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결혼한 동기는 휴가 가는데…” 사내 복지에 반기드는 2030

[사바나] 1인 가구 40% 시대, 사내 복지는 여전히 4인 가구 중심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3-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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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혼은 못 받고 기혼은 받는 사내 대출

    • 자녀 등록금 지원 등 결혼 염두에 둔 지원책

    • 비혼‧딩크 2030 “4인 가구 중심 지원은 구시대적”

    • ‘비혼 선언’ 축하금 주고 반조리 식품 지원하는 회사

    • 전문가 “달라진 수요에 맞게 복리후생제도 개선 필요”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9.2%를 차지한다. [GettyImage]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9.2%를 차지한다. [GettyImage]

    “사내 복지는 회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혼 생각이 없는데 자녀 양육비 지원은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제 학자금 대출 400만 원부터 갚아 줬으면 좋겠어요.”

    IT 기업 1년차 신입사원 문모(30)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입사 후 사내 복리후생제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축하금이나 신혼여행 휴가, 사내 어린이집 이용 등 대다수 혜택이 비혼주의자인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 식사자리에서 팀장에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별 다른 수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문씨는 “결혼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과거에 만들어진 사내 복지제도는 불합리하다고 여겨진다. 적어도 미혼 직원들을 위한 별도의 제도는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최근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등 4인 가구와 다른 가족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회사가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복리후생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족 형태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주요 기업의 복리 후생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1월 3일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1인 가구는 906만3362가구로 전체 가구의 39.2%로 나타났다. 2016년 전체 35%에서 꾸준히 높아졌다. 반면 4인 이상 가구는 2016년 전체 가구 중 25.1%에서 지난해 20.0%로 줄었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의미의 ‘비혼’을 택하는 숫자도 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12월 미혼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비혼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결과, 응답자 중 24.8%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 출산 계획이 없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도 흔하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결혼 5년차 신혼부부 중 무자녀 비율은 18.3%였다.

    미혼은 못 받고 기혼은 받는 전세 대출

    이처럼 가구 형태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만 사내 복리 후생 제도는 결혼과 육아에 초점을 두고 있어 젊은 직장인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녀 교육비 지원. 각 기업 홈페이지에 따르면, 삼성전자·SKT·LG전자 등 대부분 대기업은 자녀 대학 등록금을 지원한다. 국내 사립대 연 평균 등록금이 718만 원(2020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자녀 유무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연 수 백만 원 차이 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결혼 축하금이나 출산 장려금, 배우자 건강검진 제도 등 결혼과 육아를 염두에 둔 사내 복지 혜택 대다수를 차지한다.

    결혼 여부에 따라 사내 대출에 차등을 주는 회사도 있다. 대기업 4년차 미혼의 직장인 권모(29) 씨는 지난해 사내 전세 자금 대출을 이용하려다 근속 연수 만 5년을 채우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기혼 사원은 회사를 다닌 지 1년만 지나면 전세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권씨는 “1인 가구는 연말 정산에서도 인적 공제를 받기 힘든데 회사에서도 전세 자금 대출을 미혼과 기혼으로 나눠 미혼에게는 제한을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2030세대는 형평성에 맞는 사내 복지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1인 가구가 겪는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월세 60만 원을 내고 살고 있는 IT기업 2년차 직원 박모(26) 씨는 “결혼과 자녀 양육에 지출이 많으니 회사가 이를 지원해주는 것은 이해가 된다”면서도 “1인 가구는 아파트 청약 가점도 낮고 생애최초 특별공급 대상자도 아닌 만큼 1인 가구 주거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혼 직원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이자는 건 아니지만 1인 가구에도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의 말처럼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으로 ‘주거 안정 지원’이 1위(55%)를 차지했다.

    ‘비혼 선언’ 축하금, 반조리 식품 배달도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코리아는 2017년부터 근속 연수 5년 이상 사내 직원의 신청을 받아 비혼식을 연다. [러쉬코리아 제공]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코리아는 2017년부터 근속 연수 5년 이상 사내 직원의 신청을 받아 비혼식을 연다. [러쉬코리아 제공]

    이러한 2030들의 사내 복리후생제도 개정에 대한 의견은 주로 직장 노조를 통해 모이고 있다. 실제 NH투자증권 노조는 결혼기념일 대신 생일로 휴가 지급 조건을 바꿀 것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NH투자증권 노조 관계자는 “결혼기념일 휴가를 두고 미혼 직원들의 반발이 나왔다. 미혼 직원 비율이 점차 늘어나 사내 복지에서 형평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미 1인 가구와 미혼 직원을 겨냥한 사내 복지 제도를 만든 회사도 속속 등장했다. 기혼과 미혼 직원의 차등을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결혼기념일 축하금 10만 원을 주는데, 미혼 직원들에게도 같은 금액을 자기계발 목적으로 동일하게 지급하기로 했다. 한 포스코 그룹사도 자녀 학자금 지원을 받지 않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기계발지원금을 지급한다. 학자금 대신 자기계발지원금으로 사용하면 향후 자녀 교육비 지원 한도에서 차감하는데,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다.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RUSH) 코리아’는 2017년부터 매년 1회 ‘비혼의 날’을 만들어 비혼을 선언한 직원들에게 축하금 50만 원과 10일 유급 휴가를 제공한다. 임직원이 결혼할 때 받는 혜택을 동일하게 제공한 것이다. 비혼을 선언했지만 결혼을 해도 무방하다. 대신 이미 받은 축하금과 유급휴가는 제공되지 않는다. 러쉬 관계자는 “대량으로 과일을 구입해 1인 가구 직원을 대상으로 나눠주기도 한다. 과일 섭취가 뜸한 1인 가구 직원들의 건강을 배려한 이벤트”라고 귀띔했다.

    혼자 생계를 꾸려야 하는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사내 복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디시인사이드는 지난해 12월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1주일에 10개 씩 육개장·불고기 등 반조리 식품을 직원들에게 보내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재택근무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는 “보통 한 팀에 15명 정도가 근무하는데, 팀 내에 기혼 직원이 두 명일 정도로 1인 가구 직원들이 많다”며 “재택근무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매번 음식을 조리하기 힘든 혼자 사는 직원들을 배려한 조치”라고 말했다.

    게임 업체 ‘펄어비스’는 지난해 6월 ‘미혼 임직원 복지를 위한 공모전’을 따로 열었다. 여기서 미혼 가구 가사 지원이 뽑혔다. 혼자 사는 미혼 임직원에 한해 월 1회 집 청소·설거지·쓰레기 배출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구 구조가 달라지면 복지 제도 변화도 불가피하다. 정부도 1인 가구를 위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기업의 복지 패러다임은 과거에 머물러있어 직원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이라며 “달라진 수요에 맞춘 복리후생제도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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