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출생 야구선수 다른 계절에 비해 많아
동년배보다 일찍 자라 선수 될 확률 높아
다른 종목도 3월생 약진 두드러져
형제 관계도 선수 성향에 영향 미쳐
삼성 라이온스를 대표하는 구자욱 선수의 주민등록상 생일은 음력 2월 11일. 양력 3월 3일 출생이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남성일 교수(서강대 경제학과)는 올 초 한국경제학회 연합학술대회에서 ‘사주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 분석’이라는 이색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사주에 재물운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에 비해 학력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최소 12%에서 최대 39%까지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살펴본 사주의 세계’)
저는 명리학의 ‘ㅁ’도 모르는 사람이라 이 논문 내용처럼 태어난 연, 월, 일, 시가 소득에 영향을 끼치는지 아니면 이 연구 결과가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인지 알지 못합니다. 대신 태어난 달에 따라 프로야구 선수가 될 확률이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2020년)까지 프로야구 1군 경기에 단 한 번이라도 출전한 선수는 2447명(외국인 선수 제외). 이 가운데 11.4%에 해당하는 280명이 3월에 태어났습니다. 만약 프로야구 선수가 1~12월 사이에 똑같이 태어났다면 어떤 달이든 8.3%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3월에는 평균보다 40% 가까이(37.3%) 프로야구 선수가 더 많이 태어난 겁니다.
야구선수가 봄에 많이 태어나는 이유
2019년 8월 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0 KBO 신인드래프트. [동아DB]
명리학적 관점에서 봄은 나무(木)입니다. 나무 기운이 강한 사주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습니다. 그러니 봄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투수와 타자 맞대결을 기본 뼈대로 하는 야구 선수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명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 같아 보입니다.
사실 명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3월생 야구선수가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봄에 태어난 프로야구 선수가 많은 건 2002년생까지는 그해 3월~이듬해 2월에 태어난 이들이 한 학년으로 묶였기 때문입니다. 2001년 3월 1일생은 2002년 2월 28일생보다 사실상 한 살이 더 많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날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성장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이 커집니다. 몇 달 먼저 태어난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체격과 체력이 뛰어난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태어난 3월생 중 성장세가 돋보이는 아이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몸이 크니 야구부를 비롯한 ‘운동부’ 지도자 눈에 띄기도 쉬웠습니다. 흔히 ‘월령(月齡)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났던 겁니다.
한국만 이런 게 아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1900년부터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출전한 1만5220명 가운데는 8월생이 10.1%(1534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는 2006년까지 미국에서 리틀 야구 출전 자격 등을 따지는 ‘야구 나이’를 계산할 때는 7월 31일 현재 만 나이가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현재는 8월 31일로 바뀌었습니다).
종목 막론 3월에 태어난 선수가 많아
축구에서 나이별 대표팀은 1월 1일 당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선발합니다. 그렇다면 1~3월생이 제일 많은 게 합리적일 겁니다. 그런데 14세 이하 대표팀에 뽑힌 적이 있는 1999~2002년생 106명 가운데서도 3월생이 18.9%(20명)으로 가장 많고, 계절로 따졌을 때도 역시 봄에 태어난 이들이 46.2%(49명)로 제일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빠른 생일’ 제도가 사라진 2003년생부터는 1월생이 21%(21명)로 가장 많아지게 됩니다. 월별로 따졌을 때도 1~3월생이 55%(55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단, 이 기간 14세 이하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총 216명 가운데 12월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11월생도 전체 206명 가운데 1%(2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월 1일이 기준일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맏이는 대체로 느긋한 편
아무도 자신이 태어나는 달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태어난 달은 누군가가 운동선수가 되는 데는 이렇게 영향을 끼칩니다. 또 어릴 때부터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으며 운동에 매진하면 실력은 늘게 됩니다. 성인이 돼서도 촉망받는 운동선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태어난 달이 프로 선수가 되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운명적인’ 이유입니다.우리는 형제 가운데 몇 째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지만 이 역시 우리 성격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번에는 KAIST 정재승 교수팀이 답변 하나를 제시합니다.
정 교수팀은 초밥 일곱 가지를 접시에 담아 실험 참가자에게 주고 어떤 순서로 초밥을 먹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참가자를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가장 먼저 먹는 그룹과 가장 늦게 먹는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제일 먼저 먹는 사람들은 보통 두 번째로 좋아하는 초밥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좋아하는 초밥을 세 번째로 먹었습니다. 거꾸로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가장 나중에 먹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초밥은 여섯 번째(뒤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좋아하는 초밥은 다섯 번째(뒤에서 세 번째)로 먹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를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눌 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수는 딱 하나 ‘형제 숫자’였습니다. 형제가 많을수록 또 형제 가운데 막내 쪽으로 갈수록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제일 먼저 먹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반면 맏이 가운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제일 늦게 먹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왜일까요? 맏이 가운데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반드시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만족도를 점점 높여가는 방식으로 초밥을 고릅니다. 반면 동생은 손위 형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자란 경험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당장 남아 있는 초밥 가운데 제일 만족감을 주는 것부터 선택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맏이 가운데는 느긋한 성격이 많고, 동생 가운데는 적극적인 성격이 많은 겁니다.
동생이 더 잘 훔친다
3월 2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 KT위즈 시범경기에서 KT 조용호의 도루를 NC 박민우(왼쪽)가 저지하려 하고 있다. [동아DB
2루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1루를 밟았을 때처럼 도루가 가능한 상황에서 동생 그룹은 평균 0.093번 도루를 시도한 반면, 형 그룹은 0.056번 시도에 그쳤습니다. 동생 그룹이 1.7배 정도 도루를 더 많이 시도했던 겁니다. 형제가 같은 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는 동생 그룹 0.138번, 형 그룹 0.038번으로 3.6배 차이까지 벌어졌습니다.
설로웨이 박사는 “도루야말로 야구에서 가장 적극성이 필요한 플레이”라면서 “전체적인 야구 실력을 놓고 볼 때는 형이 잘한다, 동생이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루 실력은 확실히 동생 그룹이 더 뛰어나다. 도루에 적극적일뿐더러 도루 성공률도 동생 그룹이 3배 정도 높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는 달과 몇 번째 형제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우리가 가족을 선택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한국은 건강가정기본법 제12조를 통해 5월을 가정의 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날씨만 보면 5월은 어떤 해에는 너무 건조하고 어떤 해에는 너무 습한, 변덕이 심한 달입니다. 꼭 가족 사이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주보다 가족이 우리 인생에서 훨씬 운명적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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