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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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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눈여겨볼 현상은 미군이 나라 밖에서 군사개입을 했을 때 병사 자살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제1차 걸프전쟁이 벌어졌던 1991년 한 해 동안 미군 자살률은 10만명당 14.4명으로 미국인 평균 자살률보다 거의 40%포인트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102명 자살). 미군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과 카리브해 지역의 아이티 정치위기에 개입했던 1993년의 경우는 10만명당 15.7명이란 기록적인 자살률을 보였다. 소말리아와 아이티 두 곳에 주력군으로 파병됐던 미 해병대의 자살률이 특히 높았던 탓이다(1993년도 해병대 자살률은 10만명당 20.9명으로 미군 평균 자살률의 곱절이었다. 참고로 2002년 미 해병대 자살률은 12.6명).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이 잇달아도 펜타곤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해 고민중이다. 윈켄워더 차관보는 “모든 자살사건을 조사해봤지만 우리가 (자살을 막는) 조치해야 할 것이 더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병 장병들의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묘수가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아울러 그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병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집계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펜타곤은 이라크 주둔 미군 13만명을 미 본토로 불러들이고 11만명의 신규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과 제1차 걸프전쟁에서 귀환한 장병들의 자살률이 높았던 점을 떠올리면, 이라크에서 귀환한 장병들의 자살률은 현재 수치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많다. 윈켄워더 차관보가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 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개입명분 약하고 戰線도 없고

한마디로 이번 제2차 걸프전쟁은 1991년 1차 걸프전쟁 때보다 훨씬 자살률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다. 1차 걸프전쟁은 파병과 군 작전 개시를 포함 해 약 한 달 정도 벌어졌고, 실제 지상전 단지 나흘 동안 치러졌다. 지상전이랄 것도 없이 전쟁이 빨리 마무리됐었다. 당시 현지에서 자살한 미군 병사는 단지 두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뒤 귀환 장병들 사이에서 자살이 잇달았다(10만명당 14.4명). 그에 비해 이번 2차 걸프전쟁은 훨씬 긴 전쟁이다. 상황도 나쁘다. 명분이 약하다는 논란 속에 치러졌던 바그다드 침공작전 뒤 1년 넘게 반미 게릴라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주민들, 특히 수니 삼각지대 안의 시아파 주민들이 미군을 바라보는 눈길도 차갑다.

이라크전쟁은 미군이 지금까지 겪어온 것과는 다른 전쟁이다. 무엇보다 전선(front line)이 없다. 적은 앞에서든 뒤에서든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도로에 매설된 폭탄도 목숨을 노린다. 거리에 버려진 물건이 부비트랩일 수도 있다. 이런 긴장감이 약한 전쟁 명분을 둘러싼 회의감과 맞물려 병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몰아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바그다드 미 육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맡았던 리키 맬론 대령은 환자들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줘요.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미군이 참전한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은 다수 미국인들에게 ‘정의의 전쟁(justice war)’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은 제2의 ‘베트남전쟁 신드롬’을 낳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자살률이 높아가는 것은 베트남전쟁 때처럼 명분 없는 싸움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침공군으로 끼여들게 된 미군 병사들의 심리적 갈등을 짐작케 해준다.

일단 총을 들고 순찰을 돌거나 이라크 반미 게릴라들과 총격전을 벌일 때는 ‘살아야겠다’는 긴장감이 앞선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병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맞는다. 왜 여기서 싸워야 하나…. 그러면서 낮에 민가를 뒤져 용의자들을 붙잡을 때 들었던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외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나에게도 그런 가족이 있는데….’

이라크전쟁은 컴퓨터로 즐기던 모의전투(simulation)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젊은 미군 병사들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다시피 싸워야 하고, 죽어가면서 흘리는 붉은 피를 봐야 하고, 죽어가는 자의 고통스런 신음을 들어야 한다. 이라크는 아프간과 더불어 미국이 베트남전쟁 이래 가장 오랫동안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1815년 워털루전쟁은 단지 하루 동안의 전쟁이었다. 미 남북전쟁 당시 최대 격전으로 기록된 게티즈버그 전투도 사흘 동안 치러졌다. 더욱이 야간전투는 벌이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24시간 내내 전투가 벌어지고 그런 긴장상태가 1년 넘게 지속된 이라크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입는 정신적 상처는 그만큼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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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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