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장, 미술 백화점, 갤러리 등이 들어 선 청담동의 대표적 아트타워 엠포리아빌딩.
소비문화에 색을 입히다
특히 이번 옥션쇼는 메인 이벤트라 할 경매를 9월15, 16일 개최했다. 최근 1년 사이 3배 이상 가격이 오른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와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을 비롯, 박수근·장욱진·천경자 등의 작품이 선보였고, 앤디 워홀·리히터 같은 해외 작가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또한 ‘옥션쇼’라는 타이틀답게 일반 경매에 그치지 않고, 김병종·사석원 등 인기 작가 50명의 작품을 개별 부스에서 아트페어 형식으로 경매에 접목시켜 갤러리 중심의 미술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소더비와 일본의 신와, 중국의 폴리옥션 등 해외 유명 경매회사가 행보를 같이하고 있는 것도 경매회사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보여준다.
9월 한 달 동안 청담동과 그 주변에서 잇달아 열린 3개의 경매를 통해 2000여 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이 시장에 나왔으니 가히 ‘경매 축제’ ‘경매 전쟁’이라 할 만하다.
청담동 아트밸리에 미술시장의 돈이 몰리는 것에 더해 몇 년 사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 아트펀드도 가세했다. 청담동의 터줏대감 격인 Two Park(박영덕, 박여숙) 갤러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아트펀드 한국미술투자’는 청담동에 전시장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청담동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경매회사와 아트펀드가 몰리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청담동의 후광 효과를 꼽을 수 있다. 청담동은 1970년대 중반 강남 개발 당시 저밀도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 ‘빌라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강 조망이 가능한 최적의 입지가 부각되고 명문 경기고의 인근 이전과 영동고 신설 등 교육 여건이 좋아지면서 부촌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4월30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단독주택 공시가격’에서 상지리츠빌카일룸 2차 618.2m2(187평형) 공시가격이 40억원을 넘어서면서 아파트 부문 2위, 청담빌라 267.7m2(81평형)가 21억원으로 연립주택 부문 5위에 오르는 등 부촌으로서 위상을 떨쳤다.
하지만 같은 부촌이라도 청담동이 미술시장의 핵심 축으로 각광받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평창동, 한남동과 다르게 전통 부자보다는 신흥 부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데 있다. 또한 연예인, 디자이너, 문화예술인 등 트렌드 리더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청담동은 패션과 문화 트렌드의 발신지가 됐다. 갤러리 같은 고급 문화가 접목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런 배경이 미술시장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청담동이 미술시장의 핵으로 떠오르는 원동력이 됐다.
“이전에는 미술시장의 주요 컬렉터들이 재벌가 부인 등 50, 60대 여성 중심이었죠. 몇 년 전부터 고소득 전문가, 벤처 사업가 등 40, 50대 남성 컬렉터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청담동 P갤러리 오너의 귀띔이다.
‘돈’을 따라 움직이는 게 미술시장의 속성인데 주요 고객들이 이미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컬렉터 층의 변화는 곧 미술시장의 주요 근거지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대표적인 화랑 밀집 지역인 인사동을 중심으로 형성돼온 화랑가가 청담동 주변으로 옮겨가면서 ‘중심 이동’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은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청담동 지역이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 평창동 등 기존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과 경쟁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싼 임차료다. 일단 뭉쳐야 커질 텐데 이게 녹록지 않다.
새로운 실험, 럭셔리 갤러리 몰
미술시장의 특성상 갤러리들이 한 블록을 중심으로 집중 형성돼야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소호와 첼시에 밀집한 화랑가를 들 수 있고, 중국도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 예술구’를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다.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도 그러하다.
그러나 청담동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여서 자본력에서 취약한 중소 갤러리들이 옮겨가기엔 힘에 부친다. 매입할 만한 건물이나 땅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고 전시하기에 적당한 공간을 임차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분위기로 봐서는 청담동 인근에 자리를 잡아야겠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