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간도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350여 주민이 살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나면서 인구가 줄어 지금은 71가구 143명만이 섬을 지키고 있다. 그나마 남은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이고,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딱히 먹고 살 만한 소득원이 없다 보니 지금도 주민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이 섬에 있는 공공기관은 파출소와 보건진료소, 그리고 초등학교 분교 한 곳이 전부다.
이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의 학생은 한 명뿐이고, 가르치는 교사도 한 명이다. 이런 초미니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나라에 휘몰아치고 있는 사(私)교육 광풍이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학생들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을 서너 군데씩 순례하는 게 일상사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생 혼자서 독선생을 모시고 도란도란 공부하는 학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도시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동안 달리기를 해도 1등, 시험을 봐도 무조건 전교 1등이 되는 학교라니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오지 학교에 와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수업은 어떤 식으로 할까. 급식도 한다는데 급식은 어떻게 이뤄질까. 궁금증을 안고 남해 먼 바다 외로운 섬 횡간도로 향했다.
안개에 갇힌 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20분발 완도행 우등고속을 탔을 때 미리 알아봤어야 했다. 고작 하루 4번 운행하는데도 승객이라고는 단 2명. 동행이라고는 일찌감치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졸고 있는 70대 할머니뿐이다. 출발시각이 가까워지면 승객이 더 있겠거니 했지만 더는 타지 않았다. 버스 요금이 1인당 3만1000원이니 두 사람 합이 6만2000원. 기름값도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출발시각이 되자 버스 기사는 아랑곳없이 차에 시동을 건다. 앞좌석의 할머니는 내내 죄 지은 사람처럼 기사에게 미안해했고, 적자가 날 버스회사를 염려했다. 완도 가는 고속버스가 이러니 거기에 딸린 섬 소안도와 이름도 생소한 횡간도는 오죽할까 싶었다.
승객 두 사람을 실은 버스는 휴게소에 딱 한 번 들르고는 논스톱으로 5시간10분을 달려 완도에 닿았다.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횡간도로 들어가려면 원동항에서 하루 한 번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해남 땅끝으로 가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한다. 하지만 완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30분. 하는 수없이 터미널에서 내려 횡간분교 분교장 고생규(53)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이날 퇴직하는 통학선 선원 환송 회식이 있어 소안도 가는 배를 타고 있다며 이따가 소안도에서 만나 내일 아침 첫 배를 타고 횡간도로 들어가자는 게 아닌가.
그가 일러준 대로 우선 셔틀버스를 타고 화흥포항으로 가 소안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20.8km 떨어져 있다. 뱃길로는 1시간 거리. 소안도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抗日의 땅 解放의 섬 소안도’라고 음각된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인구 3500여 명의 작은 섬에서 전국 면(面) 단위 가운데 가장 많은 20명의 건국훈장 서훈자를 배출했으니 소안도 주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