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시속 130㎞ ‘최동원賞’ 투수 유희관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5-11-20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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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이름 새긴 상패, 집안 가보로 모실 터”
    • 제구의 달인…‘지옥에서 온 모닥불러’
    • “스피드? 쉽지 않아…새 球種으로 승부”
    • “프리미어12 대표 제외? 내가 부족한 탓”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김형우 기자

    유희관의 2015년 시즌은 해피엔딩이었다.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하향세를 탔으나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올 시즌 유희관은 8월 중순 발목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했을 때 말고는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30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스스로 정한 목표인 200이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소화한 189와 3분의 2 이닝은 팀 내 최다였다. 18승 5패 평균자책점 3.94로 다승 부문 2위. 토종 선수 중에선 다승 1위다. 시즌 종료 후 친구들에게 ‘우승 턱’ 내느라 밤 시간이 바쁘다는 유희관을 만나 ‘키워드 토크’를 했다.

    유희관은 인터넷에 올라온 자신의 기사를 꼼꼼히 챙겨 보는 편이다. 댓글도 빠짐없이 읽는다. 악성 댓글에 마음 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들도 좋게 받아들인다. 처음엔 내 기사 댓글의 70~80%가 몸매나 외모와 관련된 지적이어서 재밌게 읽었다”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유희왕’ ‘뒤태’ ‘바나나우유(항아리우유)’ 등 그의 이름과 외모에서 착안한 별명과 수식어가 줄을 잇는다. 느린 구속(球速)과 관련해선 ‘느림의 미학’ ‘지옥에서 온 모닥불러’란 별명도 있다. ‘모닥불러’는 흔치 않은 좌완 파이어볼러(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불러온다’는 야구계 격언에 빗댄 것이다.

    유희관은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악플’이 아니라 ‘무플’이라고 강조한다. “주목받는 걸 즐기는 내게 무플은 최악의 상황이다. 어떤 내용이든 댓글이 많아야 기분이 좋다. 악플조차 고마워하는 선수는 흔치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2015 시즌이 선수 생활 중 가장 화려했다”고 말하는 유희관과의 연관 검색어 인터뷰를 시작한다.

    # 최동원賞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11월 11일, 부산의 부산은행 본점에서 ‘제2회 최동원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두산베어스 좌완 에이스 유희관. 올 시즌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절묘한 제구력과 빼어난 경기 운영으로 18승 5패, 평균자책점 3.94의 성적을 기록했다. 강속구 투수를 선호하는 KBO 리그에 ‘느림의 미학’ 트렌드를 선보이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유희관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상을 받아 감사하고, 선배님의 대단한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모범을 보이는 선수가 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어우홍 심사위원장은 “유희관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진 못했지만, 정확한 컨트롤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좋은 투구를 보였다”며 “공이 안 빠른 투수도 컨트롤(제구)이 좋으면 승수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올해 두산이 정규 시즌 3위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일부 야구 팬은 유희관의 수상에 문제가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강속구 투수로 대변되는 최동원과 느린 공을 구사하는 유희관은 이미지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유희관의 말을 들어보자.

    “일단 상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의미도 있고. 최동원 선배를 야구선수로 만나진 못했지만 야구선수에게 그분은 신(神)이나 다름없다. 우상을 넘어 전설이다. 최동원상 수상 조건엔 6가지 기준이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을 다 채웠다고 해서 최동원 선배의 업적을 따라갈 수는 없다. 수상자 선정은 심사위원의 몫이다. 내가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는 걸 야구 팬은 다 안다. 최동원 선배의 ‘철완’ 이미지도 없다. 그럼에도 올 시즌 최다승(19승)에 오른 NC 다이노스 해커 선수에 이어 18승으로 다승 2위에 올랐다.

    내가 최동원상을 욕심낸 건 아니지만, 심사위원들이 선정해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만약 나와 수상 경쟁을 벌인 양현종(KIA 타이거즈)이 받았으면 별문제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내가 받았기에 논란이 벌어졌다. 욕을 먹어도 감수할 부분이다. 수상자에 걸맞은 활약으로 내년 시즌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더 노력하겠다. 상금 2000만 원을 받았는데 기부도 하고, 좋은 곳에 쓸 생각이다. 전설의 이름이 새겨진 상패는 집안의 가보로 여기고 잘 모시겠다.”

    # 한국시리즈 우승

    일부에선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반쪽짜리’라고 폄하한다. 원정도박 파문으로 삼성 라이온즈 주전투수 3명이 빠지는 바람에 두산이 쉽게 우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5차전 양의지의 2타점 2루타, 고영민의 2타점 적시타와 홈스틸, 정수빈의 쐐기 스리런 홈런 등을 묶어 삼성을 13-2로 대파한 두산의 화력은 그 3명의 투수가 있었대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를 거친 두산의 기적 같은 우승은 롯데(1992년), 두산(2001년)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 기록이다.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김태형 감독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솔직히 포스트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은퇴하기 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넥센을 상대로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며 팀이 점점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넥센에 7회까지 2-9로 끌려가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7, 8, 9회에 타선이 폭발해 무려 9점을 뽑아내면서 11-9로 역전승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NC 다이노스와 맞붙은 플레이오프에선 3차전에서 2-16으로 패하는 등 수세에 몰렸지만 4, 5차전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14년 만에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경기를 치르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더욱이 정규시즌 막판부터 구위가 떨어지며 마운드에서 제 역할을 못한 나로선 한국시리즈 5차전 직전까지 심적 고통이 굉장했다. 감독님은 그럼에도 날 계속 마운드에 올리셨다. 만약 5차전에서 내 역할을 못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전까지 워낙 욕을 많이 먹은 터라 5차전 선발등판 결과는 굉장히 중요했다.”

    # 상의 탈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유희관은 6이닝 동안 90구를 던지며 5피안타, 2사구, 1탈삼진, 2실점 쾌투로 승리를 따냈다. 데일리 MVP도 유희관에게 돌아갔다. 중요한 경기에서 호투를 펼치며 우승까지 거머쥔 유희관은 우승 세리머니로 상의를 벗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화끈한 팬 서비스를 펼쳤다. 유희관의 상의 탈의 세리머니는 조회 수에서 한국시리즈 관련 다른 기사들을 압도할 만큼 시선을 모았고 제대로 흥을 북돋웠다.

    “상의 탈의는 많은 고민 끝에 한 세리머니다. 시즌 개막 전 미디어데이 행사 때 김현수가 ‘두산이 우승하면 희관이형 상의를 벗기겠다’고 농담처럼 한 말이 기억났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혹시나…’ 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5차전에서 우리 쪽으로 일찌감치 승리가 기울어지자 선수단의 관심은 모두 내 상의 탈의에 쏠렸다. 그래서 마운드에서 내려간 뒤 로커룸에 들어가 트레이너와 함께 젖꼭지에 반창고를 붙이고 준비를 시작했다.

    솔직히 내 몸매가 남에게 보여줄 수준이 아니지 않나. 저녁식사 시간에 TV로 경기를 보는 시청자의 취향도 고려했다. 방송심의에 걸리면 안 될 것 같아 고육지책으로 중요한 부분을 가린 것이다(웃음). 오로지 미디어데이에서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고심하다 행동으로 옮겼는데, 이후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다. 가장 많이 나온 얘기가 ‘운동 좀 해라’ ‘살 좀 빼라’다. 우승 직후 인근 호텔에서 열린 축승회에서 박용만 두산 회장님이 내가 상의 탈의한 모습이 ‘마치 절의 주지스님이 옷을 벗고 뛰는 것 같았다’고 해서 선수단이 폭소를 터뜨렸다.”

    # 20승, 200이닝

    올 시즌 내내 유희관은 ‘20승, 200이닝’ 도전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유희관은 “20승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너무 먼 얘기다. 하지만 200이닝은 꼭 달성하고 싶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꾸준히 던져야 달성할 수 있는,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토종 20승 투수는 1999년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이후 16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토종 투수 중 시즌 200이닝을 기록한 것도 2007년 류현진(한화 이글스, 211이닝)이 마지막이다. 유희관의 올 시즌 목표는 둘 다 이뤄지지 않았다.

    “18승으로 다승 2위에 오르긴 했지만 시즌 막판 부진 탓에 20승을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발목 부상을 당하기 전 15승을 내달릴 때만 해도 남은 등판에서 20승을 거두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봤다. 올 시즌 기복 없이 꾸준하게 나 나름대로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터라 자신도 있었는데 잠깐 동안 슬럼프에 빠지면서 잡을 수 없는 숫자가 되고 말았다. 18승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년에 또 그 숫자를 기록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올 시즌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200이닝 달성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나니 더 아쉽다.”

    #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10월 25일, 김인식 프리미어12 대표팀 감독은 도박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삼성의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대신 장원준(두산) 임창민(NC) 심창민(삼성)을 뽑았다. 다승 2위 유희관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 확정 때도 유희관은 고배를 맛봤다. 본인은 “대표팀에 발탁된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다”라고 했지만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구속이 느린 유희관을 국제대회 마운드에 세울 뜻이 없었다. 아무리 제구력 달인이라고 해도 구위가 약하면 통하기 어렵다고 본 것.

    “내가 대표팀에 발탁됐으면 오늘 ‘신동아’와 인터뷰하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결론은 내 탓 아니겠나. 부족한 면이 있어 선택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김인식 감독님께 믿음을 주지 못한 것도 있었을 테고. 좋은 쪽으로 이해하려 했다. 올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대표팀 가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또 비난이 들끓고 그로 인해 올 시즌 내 노력과 성과가 다 묻힐 수도 있으니 이렇게 시즌을 정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상무 시절부터 지금껏 쉼 없이 달려왔다. 더욱이 올 시즌은 예년보다 18경기 늘어난 144경기를 치르며 체력 부담이 컸다. 비록 대표팀에선 뛰지 못했지만 내년 시즌을 잘 준비하라는 메시지라고 여기고 체력 회복에 중점을 두며 비(非)시즌을 보낼 계획이다.”

    # 열애와 결혼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 결혼한 선수들이 데려온 아이들을 보면 내가 더 좋아할 정도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것만 같다(웃음). 그런데 결혼은 정말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야 한다. 둘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 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봐주시는 분이 정말 많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연애하기가 어렵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

    시즌 중에 골프선수와 열애설이 났다(스캔들의 실상과 관련해 유희관이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유희관은 시즌 중 프로골퍼 양수진과의 열애설에 휘말렸다). 어느 매체에 사진이 찍혔고, 기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신기한 건 열애설 직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몇번 만나서 식사하는 사이 정도였는데 기사가 나오니까 서로 어색해지고 부담스러워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아, 이래서 연예인이 열애설 나면 안 되는구나 싶더라.”

    # 야구선수의 사생활

    유희관은 자신이 만나는 여성이 야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야구 팬을 자처하는 여성이라면 만나서 야구 얘기만 할 테니 야구를 ‘조금만’ 좋아하는 여성이길 바란다고 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야구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원정도박 파문 이후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생활이 주목받고 있다.

    “운동선수도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사생활과 관련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더욱이 프로야구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스포츠라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생활해야 한다. 그런 현실에서 원정도박 사건이 터진 건 같은 야구인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에 ‘유희관’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인성’이 뜬다. 승부욕이 철철 넘치는 내가 마운드에서 보인 행동 때문이다. 예를 들면 포수인 양의지에게 내가 어떤 제스처를 취했다고 하자(유희관은 방송 화면에 잡힌 모습 탓에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건 양의지에게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니라 제구가 안 되는 부분과 관련해서 신호를 주고받다가 나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다. 그래도 중계 중인 TV를 의식해서 조심했어야 했다. 나의 인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고민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시각으로 날 바라보는 시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 김태형 감독

    두산 베어스가 전임 송일수 감독을 단 1년 만에 경질하고 김태형 감독을 영입한 건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김 감독은 두산에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선수(1995년, 2001년)와 감독(2015년)으로 한 팀에서 우승한 야구인이 됐다. 유희관이 생각하는 김태형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을 모아놓고 ‘두산다운 야구를 하자’고 하셨다. SK 코치로 있을 때 두산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허슬 두’의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도 야구장에서 야구장으로 이동할 때 모두 뛰어다녔다. 선수들에게 농담도 잘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내면의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초보 감독’이란 꼬리표 때문에 감독님에 대해 불안한 시선이 많았지만, 두산 출신 감독이다 보니 팀에 대한 이해가 깊고 선수들을 잘 배려하셨다.

    내가 정규시즌 후반기 접어들면서 부진을 거듭할 때 다른 감독이라면 날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한국시리즈까지 끌고 가신 걸 보면 인내심이 엄청난 것 같다. 내가 성적을 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다가오셔서 ‘고개 들어라.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거니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네가 18승을 못했다면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 ‘니느님’ 니퍼트

    더스틴 니퍼트는 2011년 두산 베어스와 계약한 후 해마다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그러나 올 정규 시즌에선 6승5패, 평균자책점 5.10으로 부진했다. 게다가 부상 등으로 3개월가량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연봉이 150만 달러. 역대 외국인 최고 몸값이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두산 마운드를 지켜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이닝 2실점, 플레이오프 1차전과 4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과 5차전에선 무실점 완벽투로 분투했다.

    “니퍼트는 우리한테 외국인 선수 그 이상이다. 배울 점도 많고 선수들을 대하는 행동에서도 베테랑다운 무게감이 묻어난다. 두산과 5년째 인연을 맺어 오면서 선수들도, 니퍼트도 서로 가족 같이 여긴다.

    니퍼트는 내게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2013년 5월 4일, 상무에서 제대한 후 첫 복귀전을 치른 날이다. 원래 그날은 니퍼트가 선발로 나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니퍼트가 감기 몸살로 몸져눕는 바람에 갑자기 내가 선발로 나가는 행운을 얻었다. 잠실 라이벌 LG와 ‘어린이날 더비’로 갖는 중요한 경기였다. 두산 팬들은 니퍼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내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니 여기저기서 실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나도 내 공에 자신이 없었다. 상무에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프로 마운드이고, 제대 후 복귀전 첫 무대라 절로 긴장됐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무실점으로 프로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챙겼다. 그날 경기를 본 LG 팬들이 ‘야, 도대체 유희관이 뭐 하던 애냐?’고들 했다더라.”

    # 상무 입대

    유희관은 2009년 두산 베어스 2차 6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2010년 시즌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10년 시즌을 마치고 입대한다.

    “만약 그때 상무에 입대하지 못했다면 방출됐을지도 모른다. 상무 입대는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 ‘끈’이나 마찬가지였다. 입대 전, 두산에서 기회는 줄곧 있었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대학 때처럼 자신감 있게 던지질 못했다. 차라리 제대로 던져서 얻어맞았다면 후회라도 안 했을 텐데, 마운드에만 오르면 떨리고 긴장됐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운 좋게 상무에 들어갔고, 줄곧 선발로 투입되면서 점차 내 공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 내 공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상무에서 좌완 에이스로 맹활약했고 그게 팀 복귀 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복귀할 때만 해도 내 목표는 시즌 개막 엔트리 진입이었다. 당시엔 엔트리 진입 자체가 불투명했기에 목표가 소박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5월 4일 니퍼트의 감기가 나를 살려준 셈이다.”

    # 느림의 철학

    유희관 하면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뒤따른다. 그는 ‘느림의 철학’도 실천한다. 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속 74㎞의 커브와 최고 구속 138㎞의 직구를 던지는데, 이런 스피드를 가진 투수가 프로에서 통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피드가 안 나오는 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아마추어 때는 그 스피드로 충분히 통했고, 승리 투수가 되면서 만족하고 안주하던 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나도 빠른 볼을 던지고 싶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더라. 만약 내가 140~150㎞의 공을 던졌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린 공으로 강타자들을 당당히 상대하는 모습에 팬들이 더 응원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드를 올리려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구종을 개발해 올 시즌 내 공에 익숙해진 타자들을 또 다른 무기로 상대하고 싶다.”

    # 손민한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김형우 기자

    유희관은 NC 다이노스 손민한을 보며 많은 ‘느낌표’를 찍었다고 말한다. 손민한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곡절 많은 마흔 살 야구 인생을 통해 후배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마운드에서 보여줬다. 그런 손민한을 유희관은 “존·경·한·다”고 했다.

    “지금은 미국으로 떠났지만 올 시즌 우리 팀에 앤서니 스와잭이란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메이저리그 출신이란 생각만 했다. 한국 무대에서 뛰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한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고 돌아갔다.

    우리 팀을 거쳐간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절실한 심정으로 한국 야구 안으로 들어오는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것 같다. 니퍼트가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것은 그가 한국을, 한국 야구를 좋아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스와잭은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절실함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게 아닐까. 손민한 선배에겐 늘 절실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점을 배우고 싶고, 늘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 숙제

    유희관에게 2015년 시즌은 ‘다사다난’ ‘버라이어티’ ‘파란만장’ ‘우여곡절’로 정리된다. 20승을 노릴 만큼 상승세를 지속하다가 부상과 스캔들, 슬럼프로 내리막길로 치달았고 한국시리즈에서 이전의 유희관으로 돌아왔다. 그는 “우승에 따른 기쁨, 후련함에도 내년 시즌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는 점에서 마냥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 ‘숙제’가 뭐냐고 묻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년 스프링캠프 때 답을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그 ‘숙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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