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의 이익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공식 입’으로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 ‘시골의사’ 박경철(朴慶哲·42)씨가 10월1일자로 의협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과 3개월의 짧은 기간이 “3년처럼 긴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오랜 여정을 마친 여행자처럼 지친 모습이었다.
조직에 들어간 반골 의사
박씨를 만난 곳은 그가 집필실로 사용하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입주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집기라곤 소파와 책상, 그리고 컴퓨터 한 대가 고작이었다. 주인조차 낯선 공간. 출판사에서 그의 집필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얻어준 오피스텔은 새로 꾸민 공간 특유의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시작한 인터뷰. 그는 짧은 대변인 생활의 소회로 말머리를 열었다.
“처음부터 오래 할 생각은 없었어요. 대변인과 공보이사 겸직 요청을 받았을 때 3개월에서 6개월만 대변인을 맡겠다고 미리 말했습니다. 생각보다 그 시기가 좀 빨랐지만, 계획대로 움직인 거지요.”
박씨는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흥미로운’ 사람이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주식 투자 전문가이고, 2005년에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 2)’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필명을 날렸다.
지난해에는 그가 펴낸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 그해 각종 언론매체에서 경제분야 추천도서로 꼽히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또한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특강요청이 쇄도하는 자기계발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느덧 한 달이면 50회의 강연을 하는 인기강사가 됐다. 이 외에도 각종 인쇄매체에 연재하는 칼럼이 20개가 넘는 베테랑 칼럼니스트이자 라디오와 TV의 여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 방송인이다.
한편으론 바이오업체의 경영에도 관여하면서 친구와 공동 경영하는 경북 안동 신세계연합병원에서 일주일에 사흘은 진료와 수술을 하는 외과전문의다. 의협 대변인을 맡은 후에는 일정이 바빠 진료를 잠시 쉬었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 이튿날 새벽부터 수술을 하고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하며 의사로서의 소임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식견과 실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재야의 숨은 고수’ 이미지가 강하다. 의사말고는 이 모든 재주를 ‘독학’으로 길렀을 가능성이 크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가 가장 보수적인 이익단체 중 하나인 의협의 감투를 쓴다는 사실은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때 그는 “의료수가를 높이려고 종합병원들이 하지 않아도 될 수술까지 하고 있다”며 의료계에 일침을 놓은 ‘반골 의사’였다.
그런데 인터뷰를 요청한 시점과 인터뷰가 이루어진 일주일 사이에 그는 신분이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의협 대변인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