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10월2일 방북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4·25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마중 나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흑백사진처럼 익숙한 풍경
버스를 타고 개망초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감회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로로 평양을 간다는 일은 생각도 못한 터였다. 대체로 북쪽이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던 깊고 외진 마을들을 보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설다. 사회주의 혁명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쪽 문화에 전통을 중시하는 풍조도 없지 않으니 혹 옛 모습이 제대로 보존된 곳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니 길가에는 남쪽과 조금도 다름없이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조금 헐벗은 느낌 외에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우리 땅이었다.
이내 출입국관리소가 나왔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간단한 검색을 받은 뒤 그곳을 통과했다. 북쪽 안내원 셋을 새로 태우고 출입국관리소를 나오자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많은 환영객이 길에 늘어서서 “우리는 하나” “조국 통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쪽 근로자들이라는 설명이었는데, 문득 이번 회담이 성공적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적 공업도시인 개성공단을 빠져나오니 필름을 되돌린 것처럼 풍경이 바뀌었다. 흑백 사진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개성시내는 마침 출근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며 손을 흔들어 환영했는데,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 차림의 처녀가 유난히 많았다. 하얀 옷고름이 검정 치마의 아랫단까지 길게 늘어진 아름다운 조선옷이었다.
두셋씩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가는 처녀가 많았고, 대개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걷는 처녀도 있어 왠지 연출 냄새가 짙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평양에 와서 확인했다. 보통강 여관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다리에서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 30대 여인과 학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개성은 너무 오랫동안 손을 안 본 채 버려진 마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도(古都)다운 창연한 맛도 없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날카롭게 바위 능선을 세우고 고도를 옹위하고 있는 송악산은 그 명성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개성을 벗어나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간간이 저만치 물러나 앉은 시골 마을들이 나타났다. 대체로 어둡고 활기가 없어 보였으나, 고목으로 둘러싸인 예스러운 마을도 없지 않았다. 밭은 콩밭이 주인데, 작황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수해가 1960년대 이래 가장 큰 수해라고 했지만 다행히도 수해의 흔적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남쪽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복구 작업을 했음에 틀림없었다.
활기찬 평양 거리
산에는 나무가 적고, 야산은 밭으로 개간된 흔적이 보였는데, 과수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요즈음은 계단식 밭에 과수를 많이 심는다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산도 푸르게 만들고 수해도 방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수들이 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직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라고는 하나 노면이 고르지 않은지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남쪽이나 마찬가지로 코스모스며 쑥부쟁이가 가득 핀 길은 아름다웠고 멀리 보이는 험준한 산들은 낯설지 않았다. 특히 예성강이 있는 남천 일대는 그대로 절경이었다. 다만 산에 나무가 좀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