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선 넘은 공수처, 尹 체포 작전 포기해야 한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체포 떠넘기기‧영장 쇼핑… 법치주의 근간 흔드는 공수처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01-10 10:55: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경찰에 체포영장 대리 집행한 공수처, 당최 말 되나

    • 체포‧구속은 적법 절차대로 하는 게 법치주의 근간

    • 판사가 법률 배제해 영장 발부라니… 계엄 다를 바 없어

    • ‘불법이지만 합법’인 영장, 누구라도 피해자 될 수 있어

    • 대통령 탄핵보다 더 중요한 법치주의 이념 되새길 때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관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한 후 철수하고 있다. [뉴스1]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관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한 후 철수하고 있다. [뉴스1]

    “정신나간 공수처? 경찰은 체포만 해달라고?”

    1월 6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3일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나섰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소득 없이 발길을 돌린 후, 체포영장 기한 만료를 하루 앞둔 5일 경찰에 체포 협조 공문을 보냈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경찰에 윤 대통령 체포 떠넘긴 ‘한심한’ 공수처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전후 맥락을 조금 더 살펴보자. 3일 공수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약 여섯 시간가량 대치한 끝에 소득 없이 귀환했다. 대통령 경호처가 완강하게 버티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체포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검찰과 경찰에서 사건을 이첩 받은 공수처로서는 심각하게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인력이 부족하고 무장 상태가 미비한 공수처로서는 잘 훈련된 대통령 경호처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공수처는 체포영장 기한 만료를 하루 앞둔 5일 밤 9시경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공문을 보냈다. “경찰의 집행 전문성을 고려해서 국수본에 피의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기관이 다른 기관에 체포영장 집행을 위임할 수는 없다. 체포는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는 행위로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기본권 침해다.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위임이 성립한다면, 검찰이 받은 체포영장을 군사경찰(헌병)이 집행하는 등의 변칙적 행위도 가능하게 된다. 영장 없이 누군가를 잡아 가두는 일, 요컨대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음직한 일이 버젓이 벌어지게 되는 꼴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문을 경찰에 보낸 공수처를 보며 많은 이들이 개탄했다. 앞서 인용한 박지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탄핵‧체포를 바랄 테지만 공수처의 한심한 일 처리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농사도 짓고 추수도 해서 내 곳간에 곡식은 넣으라고요. 먹기는 공수처가 먹겠다고요. 무능‧무기력 공수처가 욕심은 많네요.”

    국수본이 공수처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법적 결함이 있다”며 공수처의 제안을 거절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검사는 경찰에 대한 지휘 감독 권한을 갖지 않는다는 것. 결국 공수처는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2차 체포영장 집행은 조만간 또 시도될 듯하다.

    이번에는 국수본 특별수사단과 공수처가 함께 꾸린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대통령 관저를 대상으로 한 체포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다만 공수처가 발급받은 영장으로 경찰 특공대가 윤 대통령을 체포하는 일이 과연 합법적일지, 공수처에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공조본을 꾸리는 것이 과연 타당할지, 많은 의문을 낳고 있다.

    인권은 본디 ‘범죄자’ 위한 권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 받으면서 2차 영장 집행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9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앞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 받으면서 2차 영장 집행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9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앞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뉴스1]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이 소란은 ‘한심한’ 공수처의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돼선 안 된다. 이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이다. 근대 법치국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리를 형해화하기 때문이다.

    1215년 6월 15일 영국. 템즈 강변의 러니미드(Runnymede)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왕을 둘러싼 귀족들이 왕에게 굴욕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귀족의 권리를 함부로 해칠 수 없다며, 귀족이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을 땐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그나 카르타’다.

    마그나 카르타의 취지는 분명했다. 국왕의 권리를 법으로 제한하고, 귀족의 재산‧신체를 침해하거나 처벌하고자 할 때 여러 제약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39조, ‘적법절차의 원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은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 의한 적법한 판결이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한다. 왕은 이에 뜻을 두지 아니하며, 이를 명하지도 아니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귀족이나 왕족 등, 높은 신분을 가진 이들만을 의미했다.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국왕의 자의적‧감정적 판결에 처벌받지 않고, 다른 귀족이나 왕족의 눈으로 납득 가능한 처벌만을 받겠다고 요구, 그 권리를 문서로 얻어낸 것이다.

    이 내용이 끼친 영향은 매우 심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적법절차의 원리 적용 대상은 점점 확대됐다. 특히 판사이자 정치인인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1552~1634)의 역할이 중요했다. 코크는 마그나 카르타가 귀족의 권리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보편적 인권 개념을 향해 인류가 한 걸음 더 나아간 순간이었다.

    1628년 코크의 주도 하에 영국 의회는 국왕 찰스 1세에게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을 제시했다. 중요한 인권으로 다뤄져야 할 대상이 더욱 늘어나서 신체의 자유나 조세법률주의 등이 명문화됐다. 이후 1689년 12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제정되면서 영국은 사상 최초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됐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하지만 낯설게 보이는 사실을 하나 확인할 수 있다. 인권은 처음부터 ‘범죄자의 권리’였다는 것이다. 어떤 왕이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며 자기 멋대로 법을 만들고, 고치며 집행하지 못하도록 귀족들이 가로막으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체포‧구금‧구속하려면 미리 정해진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법적 흠결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800여 년 넘게 이어져 오는 근대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다.

    판사가 멋대로 법률 배제, 이 또한 ‘계엄’으로 볼 수도

    이는 윤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공수처가 부리고 있는 온갖 무리수를 그저 ‘실력 없는 공수처의 헛발질’ 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직결된다. 이른바 ‘영장 쇼핑’을 한다거나, 체포영장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특정 법의 적용을 배제한다거나, 공수처가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만든 공조본을 통해 경찰‧공수처가 합동으로 윤 대통령 체포 작전을 진행하는 등의 일은 모두 법치주의의 원리를 무시하거나 뒤틀고 있는 것이다.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아닌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를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관할 대상에는 서울 용산구가 포함돼 있고, 용산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하고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향했다면 ‘영장 쇼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한 대통령 체포영장 및 관저 수색영장의 내용은 더 문제다. 그는 영장에서 ‘군사상·공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110조‧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

    대통령 관저는 군사상‧공무상 비밀과 관련된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통령 관저의 책임자는 경호실이거나 윤 대통령 본인이다.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가 적용된다면 관저를 수색해서 윤 대통령을 체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이 판사는 형사소송법상 해당 조항의 적용을 유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서 특정 법률의 효력을 정지‧중단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법은 예외 없이 모든 시간‧공간에서 통용돼야 한다. 판사가 영장을 통해 특정 시공간에서 어떤 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심지어 ‘마그나 카르타’ 이후 영국의 왕도 갖지 못한 권리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영장을 발부받고 집행할 수 있는가.

    다소 과격한 비교가 될 수 있으나, 계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 판사의 이러한 판단은 또 다른 ‘계엄’이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일반적 법 질서를 중단하고 모든 것을 군법으로 다루는 것이 계엄이다. 그렇다면 판사가 영장을 통해 특정한 법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적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즉 판사가 한남동에 일종의 계엄을 선포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불법이지만 합법인’ 영장이 이번만 유효할까

    필자는 윤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다. 그가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수긍하는 편이다.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처벌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헌정 질서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다수의 국민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싸고 공수처, 경찰, 더불어민주당 등이 벌이는 일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검찰에 대한 원한 감정을 품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사 기구들을 갈가리 찢고 망가뜨려놓은 민주당이다. 그런 그들이 윤 대통령을 빨리 체포해야 한다며 공수처가 벌이는 위법적‧초법적 행태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보면서도 눈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공수처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인력 및 수사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예견됐다. 고위공직자의 비리나 부정부패 등을 다룬다는 것은 매우 넓은 수사 범위이며, 검찰 특수부처럼 경험이 쌓인 큰 조직이 아닌, 신설 조직인 공수처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마저 독식한 민주당은 검찰 및 시민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우리는 고작 수십 명의 수사 인력을 가진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라는 거대한 사건을 떠맡은 모습을 보고 있다. 자신들의 가용 자원으로는 대규모 체포 작전의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그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을 동원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는 결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령 윤 대통령이 내란을 저지른 범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적법절차의 원리를 포기하거나, 편의에 맞게 단장취의(斷章取義)해선 안 된다. 그것은 근대 법치주의의 토대를 포기하는 것이며, 결국 그 피해는 그 누구의 경호도 받지 못하는 힘없는 국민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법 체계는 체포영장의 위법성을 따지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공수처가 받은 영장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한들, 일단 그 자체로서는 유효한 영장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법이지만 합법인’ 영장으로 대통령을 체포하는 일이 현실화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경찰‧검찰‧공수처가 ‘불법이지만 합법인’ 영장을 발부받아서 억울한 누군가를 체포하고 인권을 박탈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과연 그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대통령 탄핵보다 더 중요

    이 모든 일은 공수처의 조급증에서 비롯했다. 경찰과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후 뭔가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대통령에 대한 체포 시도라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여러 범죄 혐의에 연루됐지만,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통해 불구속 기소됐고 본인의 방어권을 십분 행사했다. “이런 악당들이 저런 권리를 누렸으니 다른 악당에게도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필자의 말이 달갑지 않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근대적 인권 체계가 그렇게 시작됐다. 법치주의는 착한 사람, 선량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위한 원리가 아니다. 법을 어길 수 있거나 때로는 정말 어기는 사람들을 위해, 또 그런 이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 작전을 포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 사실상 가택연금 된 상태다. ‘내란 공범’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이 모두 체포됐으므로 증거 인멸 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검수완박으로 급조된 조직 공수처의 위상을 뽐내겠다며 법과 절차를 모두 어기는 이런 행동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처벌하는 것은 우리의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첫 단추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 우리는 더 엄격한 법치주의를 되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공수처라는 급조된 조직을 해체하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다시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영장 발급에 있어서 판사의 재량이 얼마나 주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 등이 모두 필요하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칠지언정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되새겨야 할 때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