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박결은 4번의 대회에서 두 번이나 컷오프(탈락)를 당하는 등 성적이 저조했다. 다행스러운 건 자신의 스폰서가 주최한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감각을 끌어올린 것. 이후 10~20위권을 유지하면서 신인왕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런데 신인왕 경쟁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2부 리그에서 3차례나 우승을 차지할 만큼 실력자인 박지영(19·하이원리조트)이다. 박결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절친한 친구인데,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가 249야드(3위)에 달할 정도로 장타자다. 여기에 2부 리그에서 함께 올라온 김예진(20·요진건설산업)까지 신인왕 경쟁에 가세했다.
박지영, 김예진에 이어 3위에 머물던 박결은 신인왕 시즌 막판 경쟁이 치열하던 10월 말 서울경제·문영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또다시 컷오프의 아픔을 맛봤다. 올 시즌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지 못하면 사실상 신인왕 등극에서 멀어지게 된 것. 이 경기 직후 박결을 만났다. 기분이 처져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쾌활해 보였다.
“끝까지 해보고 싶다”
▼ 요즘 컨디션 어때요.
“좋아요, 하하.”
▼ 최근 경기에서 컷오프 됐는데.
“샷이 너무 안됐어요. 오비(Out of Bound, 경기 금지구역)가 두 번이나 났어요. 티샷에서도 나고 세컨드 샷에서도 나고. 제가 추위를 많이 타는데, 갑자기 너무 추워져서 몸이 안 풀리고 손발도 시려서 그런 것 같아요. 부진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연습도 평소대로 하고 있고요. 요즘엔 아이언샷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아이언샷이 잘 맞아야 버디 기회도 많이 올 텐데…. 8번 아이언까지는 자신 있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조금 불안해요.”
▼ 신인왕 경쟁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닌가요.
“이제는 없어요. 지영이랑 (점수) 차이가 많이 나니까요. 남은 경기 두 번 다 우승해도 따라잡기 힘들거든요. 대신 우승은 한 번이라도 꼭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우승하는 꿈을 꿨는데, 좋아서 엄청 울었어요. 꿈인데도 참 좋더라고요. 원래 목표는 우승도 하고 신인왕도 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이루기는 힘들고. 한 가지라도 이루고 싶었어요.”
▼ 프로 진출 첫해인데, 느낀 점은.
“솔직히 지난해 국가대표 되고 나서부터 골프가 재미있어졌어요. 그전에는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프로 데뷔 후엔 골프장 가면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있고, 조금 더 잘하면 더 많이 알아보지 않을까 싶어서 욕심도 나고요. 돈도 벌고요, 하하. 아마추어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에요. 1부 리그에서 떨어질지 몰라 무섭긴 하지만, 계속 있을 수 있다면 정말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재미있어 온종일 연습”
▼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에 시드전도 1위로 통과했는데, 프로 무대에 자신이 없다?
“개막전 할 때 너무 떨렸어요.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너무 받아서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다 똑같은 신인인데…. (박)지영이는 2부 리그에서 우승도 하고 상금 순위로 올라올 정도로 잘했는데 별로 주목을 못 받았어요. 다들 나 아니면 지한솔 프로가 신인왕이 될 거라고 해서 부담이 더 컸죠.”
▼ 올해 성적에 만족합니까.
“우승을 못한 게 아쉽기는 한데, 시작하기 전에 30위로 잡은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아서 괜찮아요.”
▼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무래도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2등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즌 시작할 때부터 이 대회에서는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마지막 날 몰아쳐서 그렇게 올라갔는데, 첫째 날과 둘째 날 조금만 더 잘 쳤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는 않아요. 최선을 다했으니까.”
박결은 지난해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마지막 날 버디 8개로 역전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이 대회에서도 마지막 날 버디 6개를 몰아쳐 공동 10위에서 2위까지 끌어올렸다.
▼ 아마추어 때 성적은 어땠어요?
“그렇게 잘하지도 못했지만 못하지도 않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국가대표 상비군에는 들었는데, 국가대표에 뽑히지는 못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뽑혀서 아시아경기대회에도 나가게 된 거예요.”
▼ 골프를 아홉 살 때 시작했다고 하던데, 계기는.
“아빠가 운영하시던 스포츠센터에 헬스장, 골프장, 수영장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수영을 배웠는데 재미없고 힘들었어요. 그러다 아빠 따라서 골프장을 다녔는데, 프로들이 ‘소질 있다’고 권해서 시작했죠.”
▼ 골프는 재미있었어요?
“네,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종일 연습할 정도였어요. 학교는 가야 했으니까,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밥 먹고 바로 연습장에 가서 프로가 퇴근할 때까지 같이 있었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도 대회에 나가 2등, 3등 하다가 4학년 때 우승도 하고 그랬어요. 전국대회에서도 우승하고.”
▼ 골프 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1년 정도 방황을 좀 했어요. 국가대표를 하고 싶었는데 샷도 잘 안 맞고 성적도 안 나왔거든요. 연습도 하기 싫었어요. 그러다 2학년 때 지금 배우고 있는 프로를 만나서 전지훈련을 갔는데, 제가 몰랐던 게 너무 많다는 걸 느꼈죠. 숏게임은 기술이 중요한데 그걸 몰랐으니….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다음해에 국가대표가 됐고,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잉스터처럼 즐기고 싶어”
▼ 비슷한 또래 선수들과 비교할 때 장단점이 뭐라고 보나요.
“다른 선수들보다 드라이버를 똑바로 치는 건 장점인데, 거리가 조금 덜 나가는 게 단점인 것 같아요. 가끔 거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요즘 코스 길이가 너무 길어져서 불리할 때가 있어요. 제가 롱 아이언을 칠 때 (박)지영이는 숏 아이언을 쳐요. 그만큼 저보다 지영이가 버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거리의 중요성을 많이 실감해요. 올 시즌이 끝나면 거리를 늘리기 위해 체력훈련을 강화해서 근력을 많이 키우려고 해요.”
▼ 어떤 선수가 되고 싶습니까.
“오래전부터 줄리 잉스터(55)를 롤 모델로 삼고 있어요. 경기를 하면 재미있고 행복하긴 한데, 시드를 유지해야 하니까 결과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 선수를 보면 골프를 참 편안하게 치는 것 같고, 또 골프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아요. 투어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여행 다니듯이 사는 게 무척 행복해 보여요. 멋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 나이까지 투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골프를 더 사랑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진심으로 좋아해서 열심히 하면, 나중에 그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골프를 하고 싶어요.”
▼ 인생의 최종 목표는.
“공부도 더 하고 싶고, 경기 해설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최종적으로 교수와 해설가, 둘을 같이 하고 싶어요. 골프도 하면서. 하하, 욕심이 너무 많은가요? 그때쯤 되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골프를 정말 마음 편히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골프가 ‘평생 같이 사는 친구 같다’는 박결. 시즌 초반 ‘슈퍼 루키’ 탄생이라는 기대보다는 소박하게 올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한국 여성 골프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대주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