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4차례 정권재창출에서 나타난 여당 필승 법칙

차별화된 대선 후보, 차별화 용인하는 대통령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4-08-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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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임기 初 ‘기대감’, 末 ‘지겨움’

    • 서커스 같은 정권 재창출…곡예사들 간 신뢰 필수

    • 대통령 심판 여론 커질수록 차기 기대감 ↑

    • 尹, 정권 내주더라도 차별화는 용납 못 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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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대선에서 보수가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냐’는 질문과 사실상 같은 말이다. 물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재창당 내지 당명 변경 같은 무늬만 신장개업, 비주류의 이탈이나 교집합이 있는 세력과의 합당, 단일화 같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은 한국 정치에선 상수(常數)나 다름없다.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을 바꾸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탈당할지도 모르고, 의석은 3석에 불과하지만 상징성과 젊은 남성들의 대표성이 있는 개혁신당이나 그 밖의 비민주당 세력과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차별화로 인한 ‘지지의 알리바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중심이 되지 않는 보수 정권 창출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 보수의 승리라는 다소 추상적 개념은 정권 재창출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일반론적으로 볼 때 대선에 대한 전망을 보여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고, 총선에서 이겨야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 임기 3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치러진 22대 총선은 막판에 불거진 대통령의 존재감에 힘입어 현 정권 평가에 집중된 면이 컸다. 역설적으로 총선 과정에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차기 주자로서 이미지를 굳혔다. 대통령에 대한 심판 정서가 확인될수록 보수 진영 내에선 차기 주자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당대회 주자 중 유독 한동훈이 ‘정권 재창출’을 강조했고 ‘대통령과 신뢰’나 ‘대선 주자가 아닌 대표’를 강조한 후보들에 비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여권 구성원이나 지지자들 중 정권 재창출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어떻게’에 대한 생각, 즉 경로와 전략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정권 재창출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명확한 법칙성이 도출된다. 현직 대통령을 안 닮은 사람을 내세웠을 때만 성공했다. 보수와 진보 여부는 상관이 없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위로부터) 등 네 번의 대선에 여당 후보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동아DB]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위로부터) 등 네 번의 대선에 여당 후보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동아DB]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정권 재창출, 즉 여당 대선 후보의 승리 사례는 모두 4번이다. 1987년 대선(전두환→노태우), 1992년 대선(노태우→김영삼), 2002년 대선(김대중→노무현), 2012년 대선(이명박→박근혜)이다.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성공한 여당 대통령 후보들만 승리했다. 왜 그럴까?

    임기 말 지지율이 임기 초보다 높은 대통령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거다. 임기 초에는 대선에서 그를 찍어준 지지층과 더불어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가세하고, 임기 말에는 원래 지지층이라고 해도 각종 정책으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만약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내리더라도 지겨운 느낌은 든다. 나이가 들면 관절이 약해지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임기 말 대통령과 같은 느낌을 주는 후보를 뽑을 유권자는 많지 않다. “지금 대통령이 너무 잘해서 한 번 더 시켰으면 좋겠다. 그럴 순 없으니 비슷한 사람이라도 찾자”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러니 정권 재창출의 분명한 키워드는 ‘차별화’다. 노태우의 경우, 군복을 벗고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전두환과 차별화의 길을 걸었다. 겉모습이나 행동거지가 무골(武骨)인 현직 대통령과 다른 인상을 주는 데 주력했다. 노태우는 민정당의 약한 반대자나 야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 스윙보터, 혹은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기 부끄러운 지지자들에게 “그래도 전두환하고는 달라서”라는 ‘지지의 알리바이’를 주기 충분한 인물이었다. 만약 노태우 자리에 전두환 닮은꼴이자 경호실장, 안기부장 출신 장세동이 있었다면? 아마 김영삼(YS)과 김대중(DJ) 양김은 거센 단일화의 압박에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1987년에 정권교체가 됐을 것이다.

    ‘차별화’는 현직 대통령이 용인해야 가능

    1992년 노태우와 YS의 차별화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뿌리도 정치적 행로도 이미지도 다 달랐다. 그럼에도 YS는 여당 민자당의 2인자 시절에도 당무 거부를 감행하면서, 대선 기간에는 ‘강한 대통령론’을 거세게 내세우면서 ‘물’ 소리 듣던 노태우와 더 강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2002년 상황도 일반적 통념과는 상당히 달랐다. 호남 정권에서 부산 출신 여당 후보였던 노무현은 계승이 아니라 차별화와 새로움을 내세워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다. 노무현 캠프의 선봉장 격인 유시민은 DJ정부 동안 야멸찬 비판자였다. 노무현 본인 역시 후보가 된 이후 동교동계와 사이가 더 벌어졌다. 그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지만 ‘부채 없는 노무현’은 이회창을 따돌릴 수 있었다. 2012년 이명박에 대한 박근혜의 차별화는 1992년 YS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 같은 정권 재창출의 사례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현직 대통령의 용인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서커스의 공중제비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손에 땀을 쥔 관객들은 몸을 비틀고 몇 바퀴를 회전하며 공중을 나는 곡예사에 주목하지만, 그 곡예사는 맞은편 곡예사가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몸을 날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두환-노태우나 김대중-노무현의 경우에는 전략적 역할 분담의 공감대가 형성된 면이 있다. 즉 노태우나 이명박은 “당신이 나 말고 대안이 있느냐”는 식으로 거칠게 나오는 차기 대선 후보의 차별화를 감수했다.

    여당 대선 후보의 차별화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정작 대통령의 ‘용인’이 부재했던 경우가 1997년 YS-이회창 조합일 것이다. 차별화도 용인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2007년 노무현-정동영 조합이다. 2022년 문재인-이재명 조합의 경우 이재명이 제대로 된 차별화의 엄두를 내지 못했고 문재인 역시 1987년의 전두환이나 2002년 DJ처럼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역할 분담을 해내지 못했다.

    정권 재창출은 최고의 안전판

    자신의 독자적 정치적 지평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 대선 승리를 위해 차별화하고 싶지 않은 여당 대선 주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용인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다. 차별화 이전에 대선 주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정권 재창출이 여러 면에서 볼 때 최고의 안전판이라는 점을 모르는 현직 대통령도 없겠지만 레임덕이나 섣부른 차별화를 원하는 대통령도 없다.

    이런 점에서 여권의 가장 핵심적 고민은 구심력을 급속도로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어떻게 원심력을 강화하느냐에 놓여 있어야 한다.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 자신의 장악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게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높을 때라야 비로소 현역 대통령의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력이 임기 말까지 유지되는 법이다. 노태우, DJ, 이명박 등이 좋은 예다.

    성향이 맞지 않는 인물이 차기 주자로 떠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노태우와 이명박은 대세에 순응했다. YS와 이회창은 불화를 거듭했고, 결국 정권이 교체됐다. 그 과정에 DJ에 대한 YS의 개인적 신뢰와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 여당 주자 이회창 입장에서 불가피한 강한 차별화가 교차했다.

    노무현과 정동영의 관계는 어느 모로 보나 최악이었고, 박근혜의 경우 대선이 가까워 오기 전부터 자기 손으로 김무성·유승민 등 차기 주자를 몰아세웠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묘한 긴장관계를 갖고 있다.



    석열 대통령이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 앞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석열 대통령이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 앞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법칙성은 다음 대선에도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보면 윤 대통령은 차별화를 용인할 사람이 아니다. 22대 총선에 선거에 불리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심지어 비대위원장을 교체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런 거친 모습은 역설적으로 한동훈의 존재감을 키웠다. 한동훈이 주체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기보다 윤석열이 한동훈을 차별화해 줬다고 볼 수도 있다.

    총선 후에도 윤 대통령은 한동훈에 대한 견제 혹은 배제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그런 모습은 전당대회 기간에도 이어졌다. 한동훈은 적잖은 고초를 겪었지만 현직 대통령이 알아서 차별화해 준 덕에 자신이 이끈 총선의 기록적 참패에도 빠른 시간 내에 존재감을 회복했다. 덤으로 ‘대통령과 20년간 손발을 맞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라는 이미지를 떨쳐낼 수 있었다. 만약 총선 기간이나 총선 후에 윤 대통령이 한동훈을 끼고 눈에 띄게 애정을 쏟았다면 한동훈은 ‘노태우의 박철언’ 신세가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훈, 원희룡, 홍준표, 오세훈

    반대로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원픽’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전당대회에 나온 원희룡은 곧바로 어려움을 겪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 이후 대통령과 부쩍 거리를 좁혔지만 이런 차별화의 메커니즘을 모르진 않는 것 같다. 홍준표는 여당 전대 기간 내내 한동훈을 거세게 비난하면서도 “정권 차별화는 대선 1년 전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6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라면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즉 윤 대통령과 차별화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단체장직에서 자유로워져서 대선 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시점부터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기준으로도 그렇지만 ‘차별화’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여권 처지에서 확실한 우량주에 속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이 아니라는 태생도, 외모와 스타일도, 서울시장이라는 자리 자체도 그렇고 오세훈은 존재 자체가 차별적이다. 다만 수동적 차별화와 능동적 차별화는 다르다. 한동훈과 윤 대통령의 갈등이 격화된다면 반사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높지만,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은 적은 없다. 홍준표가 말한 차별화의 1년은 오세훈에게도 해당되는 시간이다.

    차별화는 정권 재창출의 요체이고 차기 주자들의 큰 과제지만 또 다른 주체는 윤 대통령이다. 현재까지의 윤 대통령은 정권을 내주면 내줄지언정 차별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다. 차기 주자들이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그렇다면 별수 없다. YS와 박근혜의 경우가 그랬다. YS는 이회창의 차별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인제의 독자 출마를 방조했고, 40년간 애증의 대상이었던 야당 주자 DJ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아 길을 터줬다. 정권 교체 이후 이회창이 당수가 된 제1 야당 한나라당과는 관계가 데면데면했지만, DJ 정권 동안 YS나 YS의 사람들이 별 고초를 겪은 것도 없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라며 유승민을 찍어내는 등 본인의 아버지만큼이나 다른 흐름을 용납하지 않았던 박근혜는 탄핵으로 정치적 최후를 맞이했다.

    윤 대통령은 어떠할까? 윤 대통령은 YS의 선 굵은 정치, 결단력 등을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성정에서는 유사점도 보인다. 한동훈의 결기 역시 자신을 정치권에 불러낸 YS에 맞서 대선 후보 자리를 쟁취한 이회창 못잖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총선 직후 행보를 보면 자신이 이재명과 ‘YS-DJ’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DJ나 DJ 지지자들의 YS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와 현재 야당 지지층의 윤 대통령에 대한 감정과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 이상이다. 윤 대통령이 그런 관계를 원해도 야당 지지층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YS 케이스는 자연스럽게 소거된다. 그러면 본인은 물론 진영 전체가 파멸적 결말을 맞은 박근혜 케이스만 남게 된다. 여당 전대 이후엔 윤 대통령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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