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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勿)’자 형국 정점에서 ‘참을 인(忍)’자 100번 쓰기

‘물(勿)’자 형국 정점에서 ‘참을 인(忍)’자 100번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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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勿)’자 형국 정점에서 ‘참을  인(忍)’자 100번 쓰기

서백당 편액이 걸려 있는 화랑채. 당호 ‘서백’은 ‘참을 인(忍)’자를 100번 쓴다’는 뜻으로 집안의 화목을 도모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씨 집안이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1433∼84) 때. 1300평의 대지에 사랑채와 안채를 합해 33∼34칸에 이르는 서백당은 칸수만 많을 뿐 다른 고택들과 비교해 그리 큰 집은 아니다.

그러나 서백당은 양민공의 아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을 배출한 곳이다. 우재는 27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경상, 전라, 충청, 함경도 등에서 관찰사를 지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중종반정 직후 상주목사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그곳 주민들이 살아 있는 그를 사당에 모실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문건 ‘오조소(五條疏)’는 우재의 경륜과 선비정신을 짐작케 한다. 국가 관료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밝혀놓은 지침서인 오조소는 ‘군주는 오로지 배움에 힘써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 ‘왕실과 고관대작, 그리고 서민은 허례허식을 버리고 근검절약의 풍습을 진작해야 한다’ ‘국가의 직무를 담당하는 선비가 풍류나 즐기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지는 폐습을 경계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도층의 리더십과 도덕성 부족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가 따라야 할 선비정신이라 하겠다.

‘물(勿)’자 형국 정점에서 ‘참을  인(忍)’자 100번 쓰기

① 지금은 ‘퇴역’해 장독대 옆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맷돌.<br>②③ 서백당의 각종 생활유물들.



신동아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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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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