘같은 편’이라는 공감대가 있고 대통령의 연설 취지와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를 소재로 삼아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을 따름이다.

    윤 대통령의 연설을 방해한 졸업생 경우는 어떨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석사학위 취득 후 민간 영역에서 취업할 계획이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인해 당장 일자리를 잃거나 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가 꺼내든 피켓에는 R&D 예산 삭감뿐 아니라 ‘부자감세 반대’라는, 졸업식의 맥락과 무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입틀막을 당한 신 대변인은 윤 대통령을 본인의 같은 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마치 오바마처럼 “학생이 할 말을 해보세요”라고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까. 2013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처럼 연설 방해자가 자신의 아쉬운 바를 이야기하고, 대통령이 설명하고, 연설 방해자가 수긍해 연설이 다시 진행되는 멋진 전개가 과연 가능했을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무제한 발언권’ 부여 국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대통령실경호처의 과잉진압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대통령실경호처의 과잉진압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언론이 인용한 오바마의 사례는 몇몇 조건이 결합해 벌어진 예외적 사건이다. 대통령이나 공적 권위를 지닌 사람의 연설에 난입해 소리를 지르는 이에게 무제한의 발언권을 주는 일은 국가와 문화를 막론하고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심지어 오바마 본인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2022년 11월 2일 애리조나주 상원의원과 주지사 선거를 돕기 위해 찬조 연설 무대에 섰다. 오바마가 워낙 능숙하게 연설 방해꾼들을 상대하는 터라 그의 연설엔 방해꾼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땐 경우가 좀 달랐다. 누가 봐도 공화당 지지자 같은 사람이 노골적으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야유로써 연설을 방해했다.

    오바마의 반응은 어땠을까. “저 불만에 가득 찬 유권자의 말을 들어보자”라며 여유 넘치는 태도를 보였을까. 그렇지 않다. 마이크의 힘을 빌려 맞대응했다.

    “잠깐, 잠깐, 이봐 거기 젊은이! 잠깐 내 말을 듣도록 해요. 알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당신은 예의 바르고 점잖은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면 그때 당신이 발언권을 얻는 거요. 본인 스스로 사람들을 끌어오세요(Set up your own rally). 이 행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연설 방해꾼은 끌려나갔다. 연설장은 흥분과 격앙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오바마는 “진정, 진정하자”라고 남은 이들을 다독인 후, 본인의 의제로 돌아오기에 앞서 미국의 전반적 정치 현황에 대해 언급했다.

    “이게 요즘 정치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누군가가 말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소리를 질러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말려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집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2013년의 오바마와 2022년의 오바마가 연설 방해꾼에 대해 내놓은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전자는 연설을 방해할지언정 오바마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던 반면, 후자는 명백하고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기 위해 연설을 방해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처럼 탁월한 연설가라면 전자의 경우 어르고 달래며 ‘멋진 그림’을 연출해낼 수 있지만 후자라면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끌어내는 것 외에 질서를 유지할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의 당사자 신 대변인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경찰 조사의 부당함에 대응하고 강제적 수단마저도 서슴지 않는 윤 정권을 심판하는 데 힘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오바마 연설의 방해자에 비유한다면 2013년의 방해자보다는 2022년의 방해자에 더 가까울 듯하다. 그런 그를 현장에서 끌어내지 않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미국에서도 안 먹힐 표현의 자유 운운이라니…

    2020년 7월 22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방독면을 쓴 연방 요원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AP 뉴시스]

    2020년 7월 22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방독면을 쓴 연방 요원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AP 뉴시스]

    연설 방해꾼을 대하는 오바마의 태도를 인용하는 국내 언론의 태도에서 우리는 일종의 ‘아메리칸 판타지’를 목격할 수 있다. 보수는 미국을 ‘경찰 말 안 들으면 총으로 곧장 쏴버리는 나라’로 이상화하는 반면, 진보는 미국을 ‘그저 한없이 자유분방한 나라’로 본다. 대통령이나 기타 공적 권위를 가진 인물의 바로 앞에서 모욕하고, 조롱하며, 방해하는 것을 무한정 허용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가하고 민간인을 납치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가자 지구를 봉쇄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한 국방 예산을 편성해야 했고, 의회에선 관련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자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하마스의 끔찍한 범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군사 작전 또한 ‘제노사이드’와 다를 바 없는 것이므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양비론적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쟁 개입에 반대하기 위해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의 청문회장에서 피켓을 펴고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를 요구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모든 자유의 토대라고 할법한 근본적 권리다. 영화 ‘래리 플린트’(1997)로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출판물 등을 통해 공적 인물을 추잡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일마저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하는 나라다. 미국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지원에 반대하는 이들도 표현의 자유를 지니고 있을 테니, 그것을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10월 31일 미국 연방의회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자. 시위자들은 (‘피 묻은 손’을 상징하는) 페인트칠한 손을 들고, 카메라에 잡히도록 피켓을 보여주고, 구호를 외치며 손뼉을 쳤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았고, 행사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목청을 높이는 사람에게는 여지없이 즉각 경비가 다가왔다. 물론 입틀막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대통령경호처보다 훨씬 더 문명적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시위자를 붙들고 끌어내는 광경은 동일했다.

    차이가 있다면 시위자들 역시 대부분 순순히 경비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나갔다는 것이다. 구호를 외치고 자신들이 붙들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던 듯하다. ‘경비에게 두들겨 맞는 평화 시위대’ 같은 극적인 광경을 연출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장면을 함부로 연출하려 들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대통령의 연설 장소나 국회의사당 내부 같은 요처에서 벌어지는 항의 시위를 수수방관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물론 진압 방식이 무엇이냐가 관건이고 그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대통령 앞에서 언성 높여 항의하다 저지당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두고 ‘표현의 자유 억압’을 운운하는 논리는 미국에서도 통할 수 없다.

    ‘민주’공화국(X) ‘민주공화국’(O)

    이쯤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입틀막은 잘못된 일이다. 대통령경호처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훈련된 전문가들로 이뤄졌다. 설령 의도적으로 대통령의 연설을 가로막고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떠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방해꾼이라 해도 최대한 정중하게, 혹은 야만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외양을 유지하며 현장에서 축출해야 할 직업적 의무를 지니는 사람들이다. 경호처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 진압 방식은 단순한 비판‧비난을 넘어 국정조사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자유’를 강조해온 인물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자유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적 행위와 다름없다. 대통령 본인이 사과 내지는 유감 표명을 하지 않는다면, 그가 내걸고 있는 자유주의가 ‘권력의 뜻대로 할 자유’ 외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연설을 가로막는 시위 방식을 무조건 옹호하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단어에서 오직 ‘민주’만을 강조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자유주의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공화주의를 반드시 요구한다. 공화주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개성을 지닌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공적 가치를 공유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정치 이념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민주공화국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이념을 필요로 한다.

    대통령 연설을 가로막으면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거나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일종의 정치철학적 오류에 빠져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이념 가운데 자유주의, 그것도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극단적 좌파 자유주의만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내가 뽑지 않은 대통령을 ‘나의 대표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기꺼이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 대통령이 싫다고 탄핵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 내가 뽑은 대통령만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라는 결국 정치 성향에 따라 극한 대립하고 쪼개져 선거 흉내를 내는 독재국가로 향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신민기 대변인을 비롯해 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통령의 공적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연설을 가로막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자를 그냥 내버려 두는 나라는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 체제 유지를 위해 공적 권위는 국민 전체가 지켜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의 가치와 공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입틀막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대통령경호처를 단속해야 한다. 취임 이전부터 본인이 자유주의자라고 강조해왔던 윤 대통령 아닌가. 자유주의적 가치에 충실함으로써 공화주의의 이념까지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3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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