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보수, ‘대통합’ 후 사즉생 정신으로 맞서야”

‘정통 보수’ 최광 前 장관 작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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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4-07-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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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파, 가치 중요성 모르고 권력 추구에만 함몰

    • 이념 불분명하니 일관성 없는 ‘잡탕’ 정책만…

    • 분열·내분 일관, ‘사이비 보수’가 판쳐

    • 25년째 당원…당보도 안 오고 명절 카톡 인사가 전부

    • 거드름 피우는 사람만 있지, 봉사하는 사람 없어

    • 국민의힘이 중심이 돼 범국민 운동 전개해야

    • 지도자는 국민 선도, 눈치를 봐선 안 돼

    7월 11일 최광 대구대 석좌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7월 11일 최광 대구대 석좌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나라가 미증유(未曾有)의 백척간두(百尺竿頭) 위기다.” 7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만난 최광(77) 대구대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엔 근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메릴랜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재정 전문가다. 초대 국회 예산정책처장, 한국조세연구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0년 전부터 이념·사상, 민주주의, 체제론, 지도자론 등에 대한 발표와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보수 인사로 평가받지만, 법과 원칙에 맞지 않으면 “아니다”라고 말하는 소신파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에는 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연임을 반대하며 청와대·주무 장관과 맞서다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2000년 한나라당 시절부터 현재까지 25년째 ‘책임 당원’인 ‘정통 보수’이기도 하다.

    이런 그에게 20~30%대를 오가는 대통령 지지율, 192석 거야(巨野)에 맞서야 하는 여당 상황은 ‘보수 위기’를 넘어 ‘국가 위기’로 다가온다. 최 교수는 “틈만 나면 하는 독서가 나라 걱정을 하게 만들고, 그러다 보니 그 해결책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걱정거리는 크게 두 가지다. 그는 “종북 주사파 세력이 야기한 대한민국 체제 위기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 저하 및 제고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보수 대통합’이 필요하다”며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는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정신으로 싸워야 한다”는 말로 보수 각성을 촉구했다.

    “국가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

    7월 3일 경기 오산시 죽미령평화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제74주년 유엔군 초전기념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서 내빈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7월 3일 경기 오산시 죽미령평화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제74주년 유엔군 초전기념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서 내빈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종북 주사파 세력이 대한민국 체제 위기를 야기했다?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주장이겠으나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것은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아직도 ‘적화통일’까지 도모하는 세력들로 인해 국가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 논의도, 적극적 활동도 눈에 띄는 것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이 모든 것은 정치지도자와 지성인의 책임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고, 국민이 잘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는데도 정치권은 권력과 영달에 빠져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다. 또 일부 지성인들도 자족하며 현실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국가 멸망을 불러온 조선시대 사색당쟁(四色黨爭)이 무색할 지경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그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다른 이념으로 인해 나라가 분단되고, 분단된 나라가 이념 때문에 전쟁을 벌인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한반도에 대한민국과 북한이 따로 건국된 것은 당시 양쪽 지도층의 이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제1차 목표는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한 체제 전복이다. 종북 좌파 역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이 주된 과제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좌파 대통령을 거치면서 권력의 단맛을 보았기에 더더욱 목숨 걸고 체제 전복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 할 것이다. 좌파들이 주창하던 역사적 ‘진보’는 어떻게 됐는가. 20세기 최대 역사적 사건은 공산주의의 등장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진보는커녕 ‘퇴보’를 보이며 해체·소멸했다. 좌파들이 주창하는 ‘더불어 잘사는’ 진보 이념은 관념적으론 훌륭할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재앙만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특히 우리나라 좌파는 정치적 사고에선 전체주의·독재 지향, 경제적 사고에선 반(反)시장주의·정부만능주의에 함몰돼 있다.”

    종북 세력에 대해 말을 이어가던 최 교수는 이내 ‘보수 우파’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보수 우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그들의 준동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어떤 이념이 옳고 그른지, 낫고 못한지에 대한 선험적 심판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역사를 통한 경험에서 볼 때 우파는 좌파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첫째, 우파 이념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반면 좌파 이념은 반(反)한다. 둘째, 우파 이념이 지배한 사회는 경제가 번창했지만 좌파 이념이 지배한 사회는 쇠락했다. 셋째, 우파 이념이 지배한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국민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나 좌파 이념이 지배한 사회는 독재체제 아래 예속적 삶을 영위한다. 서구의 많은 선진국에서 좌파 정당인 사회당, 노동당이 집권했으나 그들은 늘 경제를 망가뜨렸다. 오늘날 세계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는 중국, 쿠바, 북한, 베트남, 라오스 5개에 불과하다.”

    “정체성 잃은 국민의힘, 당명부터 틀렸다”

    그렇다면 우파는 문제가 없나. 우리나라에선 보수 우파가 소수파 집권세력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가치 혹은 이념에 입각해 권력을 추구하는 반면 우파는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권력 추구에 함몰돼 있다. 이념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세력 내에 우파·좌파 인사가 혼재하고, 정책 역시 마찬가지로 뒤섞여 ‘잡탕’이기 일쑤다. 이념적 연대도 약하다 보니 단결이 잘 되지 않고 분열이 다반사다. 심지어 이념 결사체인 ‘정당’에서도 회원·당원에 대한 이념 교육이 거의 없다. 새 인재를 영입할 때도 이념을 영입 기준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준석·한동훈 등 진성 당원이 아닌 사람이 당대표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고, 비대위원·공천관리위원장도 당원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당적을 맡거나, 대선·총선·지선 등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 경우엔 수 년 이상 당적을 보유하는 것을 자격으로 함이 옳다.”

    국민의힘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말로 들리는데.

    “국민의힘이 우파 정당 맞는가. 대체 무엇을 보고 그리 판단하는 건지 의문이다.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우파 정당의 가장 큰 가치는 ‘자유’다. 국민의힘이 자유를 강조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를 부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제정책에서 민주당과 차이를 보이는 정책이 있긴 한가. 또 당원을 모아놓고 자유의 의미·중요성을 교육한 적도 거의 없다. 당명부터 잘못됐다. 예전 우파의 당명은 ‘자유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등이었다. 30여 년 전부터 이념 용어를 빼고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바꿔왔고 현재 국민의힘에 이르렀다. 이는 크나큰 무지이자 실책이다. 정당 스스로 정체성을 내팽개친 것이다. 국민의힘의 영문 당명은 ’People Power Party(PPP)’다. 그대로 해석하면 ‘국민권력당’이다. 이게 좌파 정당 이름이지, 어떻게 우파 정당 이름이 될 수 있나. 당명 하나 제대로 못 짓는 사람들이 정당을 운영한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최 교수에게 당의 ‘정체성’이란 향후 선거에서 보수가 승리할 수 있는 열쇠다. 그는 “최근 선거인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도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사이비 우파’에 휘둘린 탓이 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패배가 예상되던 선거였다. 흔히 선거를 좌우하는 변수는 대통령 지지율, 정치 상황, 경제 상황, 공천, 공약 등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녹록지 않았다. 공천은 아무런 감동도 없는 ‘잡탕 공천’이었고, 공약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정부는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했다. 우파의 단합·단결이 절실했지만 국민의힘은 우파 단체들과 거리 두기에 바빴다.”

    대개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 민심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데.

    “가뜩이나 우파는 분열이 심각한 상태다. 뭉쳐서 싸우지 못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한목소릴 낸 적도, 낼 줄도 모른다. 수많은 보수 시민단체 및 정당은 좌파와 싸우기보다 서로 비방을 일삼아왔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보수가 세력을 넓혀야 한다며 ‘중도’를 끌어오자는 말이 있는 건 맞지만,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과 과거 행적, 논의 내용을 살피면 ‘사이비 우파’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발버둥에 불과하다.”

    “답은 역사에서 찾아야”

    지난해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들어갔다. 이날 국정원은 지하조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법원으로부터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사진은 이날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들어간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모습. [뉴스1]

    지난해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들어갔다. 이날 국정원은 지하조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법원으로부터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사진은 이날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들어간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모습. [뉴스1]

    그럼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를 알아야 이긴다. 임기응변식 땜질로는 안 된다.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선 교육과 학습을 중시해야 한다. 모든 담론 주제를 ‘민주화’에서 ‘자유화’로 바꾸길 바란다. 좌파 정권에서 양산한 반(反)헌법적 입법도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 자세로 애당·애국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최 교수는 이 부분에서 “기본에 충실하고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 외에 다른 묘책이 없다”며 대대적 ‘개혁’을 제안했다.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당은 정치결사 조직이며, 그러한 성격에 맞춰 관리·통솔돼야 한다. 당대표는 당의 최고경영자(CEO)인데 역대 당대표 가운데 CEO 개념을 가진 대표를 본 적이 없다. 당원들과 더불어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당을 올바르게 관리하지도 않는다. 당에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만 있지, 당에 봉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니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당원과 소통하며 올바르게 대접·활용하는 것이다. 난 25년째 책임 당원이다. 2000년대만 해도 당보(黨報)가 매월 집으로 배달돼 당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당이 당원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 당대표나 비대위원장이 취임하면 간단한 취임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고, 명절 때 안부 글을 몇 년에 한 번 보내는 정도가 전부다. 중앙당에 전화를 해도 시당으로 넘기고, 그나마 몇 번을 시도해야 가까스로 연결된다. 각종 선거 때도 당으로부터 어떤 자료·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올해 기준 국민의힘 당원 수가 약 413만 명이다. 당원 수를 두 배로 확대해 800만 당원을 확보하고, 이들이 선거 때 1명씩만 설득하면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다음은 국민의힘이 중심이 돼 ‘보수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

    보수 대통합?

    “보수 단체가 약 2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대체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이제 국민의힘이 앞장서 모든 보수 정당 및 단체를 묶어 ‘빅 텐트(big tent)’를 설치해야 한다. 대통합 후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해야 하다. 자유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민주주의·자본주의는 도대체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 국민 대상으로 대대적 교육을 펼쳐야 한다.”

    다만 최 교수는 이 대목에서 “MZ세대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10%대에 그친다는 점은 별개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MZ세대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당의 차세대 지도자 양성과 결부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하는 문제다. 세대별 정치적 알력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노령화가 급격히 진전됨에 따라 세대 간 알력이 이전과는 다르게, 더 강렬하게 전개될 것이다. 지금만 해도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상대를 불신·비방하고 있지 않나. MZ세대는 노인들을 ‘틀딱’ ‘라떼는 말이야’ 등의 말로 비아냥거린다. 또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정치권 진입을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보수, 진보라는 개념으론 그들과 소통하기 어려울뿐더러 공감을 얻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키워드는 ‘자유’다. 자유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공유해 소통해야 한다. 또 젊은이들로 하여금 대학생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당의 각종 교육 프로그램 이수 및 당 활동 참여 이력에 비례해 당직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 젊은이들에게 공정·경쟁을 통해 정치 입문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구축한다면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지도자 바로 서야 國格 지킨다”

    최 교수와의 인터뷰는 서서히 대한민국의 국격 문제로 옮겨갔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격이 ‘처참한 수준’”이라며 “이는 정치지도자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보수 정치가 행해져야 하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국격이라 하면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에게 인격·품격이 있는 것처럼 국가에도 국격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재력이 곧 인격이 아니듯, 나라의 국력도 곧 국격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력은 날로 증대하지만 국격은 추락하고 있다. 국민 사이에 무례, 폭력, 사기, 음해가 판을 친다. 국회엔 정치는 없고 정쟁만 있다.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다. 가히 국격이 쓰레기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격 하락의 중심엔 정치지도자들이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국격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은….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국격 있는 나라가 성립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엔 정치인은 안 보이고 정치꾼만 있다.”

    국격을 높이기 위해 그들에게 요구되는 소양이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문학·철학·역사·예술·과학 등 교양을 지니고, 그러한 교양을 배경으로 일반 국민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세계관과 종합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둘째, 나라에 위기의 순간이 오면 국가·국민을 위해서 기꺼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기개(氣槪)를 갖춰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도층의 애국심 결여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병에 걸려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곤 국격 있는 나라도 없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정치지도자들과 정책 당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고언(苦言)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는 데 통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매사 기본에 충실하고 원리 원칙에 따르라’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은 통하지 않는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복안(複眼)을 가져라’ ‘공직자의 예산 낭비와 무지·무식은 용서받지 못할 죄다’ ‘사심 없이 일하고 조직에 헌신하라’ 등이다. 이는 내 평생의 삶을 통해 터득한 귀중한 명제(命題)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명제들을 염두에 두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공직자들 가운데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던가.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을 선도해야지, 눈치를 봐선 안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국민은 돌팔이 의사가 아닌 명의(名醫)를 원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해 줄 수는 없다는 것, 국민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귀에 따갑도록 이야기해야 한다. 특히 ‘예산 퍼주기’는 혈세를 낭비하고,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해 국가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신동아 8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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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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